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더 스토리콜렉터 17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100년 이상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전달되면서 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인류는 기록의 문화이기 때문에 기록되어 후대로 전달될 수는 있지만, 전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기는 어렵다. 기록이 남겨지기 시작한 이래로 다양한 문헌들이 남아있지만, 고전을 좋아하는 몇몇에게만 의미가 있지 대다수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모를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라푼첼 등이다. 안데르센 동화 또는 그림동화로 대표되는 동화들로서 전 세계 사람들이 듣고 아는 내용이다.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정확하게 처음부터 줄줄 읊지는 못하더라도 대강의 줄거리랑 어떻게 끝나는지는 대충 말할 수 있다.

그 동화들은 영화, 만화, 책,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매체 다양한 공연 등에서 생산되고 재생산되며 사랑받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넓은 층이 이야기를 소비하고 즐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오리지널 스토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패턴의 장점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로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는 데 있고, 단점은 자칫 잘못하면 비슷한 많은 이야기들 때문에 시시함을 느끼고 책을 더 읽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떨까? 일단 첫 문단에서 독자를 확 당기는 데 성공한다. 주인공 이름부터가 신더다. Cinderella에서 이름인 Ella를 뺀 Cinder인 것이다. 물론 이 엘라라는 이름이 신데렐라의 진짜 이름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그런 부차적인 이야기는 다 빼고 많은 사람들이 신데렐라의 본명으로 알고 있는 엘라를 뺀 신더가 주인공의 이름으로 시선을 끈다. 그리고 그 소녀가 사이보그 발을 교체하는 장면으로 호기심을 강렬히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정도 보게 되면 어쩔 수 없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눈을 뗄 수 없다.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에 설정은 비슷하다. 그러나 아주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에서 사이보그 신더의 이야기는 신선함을 떠나 파격적으로 느껴진다.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에 계모가 나오고, 악독한 언니와 왕자가 나오는 건 변함이 없다. 다만, 수동적인 신데렐라가 아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이다. 그리고 흙수저 취집 성공기라는 공식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혁명의 주체로써의 주인공 모습으로 그려진다.

총 4부작으로 이루어진 소설로 첫 권은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 자각하는 것까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대 설정상 사이보그는 노예처럼 종속되어 있고, 물건처럼 취급된다. 신더는 사이보그로 노예처럼 계모와 언니들의 생활비를 벌어다 바치는 존재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탈출을 꿈꾸는 캐릭터로 왕자와의 관계로 신분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로 극복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된다.

애초에 4부작을 꿈꿨던 듯 1권에서 모든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 신더의 각성과 다음 권을 향한 짙은 복선을 그리는 것으로 마감한다. 작가의 첫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꽤나 크게 승부수를 건 것으로 보인다. 갈등이 확실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마무리한 것이다. 신인 작가가 2권이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지 않고서야 낼 수 없는 결론 방식인 것이다. 실패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4권까지 나오고 이후 외전까지 나온 것을 보니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산 것 같다.

2권, 3권, 4권은 신데렐라가 아닌 다른 동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4개의 동화를 한데 묶어 만든 소설인 것이다. 1권 까지는 성공적인 이야기고 잘 만든 이야기다. 앞으로 신더가 어떤 모험을 할지 기대된다.

1장
신더의 발목에 박힌 나사는 녹슬었다.
십자형 음각까지 다 닳아서 둥그런 모양으로 헐어버렸기에 빼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손마디가 욱신거리도록 관절에 드라이버를 쑤셔 박으며 나사를 힘껏 돌릴 때마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침내 헐거워진 나사를 강철 손으로 뽑아내 보니 가느다랗게나마 남아 있던 나삿니들마저 닳아 없어져 있었다.
작업대 위에 드라이버를 내던진 뒤 발꿈치를 붙잡고 소켓에서 발을 빼낸다. 불똥이 튀어 손끝을 데는 바람에 신더는 움찔 물러났다. 뒤엉킨 빨간색과 노란색 전선들에 발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 본문 P11 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