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 첫째는 자기 전마다 자꾸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이야기를 해줘야 자기가 잘 것 같다면서 말이다. 고민스러운 매일 밤, 이야깃거리가 떨어져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이어령 선생은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고 커가는 과정, 그 순간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지 저력이 대단함을 느낀다.

목차 이름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태명고개-배내고개-출산고개-삼신고개-기저귀고개-어부바고개-옹알이고개-돌잡이고개-세살고개-나들이고개-호미고개-이야기고개까지. 아이를 낳는다는 그 힘든 순간의 고개를 넘으면 또 키우는 매순간의 역경의 고개들이 기다리고 있다. 분명 우리 나라의 전통 육아에는 서양과는 다른 한국인만의 지점이 있는 듯하다. 그 출산, 육아의 순간의 고개들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풀어놓은 이야기가 이 책이다.

아이를 갖고 태명을 지어주며, 작은 생명에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하나의 행위를 가지고도 김춘수의 <꽃>이나 김소월의 <초혼>, 그리고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가 송아지에게 이름을 붙이는 장면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어령 작가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느껴지며 예를 들어 출산 고개에 대한 이야기에도 고전 문헌, 성경, 의학적 내용 등 다양한 문헌과 참고 자료들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생일날이 왜 귀빠진 날로 불리는지, 삼신 고개에서 몽고반점에 대한 이야기들, 오줌싸개가 왜 키를 쓰고 소금을 얻어와야 했는지, 최근 유행하는 스와들업 등 스와들링에 대한 내용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이 특히 궁금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새삼 언어의 힘에 대해서도 느낀다. 한국의 의성, 의태어는 콜콜, 쿨쿨처럼 양모음 대 음모음의 조화로 구성되어 있다든가, 아이들의 언어 시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내온 인간의 발달 단계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의성어, 의태어가 만들어지게된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다.

한국인의 탄생과 육아,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녹아 있는 이 책은 이어령 작가가 정말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숙고해서 엮어낸 책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또한 수많은 탄생 중 한국인에 초점을 맞춰 써내려가 우리 민족의 긍지도 느낄 수 있다. 다른 민족과 차별화된 우리만의 육아특색(이를테며 포대기나, 오줌 싼 후 키 쓰기 등)을 읽어내려가며 한 아이가 탄생하고 자라는 매 순간의 이야기가 얼마나 경이롭고 다채로운지 느낄 수 있었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지식 자체가 넓어진다. 한 주제로 방대한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저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중간중간 '샛길'로 표현된 이야기들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주 샛길로 빠지게 되는데 그게 어쩌다보면 더 재미난 경우도 많지 않은가. 스와들링을 비판한 루소의 에밀 읽기나, 할로우 부부의 원숭이 실험, 일본 자장가 고모리 등 꽤나 흥미로운 샛길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나의 늘어난 배경지식만큼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도 많을텐데. 딸들이 조금 더 크면 너희들이 이렇게 탄생했노라고 이 책 속의 이야기를 덧보태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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