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의 유토피아 - 왜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연효숙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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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영국인 토머스 모어의 저서이자 지금까지 회자되는 고전이다. 이 책은 모어가 유토피아를 집필할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원하는 유토피아는 어떤 국가이며 어떤 세상인지를 짚어보는 책이다.
모어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항해단에 라파엘이라는 인물을 편입시켜 함께 항해하고 이후 유토피아를 여행했다는 구상으로 여행기를 그리며 영국 현실 정치를 비판한다. <유토피아>는 민주주의적 통치제도와 노동하는 인간 존재, 복지제도, 행복, 학문과 배움의 소중함, 법과 도덕의 관계, 안락사, 결혼제도, 전쟁과 평화, 종교의 자유와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논하고 있다. <유토피아>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로 꼽는 것은 민주주의인데, 이때 민주주의의 의미는 서양 근대 시민혁명을 거쳐 탄생한 민주주의라기보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직접 민주주의와 유사하다. 또한 정의와 인권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가 앞선다. 유토피아의 경제분야에서의 분배 개념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적 구상에서 적극적으로 강조한 개념이다. 재산 공유 제도를 주창하며 사적 소유가 가져온 자본주의 폐해를 비판한다. 또한 복지사회라는 것이 물자를 흥청망청 쓰는 것이 아니라 낭비없는 검소한 삶을 이야기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토피아>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런데 모어는 헨리 8세의 결혼 이혼 문제와 관련하여 종교적 대립을 하다 교수형을 당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종교의 자유란 무엇일까.

