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빛 행복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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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이토는 달팽이 식당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물론 기록에 따른 것으로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본인의 장기인 음식 묘사, 풍경 묘사 등으로 안전하게 차기작을 마무리한 후 본인이 잘했던 여성을 화자로 아기자기하게 이어 가는 이야기가 아닌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결과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별로인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었다. 마음의 치유를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도 두려웠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치유의 글이 통할까? 단편으로 그리고 본인의 장기인 음식 묘사를 합하여 단편을 냈다. 그 시너지는 성공적인 화학 작용을 일으키게 되었다. 음식과 따뜻한 이야기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듯한 글을 써낸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확신했을 수도 있다. 치유의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그래서 다음 이야기에서는 음식을 빼고 치유의 이야기로 독자를 맞이한 것으로 보였다.

이 책 [바나나 빛 행복]이 그랬다. 오가와 이토의 전매특허인 음식 이야기는 없다. 그 대신 치유의 이야기로 지면을 가득 채웠다.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책을 덮을 때 마음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치유의 매개체는 작은 새였다. 명확한 주인공 없이 화자가 계속 바뀐다. 화자들 사이에 뚜렷한 공통점은 없다. 하나 있다면 전부 상처 받은 영혼이랄까? 작은 새 한 마리를 매개로 본인들이 치유받는다. 10년 동안 새는 계속 떠돌면서 상처 받은 이들을 보듬는다. 상처가 치유가 되면 우연한 기회로 잠깐 머문 주인을 두고 떠난다.

그래서 각각 단편소설이 될 뻔한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하나의 소설로 엮을 수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다. 어떤 장은 몇 장 되지 않은 아주 짧은 이야기로 끝나기도 한다. 짧다고 이상하지 않다. 그 화자는 그 짧은 시간에 희망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긴 글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 짧은 글이 복선이 되는 것도 아님에도 어색하지 않다. 책에서 새와 함께한 모든 이들은 나름대로 치유를 받았다. 그러면서 독자도 같이 치유 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새는 긴긴 시간 동안 다양한 주인들을 거쳐가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갖는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처음 만났던 화자를 치유하고 떠난다. 열린 결말로서 자연으로 갔던가 아니면 다른 주인을 찾던가 그것도 아니면 알을 품어준 그녀 곁으로 떠났을 것으로 보인다. 마무리까지 아련하게 끝이 났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오가와 이토의 책 중 수작이었다. 따듯한 치유의 이야기를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리본이 말했다. 우물거리는 어조였지만, 분명히 내 귀에는그렇게 들렸다. 아니, 리본이 말한 것이 아니다. 스미레짱의 말을 리본이 기억했다가 전한 것이다. 지금 한 말은 스미레짱과리본, 둘 다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그 시절, 나와 리본과 스미레짱이 만든 삼각형은 아주 작았다. 셋이서 언제나 몸을 맞대듯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삼각형은 끝없이 크게 펼쳐졌다. 한 사람은 하늘보다 더 먼 세상에 있다.
"무섭지 않아."
리본에게, 그리고 천국의 스미레짱에게 대답했다. 그렇다,
나는 무섭지 않다. 사는 것이 무섭지 않다. 이십 년 이상이나보고 싶어 했던 리본을 이렇게 다시 만났는걸. 멀리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게는 필요한 시간이었다.

- 본문 P346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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