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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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 중 2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었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긴 내용이, 주인공의 삶 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도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계속 다음 장을 넘겨보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 스테파노와 잘못된 결혼생활을 시작한 릴라는 잘못 꿰어진 첫단추에 걸려 계속해서 삶을 암흑으로 이끌어간다. 그녀는 자신을 만지려는 남편에게 반항하고, 남편과 그 가족들을 비아냥거리고, 때론 무기력한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해보지만 이미 그렇게 혐오하던 "카라치 부인"의 식구가 된 이상 결코 그 집단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의 아름다운 육체가, 뛰어난 정신이, "카라치 부인"에 종속되어 여느 아줌마들처럼 여성성을 잃고, 남편이나 아이에 매달리는 것이 될까 봐 릴라는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지만 남의 몸처럼 낯설게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날카롭게 반항한다. 릴라는 자신의 결혼 사진을 아무렇게나 칠하고 찢어발긴다. 그렇게 해서 잘못된 결혼과 자아 상실에 대한 스트레스를 완벽한 예술로 승화 해 낸다. 

이후 니노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그 사이에서만 자신이 진정한 릴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그녀가 가엾어 보였다.

한편 레누는 릴라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무의식에 사로잡혀 계속 열심히 공부를 하고 결국 어릴 때부터 꿈꿨던 소설을 쓰게 된다. 그 작품이 출판이 되고 독자간담회까지 열 정도로 인기를 얻자, 레누는 자신의 그 작품 모태가 릴라가 썼던 "푸른 요정"에서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릴라는 레누에게 받은 그 푸른요정을 불길 속에 던져버린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소설이라고 하면서... 이 장면이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파서 한동안 다음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정말 통통 튀고 반짝이는 그녀였는데 이제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예 그 흔적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릴라는 아들 리누차를 교육시키고 자신보다 더 나은 개인으로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릴라는 아직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왠지 결말을 보면 릴라에게도 해뜰 날이 올 것만 같다. 그 기술은 당대의 혁신적인 기술이 아닌가!
아들 리누차도 똑똑하고! 하지만 1편에서 봤듯이 릴라가 떠나버린다는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쉽게 결말이 예측이 되지 않는다.

3권을 빨리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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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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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는 나폴리 4부작 중 1권에 해당한다. 나폴리 4부작은 주인공 릴라와 그녀의 친구이자 전체 작품의 서술자인 레누의 청소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1권은 그 청소년기의 내용이다. 

이 때 형성되는 관계들은 마치 한 번 꿰면 잘 빠지지 않는 단추처럼 중요하다. 평생을 함께하거나 혹은 인생을 망치기 때문이다. 특히 친구 관계가 그렇다. 덜 마른 시멘트가 시간이 흘러 천천히 굳어가듯, 미숙하고 여린 나이에 사귀는 친구는 개인이 성숙해갈수록 튼튼해진다. 그리고 틀에 부어지는 쇳물처럼 한 인간의 자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설 속의 어린 소녀 레누에게 릴라가 그랬듯이 말이다.

레누에게 릴라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쟁자인 동시에 동경하는 우상이다. 릴라는 또래들보다 훨씬 똑똑해서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아이다. 그러면서도 못된 소년의 목에 칼을 들이미는 강단이 있고, 언젠가 소설을 써서 큰 부자가 되겠다는 야망도 있다. 레누는 이런 잘난 아이를 친구로 두었지만 결코 시기 질투하는 법이 없다. 소설 속 레누는 오히려 릴라를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마치 릴라의 여동생이라도 되는냥 한 단계 아래에 있는 것만 같다.