인류의 미래는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우세할까? 미셀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이는 반드시 단일하고 유일한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추구하는 이념이 다른, 다양하고 이질적인 공동체들이다. 헤테로토피아가 새로운 유토피아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모어는 라파엘의 입을 빌려 인클로저운동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꼬집고 도둑을 사형에 처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당시 영국의 범죄자 처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모어는 철학자들이 왕에게 조언을 해서 왕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인공 라파엘은 왕 스스로가 철학자가 되지 않는 이상 철학자들의 충고가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모어는 현실주의자, 라파엘은 이상주의자인 셈인데, 라파엘은 공유재산제도를 철저히 옹호하고 모어는 공유재산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사유제와 공유제의 문제점을 각각 지적한다.
유토피아에서는 자기 지방의 대표를 직접 뽑는, 나름의 민주적 지방자치제도를 제안한다. 단, 이 모든건 공동체를 위한다는 조건이 있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 맞는 노동은 당연하며 노동 시간은 6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남는 시간은 여가 생활을 즐긴다. 모어는 국가가 존립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국민이 최소한의 노동을 즐겁게 하면서 자아실현을 위한 여가를 마련하게 하는데 있다고 본 것이다.
유토피아인들은 금은을 경멸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허가만 받으면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데 여행 허가제는 유토피아 사회의 투명성을 위한 것이다. 유토피아인들이 말하는 행복은 정신적 쾌락과 육체적 쾌락(건강) 상태에 있는 것이며 배움을 즐거워 한다. 이들의 법 체계는 매우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으며 노예도 있지만 오로지 자기들이 직접 싸운 전쟁에서 붙잡은 자들 뿐이다. 안락사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는 점은 당시로서도 상당히 파격적이라할 수 있으며 결혼 전에 상대방에게 알몸을 보임으로써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것까지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혼은 매우 드물게 허용된다. 군대는 용병제인데 유토피아인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자폴레타의 용병을 고용하며 이들 목숨을 하찮게 생각하는 태도는 모순적이다.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이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봤을 때 상당히 진보적이며 심지어 여성도 사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이 책의 저자는 <유토피아>가 역사에 대한 비전, 즉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부족하며 과학기술사회에 대한 구상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장에는 플라톤의 <국가> 등 여섯 가지 책을 추가로 소개하여 여러 사람들이 그리는 유토피아를 생각하게 한다. 내가 원하는 유토피아, 지금 현실에 맞는 정의롭고 평등한 유토피아는 어떤 건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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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전에 파닉스 떼고 챕터북 읽기 - 1년 안에 끝내는 엄마표 영어
정진현 지음 / 소울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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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엄마표 영어, 초저학년 영어공부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주위에서 많이들 추천하는 유명한 책부터 신간까지 많이도 읽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 많은 엄마표 영어 방법에 혼선이 생긴데다 그냥 사교육에 맡겨버릴까 하는 여러 가지 양가 감정까지 생겨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추천하는 책, 방법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지금 시작하는 것은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도 들었다. 엄마인 나는 혼란스럽고 아이는 해맑은 그런 상황에서 내가 중심을 잡고 수많은 책들 중에 여러 가지를 종합하든, 아니면 하나를 정하든 내가 정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초3을 앞둔 아이를 둔 부모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내용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첫 단계, 즉 3세 전후에 영어교육을 조기에 시작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시기는 이미 지났다. 두 번째 단계인 5세 전, 그러니까 영어유치원을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시기도 이미 지났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두 아이에게 쏟아부을 여력도 없거니와 일반유치원에서 충분히 아이가 배워야 할 교육과정의 단계를 누리게 하고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보루인 3단계, 8~9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어야만 했다.
초3때부터 본격적인 영어 학습이 시작되지만 이미 그 시점에 아이들의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가 어릴 때 배우지 않았던 파닉스, 사이트워드 이런 것들을 엄마인 내가 먼저 배우고 아이와 같이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원에 보내도 엄마가 보완해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아이의 영어교육 목표를 영어로 막힘없이 소통할 수 있을 만큼 영어 실력 쌓기(듣기+읽기 중심의 인풋 쏟아붓기), 그리고 영어책 읽기와 영상보기를 습관으로 만들어 실력 유지하기로 정하고 이를 위한 단계를 제시한다.
이 책은 지금이 조금은 늦은 출발시기임을 인정하고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목표로 챕터북 읽기에 진입하는 것을 잡는다. 하루에 최소 3시간을 기본으로 듣기2(집중1, 흘려1)+읽기1을 매일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초1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등교 준비하는 시간, 하교 후 쉬는 시간, 잠자기 드는 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모두 모으면 책읽기와 영상보기를 하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파닉스를 왜 공부해야 할까? 옛날에는 분명 배운 적이 없는데 말이다. 이유는 문자와 소리의 관계를 이해해서 논리적으로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읽기에 필요한 체계를 이해하면 그 체계를 활용해서 모르는 단어를 읽어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 단자음, 단모음, 혼성자음, 이중자음, 장모음, 복모음, 이중모음의 순서를 따라 어떤 원리로 읽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부모인 내가 먼저 공부하기에 쉬웠다. 파닉스 학습 시기에 함께 보면 좋은 또 다른 책이 영어사전이라고 하는데 어떤 영어사전을 활용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예를 제시해주어 좋았다. 또한 추천 파닉스 영상과 그 영상들을 어느 채널에서 볼 수 있는지 나와 있어서 아주 편리했다. 실제로 나는 쿠팡플레이가 있고 스콜라스틱 파닉스 리더스를 쿠플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이 책으로 알게 되어 아이와 함께 보았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흘려듣기를 위한 영상 중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을 골라주는 것이다. 아이가 최소한의 흥미는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내 아이에 대한 것은 엄마가 제일 잘 알테니 말이다. 아이가 원하는 영상과 엄마가 원하는 영상을 타협해서 하나씩 본다든가 하는 것도 좋다. 억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 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추천 영상의 특징과 큐알코드, 그리고 몇 분 짜리인지, 어떤 컨텐츠에서 제공하는지 등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어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영어 책 읽기의 단계에서 입문용으로 적당한 책과 그 내용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영어그림책을 쉽게 구하는 방법 등을 말해주고 있어서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텍스트를 보며 집중듣기를 1시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한다. 그래서 어떻게 효과적인 집중듣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이 나와 있다. 진짜 좋았던 게 집중듣기 플랫폼이 정말 많고 복잡하기도 하고 뭐가 뭔지도 잘 몰랐는데 그 특징과 가격 등이 아주 잘 나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고 이 책에서 추천하는 집중듣기 플랫폼 중에 하나를 결제해서 지금 순항하고 있다.
흘려듣기에 좋은 애니메이션도 소개하고 있다. 내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상들이 많아서 자막이 굳이 없이도 상황을 보고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 같다. 각 추천 마다 큐알코드가 있어서 내가 확인한 후에 아이에게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챕터북을 읽는 단계에 이르면 그 전단계인 얼리 챕터북이 무엇인지, 그리고 관련 영상이나 추천할만한 책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책의 가장 뒤에는 초등과정 권장 기본어휘 800개가 나와 있어 아이와 함께 아는 단어를 지우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너무 복잡하고 추천책이나 영상이 많은 다른 책들에 비해 이 책은 일목요연하고 확실하면서도 간단하게 영어의 길을 제시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일단 3세와 5세를 지나 8세로 가는 길목, 즉 영어를 학습이 아니라 나름의 재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 관문에 왔음을 인정하고 유아때 하는 엄마표영어와 다른 방법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제시해주어서 정말 좋았다. 7,8,9세 학부모들, 또는 영유를 보내지 않고 일반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6세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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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재발견 - 뇌과학이 들려주는 놀라운 감사의 쓸모
제러미 애덤 스미스 외 지음, 손현선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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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그냥 다이어리보다는 특정 주제가 있는 다이어리나 플래너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테크 플래너라든지, 3년 후나 5년 후의 나를 생각하며 적어내려가는 일기 등. 나 역시 감사일기를 한동안 적었고 아쉽게도 습관이 형성되지는 못했지만 바빴던 일상에 활력소였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감사하는 삶이 왜 필요한지 뇌과학으로 접근하여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감사는 사고와 정서, 행동을 수반하면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풍성하고도 다면적인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감사는 하루 아침에 습득할 수 없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학습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가 의식적으로 감사 교육 환경에 자녀를 많이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도대체 왜 우리는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이 책에서는 감사하는 삶을 살 때 어떤 이점이 있는지 다양한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당연한 말일 수 있겠지만 감사하는 삶을 살면 기분이 좋아지고 관계가 좋아지며 신체도 건강해진다. 뿐만 아니라 이타적 선행을 불러일으키며 단지 행복하고 건강한 삶뿐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개선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 중에 성공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다.

