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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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 ‘한 명’에서 노파의 목소리를 통해 ‘위안부’의 피해와 고통을 증언하는 데 집중했던 김숨은 이번 ‘흐르는 편지’를 통해 전쟁 피해자로서 여성으로 탐구의 시선을 확장한다. <전쟁과 평화>의 저자 김은실은 ‘여성들이 기억하는 전쟁은 남성의 시각으로 쓰인 전쟁과는 아주’ 다르며 ‘여성들이 기억하는 전쟁의 시작과 끝, 그리고 전쟁의 폭력과 공포는 그들이 여성이라는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소개소에 속아 위안부로 팔려온 주인공처럼 많은 여성들이 취직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 위안부가 되거나 더러는 납치당해 끌려왔다. 일명 처녀 공출을 피해 숨어 있다가 잡혀온 이들도 있었다. 공출을 피하기 위해 이루어진 조혼 역시 여성의 의지가 아니었다. 이들의 모습은 자유를 박탈당한 채 남성의 주도 아래 삶과 죽음이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전쟁 시 여성은 인간성이 거세당한 채 철저히 육체로만 기능할 것을 강요받는다. 주인공 ‘나’는 ‘무리 지어 들판을 걸어오는 군인들을 보면 그냥’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던져주고’싶어 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성욕을 해결할 육체지 인간이 아니다. 이를 더욱 잔인하게 보여주는 것은 산 속 군부대에서 군인을 받던 ‘나’가 중국 무장공의 습격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군인이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어요. 침을 튀기며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지만 일본 말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군인이 참호 바닥에 나를 쓰러뜨리더니 바지 지퍼를 내리고 내 몸에 달라붙었어요. 총탄이 참호 속으로 날아드는데도 군인은 내 몸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어요.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 말고는 ....... p131 (여성이라는)육체가 영혼을 가질 때가 있다. 남성을 위로할 대체제로 여성이 사용될 때다. 내셔널리즘과 가부장제의 결합에서 여성은 주체성을 상실한 채 남성의 어머니, 누이, 딸, 애인 등 주변 인물로만 호명된다. 소외된 남성의 유일한 안식처는 여성이라는, 지독한 남근 중심 사고다. 



일본군은 주인공 ‘나’를 성폭행하면서도 고향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슬퍼한다. “백 명의 여자가 있어도 그중에 내 엄마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 울고 싶어져. 천 명의 여자가 있어도 그중에 내 엄마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p238)” 그러나 “더러운 구멍”으로 경멸당하는 것도 “어머니”로 신성시되는 것도 모두 착취일 뿐이다. 해금의 애인인 일본군이 그녀에게 준 칼은 몸을 지킬 호신용이 아니라 자신이 죽으면 뒤따라 자결하라는 경고용이다. “일본 여자들이 자결할 때 쓰는 칼이래. 일본이 전쟁에서 지면 중국 사람들이 우리 조선 여자들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어. 일본 군인들하고 놀아났으니까. 욕보이고, 잔인하게 죽일 거라고. 아기들도......(p250)” 죽음으로 정조를 지키라는 남성의 명령은 2018년인 지금도 유효하다. 여성은 강제든 자의든 다른 남성과 ‘놀아났’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거나 죽어 마땅한 죄인이 된다. 



위안부의 존재를 최초로 증언했던 고 김학순 여사가 해방 후 50여 년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소설 말미 일본군이 쓴 일기장에는 ‘조선을 정벌 한다’라는 문장이 빼곡하다. 위안소를 다녀갔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전쟁에서 적군에게 타격을 주는 방식 중 하나는 그 나라의 여성을 성폭행하는 것이다. 자존심을 훼손당한 남성은 여성을 국가로 환원해 상대 국가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거나 여성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느낀 수치심을 회복하려고 한다. 끝순은 꿈에서 아버지에게 ‘화냥년’이란 소리를 듣거나 군자가 ‘병신’이 된 자신을 고향이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습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8월 14일은 ‘위안부’ 기림 일이었다. 그러나 전쟁 피해자로서 ‘위안부’만 기억하는 것은 얄팍하고 게으른 발상일지도 모른다. 성폭행 당한 여성을 되려 손가락질 하거나 의심하고 만나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폭행하고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 하는 일 등은 여성이 언제든 그때와 같은 일을 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흐르는 편지’는 결국 여성 전체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 소설이 꼭 읽어야 할 수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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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쉬고 싶다 -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한 카르페 디엠
니콜레 슈테른 지음, 박지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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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만 봐도 쉬고 싶어지는 책. 니콜레 슈테른의 '혼자 쉬고 싶다'가 책세상에서 출간되었다. 