릴라의 주의를 끌기 위해 관심도 없는 책을 읽고, 릴라의 멋진 편지를 받고 자신은 왜 그렇게 글 쓰지 못하는지 좌절하고, 릴라가 남자친구가 생기자 자신도 남자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조급증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계속해서 릴라의 맘에 들고 싶어하고 영원한 친구로 남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면은 독자로 하여금 레누가 자신을 릴라보다 아래에 두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특히 릴라가 결혼식 전, 자신의 알몸을 레누에게 보여주는데 일순간 레누는 부끄러운 감정이 들며 곧 신랑이 릴라의 몸을 더럽힐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워한다. 이런 장면에선 레누가 릴라를 친구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나는 나의 청소년기에도 레누와 같은 감정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니까 릴라와 레누의 이런 관계는 여성 친구들, 특히 정말 친한 사이에선 한때나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친구에게도 오직 나만 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리고 이성 친구를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사랑의 감정, 이 은밀한 것을 작가는 너무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느끼는 소심한 열등감까지. 

그 감정을 잘 알고 있기에 소설에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아 맞아, 나도 이런 감정을 느꼈었지 하면서. 그러나 나의 이런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얕아지고 정상적인 친구 관계로 옮겨간 반면, 릴라와 레누의 관계는 점차 역전이 된다. 늘 레누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릴라가 레누보다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두 소녀 모두 가난했지만, 릴라는 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오빠와 부대껴 살면서 돈에 쫓기게 되었다. 소설을 써서 부자가 되겠다는 야망이 컸던 이유가 그런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고 독립적으로 살고자 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누구보다 똑똑했던 릴라는 끝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 그리고 가업인 구둣방을 이은 오빠와 가장 비싸고 훌륭한 구두를 만들었지만 이것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때 릴라의 아름다움에 반한 마을의 부자 마르첼로가 구애하지만 릴라는 결코 받아주지 않는다. 돈에 허덕이는 집안을 생각하면 응당 마르첼로의 마음을 받아야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릴라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구두'의 가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릴라는 그녀 자체로 살고 싶었다. 작가는 이런 릴라의 고집스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당시 만연했던 가부장적 사회에 저항하고 여성의 독립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런 고집에도 불구하고 릴라는 무너져만 간다. 마을의 또다른 부자 스테파노가 그 구두의 가치를 알아보고 청혼하자 릴라는 대번에 승낙한다. 하지만 이전에 있었던 그 똑똑함과 강단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난 뒤였다. 결혼을 하면 더이상 공부할 수 없을 거라는 좌절과 평생 누군가에 종속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이 여걸과 같았던 릴라를 약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실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그 순간부터 릴라는 약해지고 있었다. 레누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릴라가 그렇게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고 열심히 공부한 것은 진학의 목마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더욱 간절하고 애처로운 것이었다. 

어느 날 레누가 자신의 글을 릴라에게 보여주었을 때, 릴라는 그 글에 대해 순수하게 칭찬하고 난 뒤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다시는 네가 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왜?
나를 아프게 하니까. p.400-401

그리고 결혼식 날, 레누가 릴라가 신은 구두를 칭찬하자 릴라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못난 구두네.
그녀가 말했다.
아니야.
그녀가 시무룩하게 웃었다.
아니긴, 이것 좀 봐. 머리에서 태어난 꿈이 발 밑으로 추락했잖아.
그러다 소스라쳐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레누, 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p418

결혼식 이후 릴라는 자신이 원했던 공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고, 주체적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릴라는 그런 어두운 미래에 자신을 쳐박을 수밖에 없는 슬픔과 아쉬움을 친구인 레누에게 털어놓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 2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러면 끝이지.
/아니, 절대로 멈추지마. 필요한 돈은 내가 줄게. 넌 항상 공부해야 해.
나는 조그맣게 웃어 보인 후 릴라에게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학교 공부를 마칠 수밖에 없어.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p.416

이 당부는 어쩔 수 없이 좌절해버린 릴라 그녀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가슴에서 독자에게 전해지는 이 슬픔은 일순간 저항으로 바뀐다. 특히 릴라가 청첩장을 가지고 은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 감정은 커졌다. 

