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 번의 산책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한 사색
에디스 홀 지음, 박세연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철학은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철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으로부터 쓸모를 찾는 것이 철학자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 삶에 쓸모 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철학은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쓸모란 물질적 대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쓸모를 의미한다. 나의 정신적 속박과 고뇌, 번뇌로부터의 해방에 철학책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특히 서양철학에 있어서 많은 철학가들의 사상을 접하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플라톤에 이은 서양 철학의 선구자이며, 행복, 중용 등 굵직한 단어들로 표현가능한 대체 불가 철학자이다. 그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로 '행복'을 꼽을 수 있겠는데,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특히 행복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는 내 정신적 쓸모에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인간의 삶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이며, 행복이란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를 발견하고 최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행복에 대한 고대의 철학자의 견해가 현대인의 행복에 대한 생각과 매우 일치한다는 것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 소크라테스와 달리 현실에 입각한 철학론을 펼쳤으며 선한 의지의 토대 위에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삶이 행복의 길임을 얘기한다.
그에 의하면 살아 있는 것은 잠재력(디나미스)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성숙한 형태로 성장이 가능하다. 잠재력은 질료인, 작용인, 형상인, 목적인 중 목적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것은 존재의 근거이자 인간 스스로 통제가능한 동인이다. 특히, 인간만이 가진 이성적 잠재력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왜 원하는지 확인하고 이를 실현(에네르게이아)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행복으로 보았다. 또한, 집단지성을 중시하며 교육을 통해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잠재력의 연장선상에서 내 삶은 내가 결정하고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는 것에서 행복이 온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개인의 주체적 인식을 엿볼 수 있으며 오늘날의 행복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하지 않음으로써도 부당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는 폭력에서 친구의 피해를 목격하고도 모른 체하는 친구, 아동학대를 알리지 않는 이웃, 가난한 이들을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부자의 방임이 얼마나 큰 도덕적 결함에서 비롯되는지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행위뿐 아니라 외면에 관해 중시하는 것은, 사회적 존경과 인정을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
p179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며 우정에도 잦은 만남과 충분한 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우정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는데, 효용 우정, 즐거움에 기반을 둔 우정, 그리고 행복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리고 친척이 아닌 노력하는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상호적인 사랑으로 나누었으며 마지막 우정의 형태를 가장 최고로 보았다. 또한, 나의 변함없는 자질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내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말자고 얘기한다.
그는 특히 동물에 대한 연구에 큰 관심을 보이며 각 동물 특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나아가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모색하며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끊임 없이 얘기한다. 모두는 전체의 선함을 공유한다는 상호의존성을 말하며 도덕적 경제학의 개념으로부터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말한다.
여가나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특히 충분한 여가는 잠재력 발휘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행복의 길이 된다. 또한 죽음에 대한 성찰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되짚어보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대에 살았어도 전혀 위화감없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사상은 고전적이면서도 진보적이며 현대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는 철학이 왜 필요한지 알려준다. 철학은 결국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아내기 위한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