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여자의 향기
왕안이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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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이 참 예쁘다. 치파오를 입고 양산을 든 채 활짝 웃고 있는 중국 여인의 모습도 그렇고, 그 위에 쓰인 글귀도 인상 깊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서점의 은은한 조명과 잘 어울리는 책. 

도시에는 연기 냄새가 난다 
시달림 당하지 않은 가장 깨끗한 사람들의 냄새다

이 수필에는 작가가 그녀의 고향인 "상하이"에 가지는 감성들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보통의 수필들이 대개 자신의 성장과정이나 어떤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 쓰인 반면 이 작품은 한 "도시"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참 특별하다.

책을 읽을 수록 상하이 구석구석을 그녀를 따라 걷는 기분이다. 화려한 거리의 풍경과 달리 은밀하게 감춰진 지저분한 골목들, 얼굴에 때가 탄 아이들이 주전부리를 손에 들고 장난을 치는 모습, 노동에 지쳐 눈에 초점을 잃은 남자들... 

그리고 여자.

마치 뱃사람처럼 투박하고 거친 상하이에 살고 있는 여자들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대비에서 오는 독특함과 이를 담아내는 작가의 섬세한 서술이 매력적이다.

그녀들은 아주 청빈한 생활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다. 노동조차 청빈한 것 같다. 그녀들은 이처럼
절약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늙어 보이지도 않고 얼굴이 싱겁고 담담하기만 한 것이다p23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교한 대목도 재밌다.

바람의 계절이 돌아오면 베이징의 하늘을 거대한 바람이 호호 탕탕 거친 기세로 행군하지만, 눈으로는 바람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별로 티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투명하던 공기가 과립 형태로 변해 바스락거리기 시작하고 천지간에 울음소리가 가득하게 된다. 이 소리는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 
반면 상하이의 바람은 훨씬 가늘고 귀엽다. 상하이의 바람은 아주 좁은 거리와 골목 구석구석을 뚫고 다니다가 손바닥만한 공터에서 회오리를 일으켜 종잇조각이나 낙엽을 날려 이리저리 떠돌게 한다. 이럴 때면 가로수 잎과 가지들도 마구 어지럽게 흔들린다. 바람이 두 건물 사이를 비집고 지나갈 때면 가벼운 충격과 함께 비비고 튕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p38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서조차 도시의 특징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 도시에 그만큼이나 애정이 서려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왕안이는 정말 상하이를 사랑하는 것만 같다. 

1부가 상하이의 한 장면 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2부의 대부분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교한 것처럼 이것도 참 섬세하고 수려한 문장들로 짜여 있다.
특히 "여성작가의 자아"라는 소제목을 담은 부분이 인상 깊다.

여성들은 항상 자신의 내면세계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마음과 경험을 되새기면서 원래 없던 맛을 낼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활발한 창조력을 지니고서도 남성들보다 훨씬 작은 천지에 구속될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환상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비좁은 삶의 공간이 보다 많은 체험을 제공할 수 없을 때, 여성들은 빈약한 내용에 약간의 수분을 주입할 수밖에 없다. p170

 때로 이런 "일반화"가 개인을 누르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그런 독자의 마음을 아는지 작가는 더 큰 생각으로 이를 따뜻하게 타일러준다. 남자와 여자의 대립이 격렬한 요즘, 이런 작가의 서술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만 같다.

여자로 사는 것이 힘들다면 남자로 사는 것은 힘들지 않단 말인가? 유명한 여자가 되는 것이 힘들다면 유명하지 않은 여자로 사는 것은 힘들지 않단 말인가? 우리가 대단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자들도 사는 것이 힘들고 유명하지 않은 여자로 사는 것도 힘들다고, 심지어 남자로 사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성별이나 명망으로 인해 형성되는 불행의 본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곤경을 만드는 이처럼 선량하지 못한 자아가 더 큰 진실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혀 고상하진 않지만 자아의 진실한 내면에 진리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p172

이렇게 성별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까지 확장되는 이런 서술에서 작가의 깊은 고민과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것들은 독자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질문이라는 점에서 참 좋았다.

이 수필의 전체적인 느낌은 섬세함이다.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이라면, 조금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마 이 수필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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