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
장자자 지음, 정세경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대륙의 이야기꾼' 이라고 불리 우는 중국 작가, 장자자. 이 책은 그가 자신의 웨이보에 '잠자기 전 읽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올린 단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중국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순박하고 명랑한 인물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때론 가슴이 저릿하게 아려오기도 한다.


하루 중 감성이 가장 깊어지는 밤에, 읽는 이야기들 답게 목차에 걸어진 소제목들도 참 낭만적이다.


첫째 날 밤 - 첫사랑, 둘째 날 밤 - 고백 등 챕터마다 테마를 단 것도 그렇고, '너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라든가, '함께 웃으며 도망치면 되잖아'같은 에피소드들이 그렇다.


특히 책의 제목이기도 한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말수가 적은 조용한 남자 마오시바가 어느 날, 그의 연인 리즈에게 '내비게이션'을 선물한다. 연인끼리 반지나 꽃다발도 아니고 내비게이션이라니, 의아한데 이건 좀 특별한 거 란다.


"한 달 넘게 연구해서, 내비게이션 음성 안내 파일을 전부 바꿨어."


그 말대로 리즈가 운전 할 때 내비게이션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이런 제길, 앞에 카메라야!", "형님, 아직도 잠이 덜 깨셨어요? 이 주소 틀린 것 같은데요." 등 그 말 없고 조용한 남자가 기계를 통해서 늘어놓는 애드리브들이 참 재밌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헤어지고, 리즈는 이 내비게이션을 마오시바의 친구인 '나'에게 준다. '나'는 그 내비게이션을 차에 달고 운전하다가 무심코, '다오청'에 도착한다. 오래 전, 마오시바가 리즈에게 청혼했던 그 곳에.


그리고 들려오는 뜻밖의 목소리.



리즈, 또 다오청에 온 거야?

너는 이 파한 하늘 아래, 나의 세계로 내려온 천사야. 네 기분에 따라 내 사계절이 바뀌어. 또 네가 웃으면 환한 낮이 되고 네가 울면 어두운 밤이 되지.

리즈야, 사랑해.

리즈야. 사랑해. p.21~22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도 이제는 다 지나간 추억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그런 순간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과거의 연인에게 들려주었던 달콤한 속삭임을 듣고도, 슬며시 웃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이미 끝난 일이어서가 아니라, 과거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금세 모래에 파묻히고 말거야. 그러니 얼굴이 온통 눈물로 범벅되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뒤돌아 보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해. 앞으로 가다 보면 언젠가는 너와 어깨를 스쳐 지나가겠지. p23

추억이 빛나는 것은 그것을 뒤돌아볼 수 있게 하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장자자의 이야기들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겨울 밤, 쉽게 잠 못 드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당신이 밝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기를.



사랑아, 만약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면

난 너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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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프린스 바통 1
안보윤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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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여덟 편의 단편을 하나로 묶은 소설집이다. 제목처럼, 실제로 작가들이 호텔의 어느 방을 번갈아 묵으면서 이 이야기들을 썼다고 한다. 고급스런 방의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무언가 골똘히 상상하는, 그러다 영감이 떠오르면 휘리릭 연필을 갈기는 작가들의 모습, 참 낭만적이다.


허나 책을 읽노라면,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변변찮은 Hotel에 묵고 있는 기분이다. 

같이 온 사람들과 시시한  수다를 떨거나 혼자 책을 읽거나, 무료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그런 평범한 모습들, 그러나 개성 있는 삶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겼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단편은 작가 김혜나의 '민달팽이'였다. 그녀는 적나라한 성애 묘사와 불나방 같은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제리'로 단숨에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가였다. 거침 없는 화법과 빼어난 관찰력이 이 단편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스물 둘의 '나'는 유화를 그리는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치 오래된 부부처럼 습관적으로 옷을 벗었다. (중략)

나는 단 한 번도 그와의 섹스에서 만족을 하거나 흥분을 해 본 적이 없다.

그와의 관계에 이끌리는 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p.159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매일 그의 화실을 찾는 '나'는 그런데도 왜, 그와의 만남을 포기할 수 없는 걸까.


