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 수많은 여성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해결이 안 되는 걸 보면 여전히 사회적, 환경적 걸림돌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책은 어찌나 노골적이고 실질적으로 쓰여있는지 마치 저자가 나와 얘기를 나눈 후 그 이야기들을 모아서 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12년 간 치열한 직장생활을 해본 저자의 깊은 내공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대한민국에서는 출산도 프로젝트다""우리는 사이보그가 아니라 인간이다""난 당신의 누나가 아니야""여자의 꿈, '한번 더 해볼까''이쯤에서 그만둘까'" 등의 이야기다. 이 문제들은 나와 내 주변의 동료후배들이 지독히 고민했고 지금도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영원한 고민의 주제들이다. 또한 '연차가 낮을수록 사장마인드를 가져라'는 후배 S양에게, '일 잘하는 여자가 옷도 잘 입는다'는 후배 K양에게, '체질적으로 안 맞는 사람과 공존하는 법'은 후배 T양에게 특히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이제는 다행히도 그 많은 상황들을 어느 정도 무사히 지나왔고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법 또한 나름 터특했다. 하지만 아직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후배들. 그들에게 나와 똑같은 시간을 고민하고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좀더 빠른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알려주고 싶다. 요즘 자신의 고민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하는 S양의 책상 위에 내일 아침 이 책을 살짝 놓을 생각이다. '이 선배가 어떻게 직장생활을 견뎌왔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거라' 하고 말이다.
"재미있다""웃음을 멈출 수 없다""그러나 감동은 잊지 않는다." <허삼관 매혈기>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위화가 왜 대중적 인기와 문학적 평가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는 있지만, 아들 일락이와 아내 허옥란의 '일생일대의 최대 실수', 그로 인한 일락이의 출생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약간은 지리할 정도로 진행이 되서 책을 덮어버릴까 하는 실책을 범할 뻔했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나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지도 모를 미래의 모습이 조금씩 교차되면서 허삼관에게 흠뻑 빠지게 되었다. 피를 팔아가며 살아간다는 것. 지금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머뭇거리게 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인 늙은 허삼관과 젊은 혈두와의 대화 이후 허삼관이 스스로 독백하는 장면, 이 한 장면을 위해 위화는 지금까지 그토록 기나긴 이야기를 해왔음을 느낄 수 있다. "자기처럼 늙은이의 피는 살아 있는 피보다 죽은피가 많아 원하느 ㄴ사람이 없으니 가구에나 칠해야 한다고.... 사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피를 팔지 못한 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기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니.... 집에 또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집에 또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잊을 수 없다. 나의 돌아가신 아빠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런 표정을 남기셨다. 나는 서서히 발끝에서부터 식어가는 아빠의 몸을 만지며, 그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허삼관의 이야기는 내 아빠의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허삼관 매혈기>의 번역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비록 중국어를 알지는 못하지만, 번역을 통해 이런 위트와 웃음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은 번역서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다음 작품 <형제>가 벌써 책상 위에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같은 작가의 같은 역자의 작품이라는 데 신뢰를 보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하하하 허패의 집단가출이라... 제목이 너무 재미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데 허패일당(?)은 시도했단다. 그것도 28일간이나. 게다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같은 캐나다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회사에서 일상 탈출의 시간이 가질 수 있도록 1년에 한 번씩 약 한 달간 무급으로(나는 회사를 너무 사랑한다!!) 시간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해왔다. 물론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는 않았고 그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회사의 소문 또한 들어보지 못했다. 여행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싶다. 무거운 일상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소심한 인생들에게 "부럽지? 한번 꿈이나 꿔볼래?" 하며 약을 올리며 우리의 탈출을 부추기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행서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남의 여행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지? 하는 부러움에서 비롯된 시기라고나 할까? 하지만 최근 여행서의 장점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허패의 집단가출>은 그 시발점에 있다. 허패가 선사하는 재밌는 그림, 상상을 가능케 하는 수십 컷의 사진들은 또다시 여행서의 매력에 푹 빠지게 했다. 60세가 넘은 걸로 알고 있는 허영만 화백의 젊은 세상살이와 허패의 가슴 뛰게 여행일지는 무료하게만 느껴지는 삶에 새로운 쇼크를 던져준다. 일시적일지라도 허패가 전해준 신선한 기운에 당분간은 무더위와 일상의 나름함을 날리고 싶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함께 보았다. 이 책의 명성이야 국내판이 나오기 전부터 아마존에서 계속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미국 정치적인 내용들이 많아 자서전인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과는 다소 다른 유의 책이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바라보고 이 인물에 대해 왜 지금 이 시점에 흑인 대통령 후보가 세상의 주목을 받고, 그리고 세계의 핵심축인 미국의 대통령을 꿈꾸게 되었는지를 알게 한다. 여전히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세상의 다른 세계에서는 아직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그들은 실행하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 후보이지만 정치적인 책이 뉴욕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기만 하다. 물론 오바마의 매력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오바마라는 인물에 대한 책, 그리고 미국 정치(곧 세계 정치 흐름?)라는 두 가지의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던 색다른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