선생님, 제가 기억나세요?
이 사람은 누구지? 나는 이 사람을 모른다.
저예요. 체룰로. 선생님께 청첩장을 가지고 왔어요. 이제 곧 결혼하거든요. 선생님께서 제 결혼식에 와주신다면 정말 기쁠거예요.
체룰로라면 잘 알고 있지만 이 아이는 누군지 모르겠구나 p.410-411

이 선생님은 릴라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레누에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어린 시절 체룰로가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움은 피어나지 못했단다. 그 아름다움이 모두 얼굴과 가슴, 허벅지와 궁둥이로 가버렸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다움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그런 곳들로 말이야 p.368"

이런 문전박대와 회한이 담긴 은사의 말에 나는 벌컥 일어나 따져 묻고 싶었다. 은사를 향해, 아니 사회를 향해. 릴라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난과 여성을 집에만 붙박아 두는 사회 때문이지 결코 릴라 때문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런 내 울림은 그 소설 속에 들어갔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더욱 특히 여성에게 부조리한 사회였으니까. 릴라 혼자 아등바등 댄다고 해서 그것을 부술수는 없는 것이다. 그 말에 상처받은 릴라를 보면서 나는 최은영의 단편 소설 "쇼코의 미소" 속에 나오는 쇼코가 떠올랐다. 

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던 당차고 밝은 일본 소녀 쇼코가 귀국 한 뒤 할아버지 간병에 묶여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것을 '나'가 보았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 마음 한 쪽이 부숴져 버린 사람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척 상처를 숨기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을 눈물 겹게 긍정하는 걸 보는 건 더욱 아픈 일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온 정성을 쏟아 넣은, 분신과도 같은 구두를 신랑인 스테파노가 아닌 그토록 미워하던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것을 볼 때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왜 릴라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스테파노는 자신이 사갔던 구두를 마르첼로에게 준 것일까? 언젠가 릴라가 말했듯 스테파노는 사실 릴라를 사랑하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런 모욕을 준 것일까? 이 충격적인 장면으로 1권이 끝난다. 독자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이 혼란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2권을 펼칠 수밖에 없다. 마치 고무줄을 팽팽하게 끝까지 당겼다가 탁! 하고 놓아버린 듯한 느낌이다.

당시 사회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릴라들, 그리고 그들의 암울한 미래가 펼쳐지는 것만 같다.
이 소설은 언뜻 레누의 성장소설처럼 보이지만 이렇듯 여러 문제들을 녹여내면서 엄청난 무게감을 지니게 되었다. 거기다 세심한 묘사와 정말 마음을 쿡쿡 찌르는 비유들까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까지 읽고 다시 앞장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한 전율이란! 

부디 다른 독자 분들도 이 천진난만한 소녀의 얼굴 속에 감춰진 눈물의 의미를 읽을 수 있기를.

  
+) '채식주의자'의 한강이 받은 맨부커상 후보에 이름이 올랐던 작가라고 한다. 전세계에 일명 "페란테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이 책을 다 읽으면 아마 이해가 될 첫 장의 명문장을 적는다. 

난 너와 같은 무리를 한 번도 미워해 본 적이 없노라. 부정을 일삼는 모든 정령 중에서도 너 같은 익살꾼은 내게 조금도 짐스럽지 않구나. 인간의 활동이란 쉽사리 느슨해지고 언제나 휴식하기를 좋아하니 내 기꺼이 그를 자극하여 악마의 역할을 해낼 동반자를 그에게 붙여주겠노라, 괴테 <파우스트>

+) 심지어 1장의 제목은 "흔적 지우기"다. 이건 아마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릴라, 그리고 레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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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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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각의 인물들이 매 장마다 자신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연작 형식을 띠고 있다. 1장의 교코는 대학 동창과 결혼한 선배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고, 2장의 겐은 고교를 자퇴하고 집에만 박혀서 게임만 하는 히키코모리다. 3장의 지에는 남편에게 버림받을까 봐 거짓 임신 행세를 하고 4장의 준페이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자꾸만 부정한다.