물론 감사가 늘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 감사 실천이 긍정적 여파를 일으킬 만큼 효과가 충분치 못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감사가 몸과 마음, 인간관계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대표적으로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 후 불편한 마음이나 어색함 때문에 상대방과 연결이 단절되는 경우도 있고 미래 보상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단기적 불쾌감, 부채의식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래서 성격, 관심사, 가치관을 고려하여 개인에 적합한 감사 실천을 해야 긍정적 효과를 더 많이 낼 수 있다.

감사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남자가 여자보다는 감사에 더 어려움을 느끼고 감사의 양상도 문화별로 다르게 나타나며 일부 문화권에서는 감사를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일상에 감사하기, 감사 일기나 편지 쓰기,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등 어떻게 보면 감사하기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쉬운일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힘들 때 감사하는 것이다. 삶이 순탄치 않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삶이 다시 순탄해질까?

저자들은 감사로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수적이며, 위기상황이야말로 감사가 효과를 발휘할 때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역경 상황을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복탄력성과 연결된다. 정서적 안정감을 지닌 사람들은 어떤 역경 상황에서도 큰 감정의 요동 없이 지혜롭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 중심에 바로 감사가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연구결과들은 뇌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 심리학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단순힌 감사하라, 감사는 좋은 거다, 라는 식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법을 제시한다.

인상 깊었던 부분 중에, 가족, 그러니까 부부나 자녀 사이에서의 감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권리의식은 감사와 상극에 가까운 감정이다. 권리의식이란 내가 특별한 존재이므로 주변사람들이 내게 뭔가 해줘야 한다는 태도를 말하는데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권리의식을 떨쳐버릴 수 있다. 부부 사이에서도 이런 권리의식이 발동하여 많이 싸우게 된다. 단지 내 배우자와 내가 어떤 일을 판단하는 것에 대한 임계점이 다른 것일 뿐임을 받아들이고 내 권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모든 행복이 시작된다.

오늘부터 다시 잊혀졌던 감사일기를 다시 써보아야 겠다. 이 책에서 제시한대로 말이다. 감사하는 삶을 살면 뇌의 구조에도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좀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좋은 걸 왜 실천하지 않겠는가. 오늘부터 당장 감사를 일상 아주 작은 곳으로부터 실천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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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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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할머니 품 같기도 하고 시골 냄새 같기도 한 것이 이상하게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게 한다. 사람 냄새나는 글이라고 하는게 적당한 표현같다. 박완서의 글은 그래서 따뜻하고 위로가 된다.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스치게 내버려두지 않고 의미를 두어 글로 써내려간다는 것 자체가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이다. 따숩고 뜨겁게 살다간 작가의 삶이 부럽다.

<보통사람>은 보통의 존재로서의 사람은 어떤 건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보통적으로다가 평범하게 사는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사십이 다되서가는 지금에서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른 보통의 잣대 속에 나의 보통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감갔던 또다른 글은 <꿈>인데, 꿈이란 단어만큼 희망차면서도 허무할 수 없다. 예기치 않은 일에 대한 서프라이즈와 기대감을 꿈이라 한다면 너무 앞만 보고 계획적으로 살아온 건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근거리며 살기에 이미 현실에 찌든 불혹의 직장인의 삶은 퍽퍽해서 더 그리운 청춘같은 단어다.

