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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역전 - Turn the Power Around ㅣ 힘의 역전 1
정혜승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각 분야의 전문가 8인이 모여 8가지 주제로 시대의 질문을 살펴보는 책이다. 지난 12월, 대화와 토론을 통해 공론장을 만들고 주요 의제를 점검하는 형태의 메디치포럼이 열렸고 이 포럼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 <힘의 역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책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 시간상 거리상 듣기 힘든 전문가들의 각 분야에 대한 얘기들과 현안들이 오가는 것을 책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느끼면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시선을 배웠고 내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첫 주제는 디스커션(숙의)다. 우리는 디스커션을 토론으로 더 익숙하게 번역하고 있다. 토론 문화가 자리잡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대를 제압하고야 말겠다는 논쟁으로 토론을 잘못 생각하는 것 때문이라는 것, 즉 토론은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나와 생각이 다른지 고민하고 생각을 다듬는 자리라고 했던 최재천 교수의 말이 아주 인상 깊다. 토론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소그룹으로 쪼개서 토론 후 다시 모여 얘기하는 것도 방법. 결국 갈등과 분열 대신 사회적 소통을 통해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섭형 인재가 필요한 시점이며 모더레이터나 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사실 토론의 '토'에도 싸움의 의미가 있으므로 디스커션은 숙의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숙의가 늘수록 공동체의 저력이 쌓일 것이고 우리 사회는 앞으로 분열과 싸움을 멈추고 그런 성숙한 숙의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천관율 기자의 민주주의 역전 관련 글에서는 어떤 경제학자가 말한 '트릴레마', 즉 전면적 세계화, 국가 주권,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뤄내긴 어렵다는 것을 되새겼다. 현재 우리나라는 2020년 총선을 통해 리얼라인먼트(realignment)라고 정치 체제를 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암흑 유권자(기자는 고졸 유권자 30%로 예측하는 듯)를 불러내는 것, 그들 블록을 호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정치에 대해 전체적으로 꿰뚫는 힘을 가진 글을 보는 듯했다.
홍성국 대표의 수축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신자유주의에서 국가중심자본주의로 이데올로기를 전향한 듯한 미국을 비롯하여 향후 우리 나라가 나아가야 할 경제적 방향에 대해 심도있게 고찰하고 있다. 세계의 흐름을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수축사회 시류가 우리 나라에 미칠 영향과 4차 산업 육성의 필요성 등을 광범위한 시각에서 제시하고 있다.
헤이조이스 이나리 대표는 여성이 남성처럼 당당하게 일하고 자기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업을 운영하며 여러 데이터를 제시하여 여성이 아직 차별받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녹색어머니회가 없어지면 좋겠다. 어머니들은 그 시간에 당연히 집에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케케묵은 생각들이 이어져온 이름이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기업 CEO여서 더 공감하며 읽었던 챕터고 내가 우리 딸들의 학교에 녹색어머니로 참여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할 수 밖에 없는 구조는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유명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피의자의 인권이 중시되는 현 상태에서 피해자의 인권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함을 얘기하며 성문제, 특히 여성을 타겟으로 한 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웠다. 힘의 역전이라는 제목에 딱 맞는 챕터다.
김경수 도지사의 경남권 메가시티 플랫폼 문제는 하이닉스의 용인 부지 선택을 계기로 하여 출생율, 지역 발전, 지역 인재 양성을 거쳐 교육, 교사 양성에까지 논의를 넓히고 있다. 지방자치, 지방분권의 이야기는 지방에 사는 내가 몹시 공감한 부분이다. 친척이며 친구며 전부 수도권으로 가고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들, 혹은 결혼한 전업친구들만이 외로이 이 곳을 지키고 있다. 부울경이 더더 발전하면 좋겠다.
사실 사법농단, 사법개혁에 대해 관심이 많이 없었다. 류영재 판사의 강의를 읽고 우리 나라의 사법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며 나와 괴리된 그들만의 세상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분업으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벌어지는 '사법농단'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시도를 발견하고 사표를 던진 이탄희 판사로부터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에 대한 재판거래 의혹까지 많은 사건들이 엮여 있다. 정치적인 문제까지 확대될 수 있어 깊은 판단이 필요한 챕터다.
신수정 부사장의 리더십 전환 이야기는 실패를 동력으로 삼는 성장 마인드셋, 일의 가치를 따라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목적 중심 마인드셋,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라는 외향적 마인드셋을 가진 리더십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요지로 균형있는 리더십을 제안한다.
이러한 생산적 포럼이 많이 진행되고, 시간상 참석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이런 강연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얕은 지식에 구멍을 메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