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이를테면 그 친구처럼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날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것뿐이니까.
그 말에 그녀는 나를 꾸짖었다.
“아니, 우연이 아냐. 우리는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너와 내가 같은 반인 것도, 그날 병원에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야. 그렇다고 운명 같은 것도 아니야. 네가 여태껏 해온 선택과 내가 여태껏 해온 선택이 우리를 만나게 했어. 우리는 각자의 의지에 따라 만난 거야.”
- 본문 P196 중 -
그로테스크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이 책 또는 애니메이션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다 동일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사실 난 애니메이션 제목을 먼저 보았다. 애니메이션을 본 것은 아니다. 뭐 저런 제목이 다 있을까? 지은이의 설명을 보니, 작가로서 주목받기 위해 저런 제목을 쓴 것으로 보였다. 결과적으로는 작가의 선택이 성공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저 위에 나오는 대사처럼 작가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대해 흥행이라는 답을 받았다. 이 책은 성공적인 작가의 데뷔작이 되었다. 소설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전부 성공을 거두었다. 무명의 라이트 노벨 작가로 일반 소설로 주목받기 위해 띄운 승부수는 적중하였고, 무명에서 유명 작가로 발 돋음 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사전 정보 없이 책을 본 것이냐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처럼 애니메이션이 성공을 거두자 소설로 만든 줄 알았다. 성공한 애니메이션의 소설화 일본에서는 이런 게 유행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무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특이한 거였고, 보편적인 원칙인 이 애니메이션도 소설이 원작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애니메이션은 생각하지 않고 책을 볼 수 있었다. 책이 재미있으면 영화를 보면 되지 모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굳이 애니메이션을 찾아볼 것 같지는 않다. 소설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책만으로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속에서 그린 소설의 장면을 꼭 영상을 통해 눈으로 남길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불치병에 걸린 여주와 남주와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 이건 흔한 소재이다. 우리나라도 각종 영화 및 소설이 즐비하다. 굉장히 진부한 이 소재를 작가는 흥미롭게 풀어나갔다. 포커스를 어디에 맞췄냐면 보통은 사랑이야기일 텐데 이 책은 성장 스토리로 맞췄다. 너무 외향적인 여성과 너무 내향적인 남성 대척점에 서 있는 두 남녀가 서로의 성격을 흠모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성장 드라마. 이 책을 간단히 표현하면 저렇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생각되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둘을 이어주고 극을 끌어가는 감정적인 텐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도 연인으로서의 사랑인지 우정으로서의 사랑인지 명확하게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부가적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진부한 소재를 흥미진진한 소설로 바꿀 수 있었다. 불치병에 걸린 대상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한다는 성장 드라마 책은 대부분 어른과 어린이의 우정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책은 젊은 남녀 간의 사이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그려내었다. 거기다 한 명이 가르치고 한 명은 받아들이는 관계도 아니다. 서로를 가르치지 않는다. 각자 서로의 태도를 통해서 스스로 성장을 이루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다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이별도 보통의 방식과는 다르게 쇼킹한 방법으로 이별을 한다. 결말을 맞이하는 방법에 대해 거북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생각치 못한 방법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결론적으로는 주인공은 성장한다. 그것도 삶이 180도로 변화할 정도로 크게 변화하게 된다. 성장 드라마에서 내가 약간 비난하는 것이 있는데, 어떤 삶은 옳은 삶이고 어떤 삶은 틀린 삶이다 라고 단정 짓는 흐름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본인에게 유리한 삶인가 불리한 삶인가에 대한 평가를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엄청난 부잣집의 소년이라면 히키코모리의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돈을 벌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이라면 저런 성향은 생존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안 좋을 것이다. 물론 소설은 변화한 성향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게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소설로 이 판단은 독자가 하면 될 것이다. 난 주인공의 이전 성향이 썩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성향이 뭐가 나쁘단 말인가? 그는 그녀처럼 외향적이 될 것으로 결심을 하고 실천해 간다. 하지만 친구 한 명을 사귀기 위해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그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1년을 보낸 것이다.
1인칭 소설의 장점은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맘에 달렸다는 것이다. 난 저렇게 평가했다. 본인이 만족한다면야 변화하는 것이 나쁘진 않으나, 이전 삶의 태도가 그리 썩 나쁜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성격을 변화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옳지 않다고 바꾼 것이 아니길 바란다. 그녀도 그의 이전 성향에 대한 동경으로 그를 ‘선택’한 것으로 분명 누군가에겐 아주 매력적인 모습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여주의 성격보다는 남주의 성격이 더 맘에 들기 때문이다. 한 편의 잔잔한 단막극을 본 것 같이 만족할만한 독서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