여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많이 간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앞으로도 고생할 것이니 무더운 여름 만이라도 푹 쉬려는 사람들로 관광지가 북적인다. 그런데 나처럼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은 사람도 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부터 귀찮게 느껴지니 그저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그동안 못 잤던 잠이나 푹 자고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게 나의 휴식이다. 요즘처럼 혼밥(혼자 밥 먹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곡(혼자 노래방 가기) 등등 남 눈치 안보고 혼자 잘 놀고 잘 쉬는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한 책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껏 쉬러 간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아이구구 피곤함을 호소한다. 혼자 노는 사람들이라도 '잘'쉬지 않으면 그저 시간만 축내기 일쑤다. 그러다 잘 시간을 훌쩍 넘은 새벽 늦게까지 폰을 들여다보는,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게 될 때가 많다. 그게 나다 ㅠㅠ

솔직히 힐링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까 이런 잘못된 휴식을 하고 있던 내게 꼭 필요한 책이란 걸 알게 되었다. 저자인 니콜레 슈테른은 명상의 효용을 실감하고 전세계로 올바른 명상과 휴식의 방법을 전파하는 독일인이다. 그녀도 처음엔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어머니의 유방암이라는 천청벽력같은 비극이 일어난다. 자기 몸 돌보지 않고 열심히 산 건 세상 어디나 똑같나보다.  가족들은 모두 그녀의 어머니가 푹 쉴 수 있도록, 그래서 몸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의 어머니처럼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쉬지 못하고, 쉬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병이 들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대학 진학, 결혼, 이혼 등 삶의 크나큰 순간마다 자신을 지켜줬던 명상과 휴식의 방법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시작한다. 그냥 다리 뻗고 눈만 감는 게 휴식이 아니다. 이제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쉴 수 있다. 여기 그 방법이 있다.


◆ 휴식이 충만한 삶을 위한 제안 ◆ 


* 자신의 호흡을 느끼면서 생각과 기분, 계획과 기대를 내려놓자.

* 하루에 10분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

* 자신을 현재로 불러올 수 있는 단어나 짧은 문장을 활용하자. 예를 들면 “지금이면 충분하다” 혹은 “도착”을 활용하자.

* 자연으로 나가 나무들이 지닌 생명의 힘, 꽃들의 아름다움, 힘차게 흐르는 강물과 발밑의 흙을 느껴보자. 자신과 자연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보자.

* 감각을 열고 지금의 상태를 충분히 받아들이자.

* 집중력 명상과 명상 수련에 더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기울이자. 편안하고 분명한 관점과 명상의 규칙을 연결해보고, 무엇이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관찰해보자.

* 자기 자신과 타인을 향한 태도에 편안함과 다정함을 불어넣자. 미소를 짓고 턱의 힘을 빼보자.

* 하던 일이나 업무를 멈추고 휴식을 도입하여 길고 짧은 휴식 시간을 마음껏 즐겨보자.

* 자신의 직무에 언제나 생기 있는 태도로 임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전심전력을 다해서 하자.

* 필요하다면 자신의 태도를 바꿔라. 문제를 만났을 때 무조건 빨리 ‘해방’되려 하지 말고, 깊이 심호흡한 뒤에 문제의 ‘한가운데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자.

* 음악을 들으며, 가능하면 자기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 자기 자신과 이해하기 힘든 인생의 복잡함에 대하여 더 자주 웃고 미소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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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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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낚시터에서 잡아온 물고기들을 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물속을 헤엄치며 아가미로 팔딱팔딱 호흡하던 생명, 하지만 지금은 비릿한 강 비린내가 훅 끼쳐 올라오는 멈춰버린 생명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칼을 들어 대가리를 내리친다. 완벽히 죽이고 나서야 이 생명이 살아 있던 시간들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역설적이다. 이미 낚시터에서 매운탕에 소주를 가볍게 마시고 온 남편은 소파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다. 그 위로 이제 세 살, 사람 나이로 여섯 살이 된 초코가 남편의 배를 침대 삼아 누웠다. 