이들은 저마다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거나 그 사실을 꽁꽁 숨겨버린다. 그래서 해결할 방법조차 찾지 않는다.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전철을 타고 '이동'하게 되면서 그 "멈춤"에 시동이 걸린다. 그리고 이들은 "분실물 센터"가 있는 "우미하자마 역"에 도착한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혹은 주운 것을 되찾아주기 위해, 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도착한 인물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평범한 역무원이 아니다. 펭귄과 빨간 머리 남자! 어?

낡고 오래 된 전철역에 까만 깃털과 오동통한 하얀 배를 드러낸 펭귄이라니! 이 난데없는 귀여움은 마음의 문을 닫은 인물들을 무방비 상태가 되게 한다. 그래서 인물들 자신도 모르게 이 문을 스르르 열어버리고 만다. 펭귄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판타지처럼 사람의 말을 하거나 무언가 반짝이는 힌트를 주지 않는다. 그저 이런 얼떨떨한 귀여움으로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일 뿐. 그렇지만 이미 경계가 풀린 이들은 이로 인해 한 발짝 뒤에서 자신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된다.

거기다 빨간 머리 남자 소헤이를 빼놓을 수 없다. 앳된 얼굴에 붉게 물들인 머리를 한 분실물 센터 직원 소헤이. 그 역시 인물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만 결코 어떤 해답을 주는 법은 없다. 잠깐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실상 인물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 인물들 스스로이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 여기에 있다. 펭귄과 빨간 머리 남자라는 장치는 판타지적이지만 마치 "신"이나 "선생"처럼 인물들을 섣불리 도와주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계속 맡아둘지, 혹은 돌려줄지를 물어볼 뿐이다. 이 때 인물들은 분실물을 바로 돌려받을 지 잠깐 고민하게 되는데, 이런 시간을 통해 인물들 스스로 문답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의 짐을 던 인물들에게 소헤이는 "앞으론 잃어버리지 마"하고 손을 흔들어줄 뿐이다.

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스스로 고뇌하는 이들의 속내는 독백으로 나타나는데, 이것들이 꽤나 직설적이어서 어떤 도덕적인 교훈처럼 들리는 한편,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정공법을 쓰기 때문에 오히려 납득하기가 더 쉽게 느껴진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있을 자리라 생각하는 게 마음이 홀가분하고, 마음으로 이어진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면 그 순간부터 혼자가 아닌거야. p.169

그리고 각 인물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 심각한데 비해 갈등의 크기는 크지 않기 때문에 큰 감정의 소용돌이 없이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독자에게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중간 중간 위와 같은 진리들로 마음을 훈훈하게 덥히기도 하면서.

특별히 마지막 4장은 앞 장들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연작 소설의 묘미가 이 곳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친달까. 앞서 보았던 인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리고 이들이 이전보다 밝은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은 것을 보면서 독자들은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듯 감격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 했던 이들이 변화한 후 적극적으로 4장의 주인공을 돕는 모습을 볼 때, 크나큰 감동의 파도를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가볍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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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내 유년의 빛
베이다오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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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 저를 불러 아들이 되게 하셨기에 저는 당신을 따라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책 표지에 쓰인 이 말이 참 예뻐서 더 눈길이 갔던 책 "베이징, 내 유년의 빛". 중국의 시인 베이다오(본명: 자오전카이)가 지은 이 수필집은 파스텔 민트 색 표지 만큼이나 감각적이고 다채로운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문화 대혁명과 마오쩌둥, 3년 곤란시기 등의 굵직한 명사들로 대변되는 60년대를 살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 과거란, 그 시간을 지나오면 흐릿한 안개 속에 가려져 버리는 것이기에 기억을 더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어느 것은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다가도 어느 것은 밤길을 헤메듯 캄캄하다. 그러나 그 때의 기억들은 몸 속에 하나 하나씩 박혀 있어서 찬찬히 감각을 되짚다 보면 그 때의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드문드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해도. 