엄마는 '아빠가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p.162)' 그녀는 지지대없인 자라지 못하는 나팔꽃처럼 남편에 의존하고, 그를 사랑했다. '나'는 그 때 섹스를 잘하는 남자친구와 연애 중이었다. 그래서 '아빠'가 왜 매일 아침마다 밥도 안 먹고 회사에 나가는 지, '나'는 관심이 없었고 '엄마'는 그저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볼 뿐이었다.


아빠와 다른 여자의 섹스를 목격한 그 날,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그를 만나게 된 것이 그 때 쯤이었을까. 


그의 화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늘 기름진 유화 냄새가 진동했다. 언젠가, 아빠가 엄마에게 그림을 배워보라고 했는데... 


'나'는 혼자 남은 엄마를 보면서  


어느 누구도 절대로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p.167

나는 절대로 한 남자만 사랑하지 않겠다고,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내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p.168

그의 그림에서 나던 기름 냄새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한 일그러진 감정들이 내 몸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이젤과 팔레트에서 퍼져 나오는 나무 냄새, 목 언저리까지 바르던 스킨 냄새, 하루에 두 갑씩 태우는 담배 냄새, 삶 냄새.

p. 177

매스껍던 속이 울렁이며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고, '나'는 그만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꺽꺽 소리와 함께 안에 든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물인지 기름인지 알 수 없는 것들. 너무나 많은 냄새가 풍겨오는 것들. 사실은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것들. p.178


'나'는 고장 나 있었다.


<각 단편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


1. 나이가 든다는 건 잃어버림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p.43 '코 없는 남자 이야기' 中


2.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 집이라는 것은 모든 이에게 해달되는 말은 아니다. 가장 낯설고 불편한 곳이 집인 사람들도 있다. 남자도 전에는 그것을 몰랐다. p.40 '코 없는 남자 이야기' 中


3. 나는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슬프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너무 천천히 차올랐기 때문에 둑을 넘을 듯 수위가 높아진 뒤에도 알아차릴 수 없는 감정이었다. p. 148 '아일랜드 페스티벌' 中


4. 명품 가방을 든 사람? 보석을 주렁주렁 매단 사람? 그런 거 필요 없어. 우리가 노리는 건 외로운 사람이야. 외로운 사람한테선 쿰쿰한 입 냄새가 나. 잘못 말린 생선 냄새, 상한 청국장 냄새 같은 거. p.193 '순환의 법칙' 中


5,나락에 떨어진 사람들끼리는 비슷한 냄새를 풍기거든요. 흠뻑 젖은 낙엽이 썩어가는 냄새, 덜 익은 은행이 터지면서 풍기는 비릿하고 구린 냄새요. p.197 '순환의 법칙'中


<이럴 때, 이 단편>


1. 요즘 엄마가 자꾸 귀찮고, 마냥 혼자있고만 싶다면? '우산도 빌려주나요, 황현선'


2.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아내가 두려운 당신에게 '코 없는 남자 이야기, 김경희'


3. 난 판타지가 좋아 '유리주의, 이은선'


4.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난 당신에게 '아일랜드 페스티벌, 정지향'


5. 이름을 말해선 안되는 푸른 기와집 공주에게 '순환의 법칙, 안보윤'


6. 잠깐의 휴식을 즐기세요 '유리주의, 이은선'


7. 인생은 아이러니 '때아닌 꽃, 전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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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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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나는 부둣가를 내 세상처럼 누벼가며
두 주먹으로 또 하루를 겁 없이 살아간다.

희망도 없고 꿈도 없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기막힌 세상 돌아보면 서러움에 눈물이 나 

비겁하다 욕하지마 더러운 뒷골목을 헤매고 다녀도 
내 상처를 끌어안은 그대가 곁에 있어 행복했다 
촛불처럼 짧은 사랑 내 한 몸 아낌없이 바치려 했건만 
저 하늘이 외면하는 그 순간 내 생에 봄날은 간다

천명관의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에 딱 어울리는 브금(BGM)이 아닐 수 없다. 