저들도 생명이지. 나는 죽지 않은 것들을 보면서 살아 있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언젠가는 죽지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들. 미처 알기도 전에, 준비하기도 전에 남편이, 초코가 대가리가 잘린 물고기처럼 죽어버린다면 어떨까. 섬뜩하기도 하고 벌써부터 마음이 울적하기도 하고,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천희란의 소설은 그 막연함을 생각하게 한다. 


지구 종말,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 화성 여행 등 비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지금과 별 다를 것 없는 인간들이 죽음을 맞고 남은 이들은 앞으로의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나름의 방식대로 고민한다. ‘살게 되거나 죽게 되는 것, 매 순간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미래만이 우리 앞에’놓여 있지만 그것은 승리를 알 수 없는 카드게임처럼 의미가 모호하고 현실에서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죽음도 삶도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하루하루를 버티거나 모든 걸 해탈한 듯 초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죽을 것이란 것을 알고 옆에 있는 이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일 뿐. ‘죽은 자의 이름 앞에서 산 자의 이름이 무용’ 해지더라도. - 창백한 무영의 정원 中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남편을 만나기 한참 전이었고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난 뒤였다. 가정은 무너졌고 뜻하지 않은 병이 찾아왔다. 친구들은 떠나갔고 진실한 몇 명만이 남아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고 가는 일이 이어졌다.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내가 하는 유일한 일이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인 에어』, 『로마의 휴일』 그리고 『타이타닉』....... 내가 울었던 건 잭이 로즈를 구명정에 태우고 혼자 깊고 차가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배의 한쪽 귀퉁이가 부서져 선두가 하늘로 치솟고 버티지 못한 사람들이 중력에 이끌려 힘없이 바다로 추락할 때 바이올린과 첼로, 바순과 클라리넷을 연주하면서 떨리는 입술을 앙 다물던 연주자들, 날 울게 한 건 그들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달려드는 죽음을, 노래는 막을 수가 없다.


다만 두려움 앞에서, 마지막 순간 앞에서 위로를 줄 수는 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배에서 탈출하지 않고 떨리는 손을 감춘 채 연주를 계속하던 그들의 모습이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예언자들』 속 여자는 그 연주자를 닮았다. 지구가 종말 할 것이란 것을 알지만 그것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걸 멈추지 않는 여자. 어느 시집의 제목처럼 ‘쓸모없는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되뇌는 여자. 오래 전 보았던, 날 살게 했던 영화의 한 장면과 소설 속 장면이 오버랩 되고, 생선 비닐이 묻은 손을 씻어내며 나는 가만히 읊조린다. ‘쓸모없는 것이 아름답다.’ - 예언자들 中








