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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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각의 인물들이 매 장마다 자신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연작 형식을 띠고 있다. 1장의 교코는 대학 동창과 결혼한 선배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고, 2장의 겐은 고교를 자퇴하고 집에만 박혀서 게임만 하는 히키코모리다. 3장의 지에는 남편에게 버림받을까 봐 거짓 임신 행세를 하고 4장의 준페이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자꾸만 부정한다.

이들은 저마다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거나 그 사실을 꽁꽁 숨겨버린다. 그래서 해결할 방법조차 찾지 않는다.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전철을 타고 '이동'하게 되면서 그 "멈춤"에 시동이 걸린다. 그리고 이들은 "분실물 센터"가 있는 "우미하자마 역"에 도착한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혹은 주운 것을 되찾아주기 위해, 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도착한 인물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평범한 역무원이 아니다. 펭귄과 빨간 머리 남자! 어?

낡고 오래 된 전철역에 까만 깃털과 오동통한 하얀 배를 드러낸 펭귄이라니! 이 난데없는 귀여움은 마음의 문을 닫은 인물들을 무방비 상태가 되게 한다. 그래서 인물들 자신도 모르게 이 문을 스르르 열어버리고 만다. 펭귄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판타지처럼 사람의 말을 하거나 무언가 반짝이는 힌트를 주지 않는다. 그저 이런 얼떨떨한 귀여움으로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일 뿐. 그렇지만 이미 경계가 풀린 이들은 이로 인해 한 발짝 뒤에서 자신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된다.

거기다 빨간 머리 남자 소헤이를 빼놓을 수 없다. 앳된 얼굴에 붉게 물들인 머리를 한 분실물 센터 직원 소헤이. 그 역시 인물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만 결코 어떤 해답을 주는 법은 없다. 잠깐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실상 인물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 인물들 스스로이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 여기에 있다. 펭귄과 빨간 머리 남자라는 장치는 판타지적이지만 마치 "신"이나 "선생"처럼 인물들을 섣불리 도와주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계속 맡아둘지, 혹은 돌려줄지를 물어볼 뿐이다. 이 때 인물들은 분실물을 바로 돌려받을 지 잠깐 고민하게 되는데, 이런 시간을 통해 인물들 스스로 문답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의 짐을 던 인물들에게 소헤이는 "앞으론 잃어버리지 마"하고 손을 흔들어줄 뿐이다.

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스스로 고뇌하는 이들의 속내는 독백으로 나타나는데, 이것들이 꽤나 직설적이어서 어떤 도덕적인 교훈처럼 들리는 한편,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정공법을 쓰기 때문에 오히려 납득하기가 더 쉽게 느껴진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있을 자리라 생각하는 게 마음이 홀가분하고, 마음으로 이어진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면 그 순간부터 혼자가 아닌거야. p.169

그리고 각 인물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 심각한데 비해 갈등의 크기는 크지 않기 때문에 큰 감정의 소용돌이 없이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독자에게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중간 중간 위와 같은 진리들로 마음을 훈훈하게 덥히기도 하면서.

특별히 마지막 4장은 앞 장들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연작 소설의 묘미가 이 곳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친달까. 앞서 보았던 인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리고 이들이 이전보다 밝은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은 것을 보면서 독자들은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듯 감격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 했던 이들이 변화한 후 적극적으로 4장의 주인공을 돕는 모습을 볼 때, 크나큰 감동의 파도를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가볍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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