그래서 이 책은 작가의 감각에 비추어 "빛"으로, "냄새"로, "맛"과 그 외 무수한 것들로 반짝인다. 나는 그 반짝임들을 나의 감각에 담기 위해 자주 책에 밑줄을 그어야 했다. 내가 처음 담은 문장은 70년대 초, 베이징에 형광등이 사용되던 시기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귀신 이야기는 만국의 공통 오락거리이다. 촛불을 한가운데 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숨을 죽이고 들었던 그 재담이 형광등이 사용되면서 차츰 시시해져버리고 말았다. 작가는 그 시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70년대 초부터 형광등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베이징 전체가 갑자기 밝아졌고, 귀신은 더이상 신비롭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걸핏하면 전기가 끊어졌다. 정전이 되면 집집마다 촛불을 켰다. 이는 사라진 유년 생활에 대한 추억이자 애도였다."      

중국 작가의 일기장 같은 이 글을, 그래서 몰래 훔쳐보는 기분으로 읽어가다 보면 베이징의 성 안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는 60-70년대의 까까머리 중국 소년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곧 그 상상은 국경을 넘어 어느새 서울의 골목길 한복판을 내달리고 있는 한국의 조무래기 소년이 되어 버린다. 

노래처럼 들리는 언어를 발음하는 민족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모습을 봤다는 것이 얼핏 이해 가지 않을 수도 있으나 책 속에 있는 60년 대, 작가의 어린 시절은 분명 우리나라의 지금 중장년층의 어린시절과 참 많이 닮았다. 

중국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우리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굉장히 배가 고팠던 시기, 흙먼지 날리는 골목길을 떼거리로 다니며 구슬 치기, 달리기, 헤엄치기 등을 하며 실컷 놀다가 밥 때가 되면 집으로 제각기 흩어지거나 혹은 주머니를 털어 입 안 가득 군것질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 

헤엄을 치다가 막 발육이 시작되는 여자아이들과 몸이라도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소년의 부끄러운 볼과, 무언가에 푹 빠져 배고픔을 잊기도 했던 순수함,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막연한 상상들... 

문화 대혁명과 대약진운동이라는 시대의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작가와, 한국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짊어져야 했던 우리나라의 그 때 모습...

이 책이 번역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아마 중국 작가의 개인적 이야기를 넘어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이 "특별한 경험"때문이 아닐까. 
 
때로 역사적인 가치 판단이 들어가야 할 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 있으나 작가가 그랬듯, 그것은 한쪽으로 밀어두기로 한다. 타국의 것이 아니냐, 하는 변명과 함께.

어쨌건 이 책을 읽으면서 담담한 문체 속에 별처럼 반짝이는 문장들로 즐거웠다, 거기다 곳곳에 베인 중국의 흥미로운 풍경들까지!

"베이징, 내 유년의 빛" 리뷰 여기서 마친다.

-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은 바로 이 까마귀 유리처럼 아무리 닦아도 소용이 없었다. p70

- 나의 상상 속에서 음악은 화려한 빛깔의 수많은 표시등 사이에서 흘러나와 우리를 그 안에 푹 잠기게 했고, 마치 유리로 된 집에서 사는 것처럼 삶을 투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p.79

- 독서는 생명의 어떤 신비한 동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이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독서 경험은 길을 안내하는 등불과 같아서 인생의 어두운 곳들을 환하게 비춰준다. p.169

-책장 맨 꼭대기에 있던 책들은 겉모습이 너무나 장엄한 데다 너무 두껍고 무거워 감히 범접할 수가 없었다. (...)이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아버지가 책장 맨 꼭대기에 올려놓은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높은 데 있으면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p.176

- 학교는 겉으로는 교장선생님이 관리하는 것 같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은밀한 권력 시스템이 감춰져 있었다. 다름 아닌 폭력이었다 p.200

- "자, 이게 가봐야지. 여기서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나는 선생님이 탓한 것이 내가 아니라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p.207

- 나는 권력이란 원래 이치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퀴벌레가 얼마든지 마른새우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울러 반란을 일으키려면 어떤 결과도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마음이 강해야 한다는 것도 실감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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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여자의 향기
왕안이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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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이 참 예쁘다. 치파오를 입고 양산을 든 채 활짝 웃고 있는 중국 여인의 모습도 그렇고, 그 위에 쓰인 글귀도 인상 깊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서점의 은은한 조명과 잘 어울리는 책. 