아들을 먼저 보낸 후 쓴 글들이 많다. 죽음에 대한 단상,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느냐 묻는 수녀님의 질문에 깃든 겸손함도 좋다. 가정을 가진 여자가 일을 갖기 위해 딴 여자를 하나 희생시켜야 한다는 글, 그당시에 딸을 신여성이 되게 하기 위해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어머니와, 그 어머니가 그리워하는 고향과 서울에 대한 모순된 감정들이 가감 없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는데 그 솔직함이 너무 좋았다. 뻔한 클리셰를 깨는 느낌이었다.

<할머니와 베보자기>는 약간 울 뻔 했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부끄러워 초등학교 때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면서도 멀찍이, 아니면 할머니와 붙어서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누가 아는 체 하는 사람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길을 가던 기억이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의 병약함과 촌스러움이 싫었던 것 같은데 박완서 역시 "할머니하고 같이 땅속으로 꺼질 수 있는 거라면 당장 꺼져버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손녀딸을 위해 밤잠 못 주무시고 송편 빚어 새벽에 쪄서 정갈한 베보자기에 싸서 이고 아침나절 20리를 걸었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 정결하고 시원하고 성깔 있고 소박한 섬유, 베보자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나이가 된 박완서가 회고하는 할머니.

내게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참 많다. 할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밤마다 엉엉 울던 초등학생 시절. 할머니가 해준 감자튀김, 자주 사주시던 육개장 컵라면, 할머니가 몰래 드시던 박카스, 사춘기가 오고 할머니보다 내가 더 중요했던 시절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하고 서운해하던,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직설적인 사랑표현, 내가 제일 좋고 내가 제일이라고 동네방네 자랑하던 우리 할머니가 보고싶어지는 글이었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엎드려 글을 쓰는 것. 규칙적인 코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 스탠드가 있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풀릴 때 행복하다는 박완서의 글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특히 남편의 코고는 소리로 그의 낙천성과 건강을 알 수 있어서 싫지 않다는 그녀의 말이 좋다. 내 남편의 코고는 소리는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되는데 새삼 미안해진다.

가을이 와서 황량하게 떨어지는 낙엽을 보다가 살구나무 가장귀를 보고 봉숭아 꽃물 든 손가락 같다고 표현하는 딸과 그 말에 인생의 맛을 느끼는 엄마. 나와 딸들도 같이 나이들어가며 그런 촉수를 소소히 지니고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녀의 글은 읽기 쉽고 겸손하면서도 솔직하다. 책 제목처럼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그것이 진실이고 진심이면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건 감동이다. 글에 진실을 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일기장에 몰래 적어야 할 감정과 진실들을 그대로 수면 위로 드러내는 용기가 글쓰기의 시작임을 박완서의 글들은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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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읽다, 마음을 읽다 - 뇌과학과 정신의학으로 치유하는 고장 난 마음의 문제들 서가명강 시리즈 21
권준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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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서가명강 시리즈의 뇌과학, 정신의학 관련 책으로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뇌영상학 전문가인 권준수 교수가 저자다.



1부에서는 뇌의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었다. 추론, 문제해결력, 자율성 등과 관련되는 전두엽, 공감각과 관련된 두정엽, 청각과 관련된 측두엽, 시각과 관련된 후두엽이 대뇌에 위치하고 있고, 인지 및 운동능력을 조정하는 소뇌가 척수와 연결되어 있다. 카할이라는 사람이 골지염색으로 뇌 신경계의 구조를 밝혀냈는데, 신경계는 신경세포와 신경교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신경세포는 다른 세포로부터 신호를 전달받는 수상돌기가지, 세포유지에 필요한 단백질 및 효소를 생성하는 세포핵과 다른 세포 조직으로 구성된 세포체, 세포 사이 신호를 위한 축삭으로 이루어져 있다. 축삭은 마이엘린이라는 막으로 싸여 있는데 이 마이엘린 수초가 축삭에 감겨 자극 전달 속도를 빠르게 하는 수초화 현상은 20세에 이르러 완성된다. 이러한 뇌의 구조를 바탕으로 볼 때, 똑똑한 뇌, 높은 지능을 갖기 위해서는 신경망의 연결이 핵심이며 그러려면 유아기에 다양한 환경과 자극에 노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뇌는 사용할수록 활성화되고 그래야만 퇴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연결망이라는 것이 참 신기해서 새해계획에 우리가 곧잘 실패하는 이유도 설명된다. 새해계획에 성공하려면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을 통해 연결망이 바뀌는 뇌 가소성이 생겨야 한다고 하니 연결망이 생기기까지 꾸준한 반복으로 습관화시키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아이가 생후 6개월이 되면 뇌 속에 언어 음성 지도가 만들어지고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는 5~10세가 결정적이라고 하니 조기 영어교육이 성행하는 이유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다.