##이글은리뷰를어떻게해야하나ㅠㅠ고민하다가상상을가미해서쓴것입니다 오글거리고 으잉 싶지만ㅎㅎ길이가 아까워서 올리는. . 졸작리뷰. . 소설집 앞에 있는 두편을 꺼내서 쓴 것이고 나머지는 실력 부족으로 쓰지 못했습니다ㅎ. . 더 많은, 좋은 작품들이 있으니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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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딘성으로 가는 길 -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기억과 약속을 찾아서
전진성 지음 / 책세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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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딘성으로 가는 길>은 그동안 제대로 설명된 적 없었던 베트남 참전 용사들을 재조명하고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은 그들이 베트남에 사과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스스로를 가해자의 자리에 세울 수 있을 때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꿈꿀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베트남 참전 용사들,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버린 이들은 자신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명백한 가해자였음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뻔뻔하고 소통이 안되는 보수주의자로 보고 비난을 퍼부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사실 그 비난은 그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한 우리에게 있음을, 그들을 전쟁의 도구, 미국의 무기로만 활용하고 차갑게 외면해버린 국가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 역시 가해자이자 국가 권력의 희생자였지만, 그들을 전쟁터로 보낸 국가는 단 한 번도 그들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보듬어주거나 전쟁에 참전하게 한 것을 사과한 적이 없다. 공산주의에 패배한 국가의 참전 용사들은 자신들을 돌보아 주지 않는 국가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공산주의를 빨갱이라고 욕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국가에게 시위하는 것보다 그 편이 더 빠르고 쉬웠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를 믿고, 혹은 국가에 충성을 다했던 자신들이 한 짓을 감당하고 인정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베트남 참전 용사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민들도 죄가 있다. 그동안 수박겉핥기 식으로만 베트남 참전 용사들에 대해 알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참 마음이 아프다. 결국 국가라는 잔인한 폭력과 미국이라는 거대 악이 저지른 일에 가난한 국민과 베트남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베트남은 물론, 전쟁의 도구로 활용되고 버려졌던 참전 용사들에게 우리는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의 빗장을 풀고 진심으로 베트남에 사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벤트성으로 잠깐 국가유공자를 조명하는 태도는 정말이지 저열하고 비겁한 행위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국가가 베트남 참전 용사들에게 사과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베트남에도 진정한 사과를 할 수가 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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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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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 이인시는 김승옥의 도시, '무진'처럼 낡고 쇠락한 도시로 무기력한 노동자들과 늙어버린 노인들만이 남아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배를 만드는 잘 나가는 항구도시였다는 사실은 과거의 영광이 되버린 지 오래이고, 이는 현실의 어느 지명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이런 낯설지 않은 배경이 소설을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의사, 돈보다 인간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인시에 있는 병원 역시 환자보다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익과 병원의 존속을 더욱 중요시하는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이들이 특별한 냉혈한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이 쇠락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생명을 살린다는 대의보다 환자에게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는 병원 관리자들의 모습은 차라리 생활인의 모습이고,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쉽게 비난할 수 없는 복잡한 삶의 결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인간을 하나로 특졍할 수 없다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단번에 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병원의 중간 관리자, '이석'은 희귀병에 걸린 아픈 아들을 둔 가장으로 겉으론 성실하고 평범한 중년의 남자 때때로 처량한 느낌까지 주는 남자다. 가난한 월급쟁이면서도 아들을 살리기 위해 병원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옷 하나로 한 계절을 날 정도로 검소한 모습은 때때로 처량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의 익명 게시판에 이석이 수년간 병원의 회계 장부를 고의로 조작하고 돈을 빼돌렸다는 고발글이 올라온다. 



고발자는 병원의 신입 직원, '무주'. 정의로운 일을 했다는 무주의 자부심과 달리 병원 사람들은 이석을 고발한 무주를 오히려 비난하는 눈초리를 보낸다. 아픈 아들을 둔 이석이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동정은 내부고발을 한 무주를 가해자로 만들고, 가벼운 징계로 끝날 것이라는 무주의 예상이 빗나가고 이석이 해고까지 되면서 그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회게장부를 조작하고 돈을 빼돌린 이석은 정말 나쁜 인간일까, 그가 아픈 아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정은 정말 면죄부가 되지 않는걸까. 



이석을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한 것처럼 무주의 고발 역시 정당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자신 역시 과거 근무하던 병원에서 이석처럼 비리를 저지른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주는 쫓겨나듯 해고를 당했고 지금의 병원으로 겨우 이직할 수 있었다. 이석을 고발한 것은 마치 죄인이 신 앞에 제물을 쌓아놓고 회개를 바라는 것과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타인을 법정 앞에 세워서 자신의 죄를 씻음 받으려는, 무주의 '정의'를 정말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비리가 밝혀진 이석, 타인을 이용해 자신의 죄를 사함 받으려고 했던 무주. 그리고 생명을 살린다는 대의 아래 환자를 병원의 돈줄로만 여겼던 병원 사람들.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인물들을 보면서 씁쓸함, 어지러움, 좌절감 같은 것들을 맛보게 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끝내 놓지 않은 희망이 하나 있다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무주, 옳은 일이기에 할 수밖에 없단 것을 깨달은 무주를 통해서다.  




무주는 비록 죄를 저질렀고 타인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비겁하게 그 죄를 감추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그 죄를 고백하려고 결심한다. 소설의 결말은 결심을 마친 무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으로 끝난다. 무주의 모습은 정의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정의롭지 않게 살아가는 현실 속 많은 사람들과 대조되며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을 통해 아직 무주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어딘가 남아있길 바라는 희망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런 무주가 될 수는 없는지, 독자로하여금 성찰하게 만든다. 삶은 하나의 결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딜레마고, 인간은 계속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지만 편혜영의 소설은 그런 어지러움에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것 같아 더욱 빛이 난다.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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