인천을 주름 잡는 조폭 두목 양 사장은 그 지역 건달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산 채로 생매장을 당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사흘 만에 탈출하고, 자신을 파묻은 이들을 찾아 모두 인천 앞바다에 던져버렸다는 무시무시한 양 사장의 일화를 들은 건달들은 그의 앞에만 서면 오금을 저릴 정도였다.

악역으로 주로 나오는 김병옥의 모습처럼 무서울 것만 같은 이 양 사장이, 그런데 좀 이상하다?

조직의 똘마니 '울트라'에게 흠씬 두들겨 맞질 않나, 전라도의 남 회장을 잘 못 건드렸다가 얻어 터지질 않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 카리스마 있고 무자비한 모습의 조폭 두목이라기엔 꽤나 허술하고 인간적이다.

거기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에, 사춘기 소년처럼 우물쭈물하기까지!

이는 그의 오른 팔인 '현근' 역시 마찬가지다. 감히 양 사장에게 사기를 친 '뜨끈이'의 손가락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무자비함도 있지만 애인 '루돌프'를 향한 마음 만은 여느 연인들처럼 말랑말랑하다.

반면 누군가 자신과 부딪히고 가면 그의 어깨에 칼을 박아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장다리'는 오로지 '돈'과 '복수'만 생각하는 잔인한 인물이다.

또 도박 빚을 갚을 길이 없어 결국 보석 강도 질을 감행한 '삼 대리'들은, 부인까지 사채업자인 '박 감독'에게 뺏길 뻔 했으면서도 또다시 도박판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날 것처럼 살아가는 사나이들의 인생을 각 캐릭터를 통해 조각처럼 보여주는 이 소설은, 조폭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은 우리 옆에 있는 평범한 남자들의 이야기이다. 패기 넘치던 시절이 있었지만 가정의 무게에 등이 무거워진 아버지나, 무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빛내는 오빠의 모습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여러분은 떡밥(?)을 회수하는 작가의 천재적인 능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젊은 시절, 자신만의 패기 넘치는 꿈을 가졌던 사나이들의 쇠락과 그릇된 욕망, 여전히 그들 가슴에 뛰고 있는 사랑의 모습들이 참 흥미롭게 다가오는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인생이 찐하게 담긴 느와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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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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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나는 부둣가를 내 세상처럼 누벼가며
두 주먹으로 또 하루를 겁 없이 살아간다.
캔_내 생에 봄날은

희망도 없고 꿈도 없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기막힌 세상 돌아보면 서러움에 눈물이 나 

비겁하다 욕하지마 더러운 뒷골목을 헤매고 다녀도 
내 상처를 끌어안은 그대가 곁에 있어 행복했다 
촛불처럼 짧은 사랑 내 한 몸 아낌없이 바치려 했건만 
저 하늘이 외면하는 그 순간 내 생에 봄날은 간다

천명관의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에 딱 어울리는 브금(BGM)이 아닐 수 없다. 

인천을 주름 잡는 조폭 두목 양 사장은 그 지역 건달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산 채로 생매장을 당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사흘 만에 탈출하고, 자신을 파묻은 이들을 찾아 모두 인천 앞바다에 던져버렸다는 무시무시한 양 사장의 일화를 들은 건달들은 그의 앞에만 서면 오금을 저릴 정도였다.

악역으로 주로 나오는 김병옥의 모습처럼 무서울 것만 같은 이 양 사장이, 그런데 좀 이상하다?


조직의 똘마니 '울트라'에게 흠씬 두들겨 맞질 않나, 전라도의 남 회장을 잘 못 건드렸다가 얻어 터지질 않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 카리스마 있고 무자비한 모습의 조폭 두목이라기엔 꽤나 허술하고 인간적이다.

거기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에, 사춘기 소년처럼 우물쭈물하기까지!

이는 그의 오른 팔인 '현근' 역시 마찬가지다. 감히 양 사장에게 사기를 친 '뜨끈이'의 손가락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무자비함도 있지만 애인 '루돌프'를 향한 마음 만은 여느 연인들처럼 말랑말랑하다.