도시에는 연기 냄새가 난다 
시달림 당하지 않은 가장 깨끗한 사람들의 냄새다

이 수필에는 작가가 그녀의 고향인 "상하이"에 가지는 감성들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보통의 수필들이 대개 자신의 성장과정이나 어떤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 쓰인 반면 이 작품은 한 "도시"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참 특별하다.

책을 읽을 수록 상하이 구석구석을 그녀를 따라 걷는 기분이다. 화려한 거리의 풍경과 달리 은밀하게 감춰진 지저분한 골목들, 얼굴에 때가 탄 아이들이 주전부리를 손에 들고 장난을 치는 모습, 노동에 지쳐 눈에 초점을 잃은 남자들... 

그리고 여자.

마치 뱃사람처럼 투박하고 거친 상하이에 살고 있는 여자들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대비에서 오는 독특함과 이를 담아내는 작가의 섬세한 서술이 매력적이다.

그녀들은 아주 청빈한 생활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다. 노동조차 청빈한 것 같다. 그녀들은 이처럼
절약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늙어 보이지도 않고 얼굴이 싱겁고 담담하기만 한 것이다p23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교한 대목도 재밌다.

바람의 계절이 돌아오면 베이징의 하늘을 거대한 바람이 호호 탕탕 거친 기세로 행군하지만, 눈으로는 바람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별로 티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투명하던 공기가 과립 형태로 변해 바스락거리기 시작하고 천지간에 울음소리가 가득하게 된다. 이 소리는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 
반면 상하이의 바람은 훨씬 가늘고 귀엽다. 상하이의 바람은 아주 좁은 거리와 골목 구석구석을 뚫고 다니다가 손바닥만한 공터에서 회오리를 일으켜 종잇조각이나 낙엽을 날려 이리저리 떠돌게 한다. 이럴 때면 가로수 잎과 가지들도 마구 어지럽게 흔들린다. 바람이 두 건물 사이를 비집고 지나갈 때면 가벼운 충격과 함께 비비고 튕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p38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서조차 도시의 특징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 도시에 그만큼이나 애정이 서려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왕안이는 정말 상하이를 사랑하는 것만 같다. 

1부가 상하이의 한 장면 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2부의 대부분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교한 것처럼 이것도 참 섬세하고 수려한 문장들로 짜여 있다.
특히 "여성작가의 자아"라는 소제목을 담은 부분이 인상 깊다.

여성들은 항상 자신의 내면세계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마음과 경험을 되새기면서 원래 없던 맛을 낼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활발한 창조력을 지니고서도 남성들보다 훨씬 작은 천지에 구속될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환상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비좁은 삶의 공간이 보다 많은 체험을 제공할 수 없을 때, 여성들은 빈약한 내용에 약간의 수분을 주입할 수밖에 없다. p170

 때로 이런 "일반화"가 개인을 누르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그런 독자의 마음을 아는지 작가는 더 큰 생각으로 이를 따뜻하게 타일러준다. 남자와 여자의 대립이 격렬한 요즘, 이런 작가의 서술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만 같다.

여자로 사는 것이 힘들다면 남자로 사는 것은 힘들지 않단 말인가? 유명한 여자가 되는 것이 힘들다면 유명하지 않은 여자로 사는 것은 힘들지 않단 말인가? 우리가 대단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자들도 사는 것이 힘들고 유명하지 않은 여자로 사는 것도 힘들다고, 심지어 남자로 사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성별이나 명망으로 인해 형성되는 불행의 본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곤경을 만드는 이처럼 선량하지 못한 자아가 더 큰 진실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혀 고상하진 않지만 자아의 진실한 내면에 진리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p172

이렇게 성별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까지 확장되는 이런 서술에서 작가의 깊은 고민과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것들은 독자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질문이라는 점에서 참 좋았다.

이 수필의 전체적인 느낌은 섬세함이다.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이라면, 조금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마 이 수필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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