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이누이 루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2016년과의 작별은 그런 것이었다. 이제 막 정들었던 하숙생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야 하는 집주인의 심정. 이제 겨우 당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알 것 같은데, 앞으로 당신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떠나다니요, 그런 아쉬움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묵은 해의 방을 치우자마자 2017년이 왔다. 어색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집주인인 나마저, 이제 당신과 내가 살아야 하나요, 되물을 만큼 믿을 수 없게.

그래서 더욱 2016, 아니 과거가 그립다. 책의 제목처럼 후회를 중얼거리며 밤잠을 설쳤던 수많은 날들. 힘찬 새해 준비는커녕 지난 시절의 일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도저히 과거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간절히 바라는 그 날로 돌아가서 나의 선택을 바꿀 수 있을까? 말도 안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나는 나의 과거의 조각들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는 그 때 했던 선택들이 현재를 나쁘게 만들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나의 과거를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했다.

나는 내게 꿈을 품게 해 준 그 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노력은 늘 실망스러운 것만 같았다. 허나 동물원 그 소년은 자신이 사육사의 꿈을 품었던 그 날을 기억하고, 멋진 미래를 만들어냈다. 중간에 힘든 일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 빛나는 순간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간 결과였다. 잠깐 숨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내가 소원 하는 이 꿈을 언제 가지게 되었을까, 더듬어보니 마음에 온기가 퍼졌다.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조금 지쳐 있었다. 요즘 청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무기력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서른 셋의 유키에처럼 말이다. 그런 그녀를 부러워 하는 것은 그토록 바라던 '나이를 먹지'못한 그녀의 죽은 친구들. 미래를 꿈꿔보지도 못하고 바스라져버린 이들이었다. '오늘 당신이 버린 날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던가. 눈물을 흘리는 유키에처럼 마음이 찌르르, 코 끝이 시큰해진 나도 속으로 울었다. 나의 오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과거의 내가 A가 아니라 B를 선택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죽을 것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키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 남자처럼. 나도 그 당시의 나를 믿었던 것이다. 그 어떤 미래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던 것을, 나는 너무나 쉽게 잊고 있었다. 핑계를 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렇게 된 건 그 때의 내가 저지른 멍청한 실수 때문이라고, 그렇게 오늘의 내가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을 수 있도록. 그러나 지금의 내가 소중하듯, 그 때의 나도 소중하다. 여기까지 오게 해 준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예뻤다.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소설은 실은 '이제 앞으로 나아 갈 거야'라는 말을 하고 있는 소설이다. 독자에게 과거의 조각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해주지만 그 날에 멈춰있도록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발을 움직이게 한다. 상처를 남긴 시간들에는 붕대를, 후회로 남았던 시간들에는 믿음을 주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중얼거린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면 된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그 때 너 참 예뻤구나.'하며 쓰다듬어 줄 수 있도록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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