반면 누군가 자신과 부딪히고 가면 그의 어깨에 칼을 박아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장다리'는 오로지 '돈'과 '복수'만 생각하는 잔인한 인물이다.

또 도박 빚을 갚을 길이 없어 결국 보석 강도 질을 감행한 '삼 대리'들은, 부인까지 사채업자인 '박 감독'에게 뺏길 뻔 했으면서도 또다시 도박판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날 것처럼 살아가는 사나이들의 인생을 각 캐릭터를 통해 조각처럼 보여주는 이 소설은, 조폭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은 우리 옆에 있는 평범한 남자들의 이야기이다. 패기 넘치던 시절이 있었지만 가정의 무게에 등이 무거워진 아버지나, 무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빛내는 오빠의 모습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여러분은 떡밥(?)을 회수하는 작가의 천재적인 능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젊은 시절, 자신만의 패기 넘치는 꿈을 가졌던 사나이들의 쇠락과 그릇된 욕망, 여전히 그들 가슴에 뛰고 있는 사랑의 모습들이 참 흥미롭게 다가오는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인생이 찐하게 담긴 느와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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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이누이 루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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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과의 작별은 그런 것이었다. 이제 막 정들었던 하숙생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야 하는 집주인의 심정. 이제 겨우 당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알 것 같은데, 앞으로 당신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떠나다니요, 그런 아쉬움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묵은 해의 방을 치우자마자 2017년이 왔다. 어색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집주인인 나마저, 이제 당신과 내가 살아야 하나요, 되물을 만큼 믿을 수 없게.

그래서 더욱 2016, 아니 과거가 그립다. 책의 제목처럼 후회를 중얼거리며 밤잠을 설쳤던 수많은 날들. 힘찬 새해 준비는커녕 지난 시절의 일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도저히 과거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간절히 바라는 그 날로 돌아가서 나의 선택을 바꿀 수 있을까? 말도 안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나는 나의 과거의 조각들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는 그 때 했던 선택들이 현재를 나쁘게 만들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나의 과거를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했다.

나는 내게 꿈을 품게 해 준 그 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노력은 늘 실망스러운 것만 같았다. 허나 동물원 그 소년은 자신이 사육사의 꿈을 품었던 그 날을 기억하고, 멋진 미래를 만들어냈다. 중간에 힘든 일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 빛나는 순간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간 결과였다. 잠깐 숨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내가 소원 하는 이 꿈을 언제 가지게 되었을까, 더듬어보니 마음에 온기가 퍼졌다.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조금 지쳐 있었다. 요즘 청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무기력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서른 셋의 유키에처럼 말이다. 그런 그녀를 부러워 하는 것은 그토록 바라던 '나이를 먹지'못한 그녀의 죽은 친구들. 미래를 꿈꿔보지도 못하고 바스라져버린 이들이었다. '오늘 당신이 버린 날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던가. 눈물을 흘리는 유키에처럼 마음이 찌르르, 코 끝이 시큰해진 나도 속으로 울었다. 나의 오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과거의 내가 A가 아니라 B를 선택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죽을 것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키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 남자처럼. 나도 그 당시의 나를 믿었던 것이다. 그 어떤 미래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던 것을, 나는 너무나 쉽게 잊고 있었다. 핑계를 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렇게 된 건 그 때의 내가 저지른 멍청한 실수 때문이라고, 그렇게 오늘의 내가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을 수 있도록. 그러나 지금의 내가 소중하듯, 그 때의 나도 소중하다. 여기까지 오게 해 준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예뻤다.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소설은 실은 '이제 앞으로 나아 갈 거야'라는 말을 하고 있는 소설이다. 독자에게 과거의 조각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해주지만 그 날에 멈춰있도록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발을 움직이게 한다. 상처를 남긴 시간들에는 붕대를, 후회로 남았던 시간들에는 믿음을 주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중얼거린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면 된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그 때 너 참 예뻤구나.'하며 쓰다듬어 줄 수 있도록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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