2부는 마음의 문제에 대한 내용이다. 변연계라는 것은 대뇌와 간뇌의 경계를 따라 시상과 시상하부, 편도체 등으로 이루어진 기능적 시스템인데,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제 기능을 못하면 우르바흐-비테 증후군이다. 사이코패스라 불리우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에 대해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던 계기도 되었다. 이 장애는 정신을 집중하게 하고 충동, 폭력을 억제하게 하는 전전두엽 활성이 저하되어 있고, 두려움을 느끼는 편도체 연결성에도 문제가 있으며 해마, 선조체 등 변연계 기능이 전체적으로 저하되어 있다. 존 내쉬 등이 앓았던 조현병은 우리 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조현병의 의미는 '마음 정진은 너무 긴장해 조금하게도, 너무 이완되어 게으르지도 않게 항상 마음의 끈을 적절히 조율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전두엽과 시상의 연결성은 낮고 두정엽과의 연결성은 높으며 도파민이 과활성되어 나타나는 병이다. 시상의 미세구조가 감소되어 있고 뇌실 공간이 커져 뇌의 실질적 부분은 줄어든 상태다. 일반인들은 신체질환자를 대할 때보다 정신질환자를 대할 때 더 잘 공감하지 못하는데 실제 연구결과도 일반인의 뇌에서 정신질환자를 대할 때 공감이 어려워 인지적 지원이 많이 요구되는 내측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특히 코로나로 더 많이 앓고 있다는 우울증은 신경조절술로도 치료 가능하며, 운동이나 웃음, 명상 등으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학적 근거도 제시하고 있는데 운동 후에는 전전두엽, 전대상피질, 해마 부피가 회복되고 양측 뇌를 연결하는 뇌량 연결성이 증가한다고 하며, 웃음 후에는 덴도르핀이 생성되는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우울증, 조현병 등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해결책을 같이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느꼈다.



3부는 행복한 마음은 뇌에 있다는 것이다. 동료 의사인 브로이어의 환자 안나 오를 치료하면서 프로이트는 정신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이 현상을 깨닫고 이드, 에고, 슈퍼에고 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본능, 뇌간과 관련있는 원본능 이드, 갈등 확인과 조절, 전대상 이랑과 관련있는 자아 에고, 전전두엽, 두정엽과 관련있는 초자아 슈퍼에고의 개념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특히 고등동물일수록 억제력과 관련있는 전두엽이 슈퍼에고와 관련되어 활성화된다고 한다.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바꿔주는 항정신병 약물이나 항우울제의 역할, 인지행동치료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행복을 위한 공식이 나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는데, 균형잡힌 건강한 식단, 수면, 일광욕, 운동, 명상 등이 도움이 되며 이것들이 왜 도움이 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특히 명상의 일종인 템플스테이는 전두엽, 두정엽 사이 그리고 뇌백질 연결성을 증대시켜 디폴트모드 네트워크의 기능적 연결성을 강화시킨다고 한다. 아이러니하면서 신기했던 건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뇌의 선조체에서 도파민과 작용해 행복감을 만들어내는데, 도파민은 코르티솔이 있어야 지속적 만족감을 준다고 하니 약간의 스트레스가 행복감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거다.



4부는 과학이 마음의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특히 이 장에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는데, 바둑인들은 후두엽과 측두엽에 걸쳐 있는 방추 상회의 백질 치밀도가 증가하는 대신 전 운동피질 부위의 백질 치밀도는 감소한다고 한다. 이들은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통합에 있어서 일반인들보다 뛰어나고 그 이유가 뇌의 구조로 설명되는 것이다. 그리고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들의 뇌를 연구한 것도 인상깊었다. 아인슈타인 뇌는 좌우 두정엽 하단부인 연상회가 일반인보다 더 넓은 대신 좌우 두정엽 사이의 홈인 실비안 열구가 얕고 그 자리에 뇌 신경세포가 있다고 한다. 특히 언어중추인 측두엽이 작아 아인슈타인이 모국어 습득에 늦었던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AI의 발달이 정신의학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으며 미래에 어떤 도움을 더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었다.



우울증, 조현병 등의 여러 정신적 문제는 결국 뇌의 문제다. 특히 조현병은 평생 잘 관리하면 일상 생활이 가능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 주위 사람들의 지원, 시선의 변화 등이 필요하다. 요즘은 많이 인식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신적 문제는 신체적 문제에 비해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되기 쉽다. 사실 그들도 어찌할 수 없는 뇌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이런 정신의학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지원이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내가 몰랐던 뇌의 수많은 기능, 신비에 대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행복한 삶을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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