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노란상상 그림책 94
이현지 지음 / 노란상상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온 세상이 잠든 밤, 깨어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서는 아이의 이야기.

 

날이 어두워지고 모두가 잠들어 조용해진 밤에 아이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작은 시계 초침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밤, 아이는 시계가 깨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하나둘씩 깨어 있는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한밤중 활짝 피어난 분꽃과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어두운 거리를 환하게 비추는 가로등,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깨어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밤 산책을 하던 아이는 어느새 눈이 감기고 잠들게 된다. 그렇게 곁에서 함께 할 분꽃, 고양이, 가로등, 바람을 생각하면서 아이는 외롭지 않게 잠들며 밤을 보낸다.

 

아이가 깨어 있는 존재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는 장면들이 산책이라는 말과 참 잘 어울렸다. 평화롭고 다정한 느낌이랄까. 어둡고 외로운 과 평화롭고 느긋한 산책이 함께 쓰이니 더 이상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제목이 주는 힘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깜깜한 밤에 눈을 감고 깨어 있는 존재들과 산책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스르르 잠이 드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 우리가 잠이 오지 않을 때 양 한 마리를 세는 것처럼 말이다. 그보다 자유롭고 활발한 영혼의 아이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표현해낸 잠자리 그림책이어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잠 드는 것을 무서워하고 어려워 하는 아이에게 이 책을 손에 쥐여주고 읽어준다면 큰 위로와 안정이 되지 않을까. 책 속의 아이가 발견한 깨어 있는 존재, 친구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친구들을 상상하면서. 아이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온 세상이 잠든 밤, 또 어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여성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백신애와 최진영의 소설들.

, 여성 작가가 말하는 여성의 사랑의 연대가 느껴지는 네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

 

소설로 들어가기에 앞서 작가의 사진과 함께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이 적힌 글이 배치된 페이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근대와 현대라는 간극 속에서 작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전반적으로 알 수 있는 구성이어서 작품을 읽어나가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가장 먼저 신춘문예 첫 여성 당선자로 활동한 백신애 작가의 세 편의 소설을 읽었다. 여성 화자의 넋두리로 쓰여있어 구전설화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광인수기는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온 여성이 남편의 외도 현장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되지만 자식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혼을 하고 집을 나온 여성이 우연히 ‘S’를 만나 사랑과 신념을 깨닫는 이야기 혼명에서, 삼십 대의 과부 순희와 십 대 소년 정규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 아름다운 노을이 발표 순서대로 배치되어있었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의 삶을 그리며, 사랑을 믿고 쓰는 최진영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었다. 백신애 작가의 아름다운 노을속 순희와 정규를 이혼을 하고 딸과 단둘이 지내는 사십 대 여성과 휴학한 후 편의점과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십 대 여성의 사랑으로 현대적으로 그려낸 소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그리고 여성 인물에 대한 이야기와 백신애 작가의 작품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게 된 과정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이 담겨있었다.

 

네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시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여성의 위치와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각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성의 광기가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 책을 통해 근대와 현대 속 여성을 마주하며 이들의 사랑을 희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책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

#작가정신 #작가정신서포터즈 #작정단10기


무엇보다 나는 현대의 순희에게 사랑의 혼란과 피로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직장과 가정에서 느끼는 피로감만으로도 벅찰 것 같았다. 순희에게 사랑은 편히 쉴 수 있는 의자, 상쾌한 바람, 따뜻한 입김 같은 것이길 바랐다. - P2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책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앤솔러지
사키 외 지음, 김석희 외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문학에서 세계문학 단편소설을 모아 <죽음의 책>(2022)이라는 앤솔러지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출간 이벤트에 참여해 당첨되었다! 그리고 <사랑의 책>과 <죽음의 책> 중 한 권을 무작위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짙은 보라색 표지의 <죽음의 책>을 받게 되어서 깜짝 놀랐다.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플래너리 오코너, 토마스 만, 리처드 매시슨, 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 유도라 웰티, 제임스 서버, 잭 런던, 윌리엄 트레버, 기 드 모파상,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사키, 레이 브래드버리, 알퐁스 도데, 윌키 콜린스, 그레이엄 그린, 몬터규 로즈 제임스, 오에 겐자부로, 진 리스.
총 19명의 작가와 소설들이 모여있는 책이다. 장르도 분량도 자유로운 이야기에는 책 제목처럼 '죽음'이 담겨있는데, 육체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죽어있는 상태와 다를 바 없는 죽음처럼 저마다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이 주제에 대해 고찰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각 소설의 제목 페이지에 작가의 싸인이 디자인되어 있다는 점이 편집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다. 심심할 수 있는 페이지가 확 개성있어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맨 마지막에 각 단편 소설이 수록된 지면과 발표 시기가 적혀있었는데, 대부분 1800~1900년대의 작품이어서 놀라웠다. 몇몇 작가 이외에는 아예 처음 보는 이름들도 많아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오래된 고전 소설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었기 때문에. 뒤늦게나마 이들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이미지가 계속 남았던 작품은 리처드 매시슨의 <뜻이 있는 곳에>였다. 한 남자가 관에 갇힌 상황을 섬세한 묘사로 풀어나가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12페이지로 비교적 짧은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반전까지 충격적이어서 내가 그 남자가 된 것처럼 여운이 남았던 소설...!

죽음의 책을 읽으면서 사랑의 책도 궁금해져서 두 테마의 책을 동시에 기획하여 만들었다는 점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사랑의 책도 소장하고 싶은 마음!) 죽음과 사랑을 주제로 잡은 세계문학 단편소설, 고전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나처럼 소설을 즐겨 읽지만 세계문학과 고전문학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인류 보편의 주제를 담은 앤솔러지 <사랑의 책>과 <죽음의 책>으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과 소설 쓰기가 삶이 되어버린 현직 작가 23인의 소설 생활 에세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소설 쓰기를 위한 작업루틴이 생긴 일화, 등단 이전과 등단 이후의 삶, 사랑하는 작가에 대하여, 소설을 쓰면서 번아웃을 겪었을 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글쓰기의 존재란 무엇인가, 소설을 쓰기 위한 낙서, 작가의 말에 대하여, 소설을 쓰는 자리에 대하여…… 등등. 소설가의 인생과 일상에 대하여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제목 페이지의 뒷장에 배치된 사진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맨 앞에 일러두기에 따르면 전부 해달 글의 작가들이 직접 제공한 사진이었다. ‘작가들의 실제 작업실 풍경을 비롯해 글을 쓸 때나 쓰기 전에 자주 찾고 머물던 공간들, 글을 쓰는 데 영감을 준 사물 등 소설 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들을 수록했다는 말처럼 흑백 사진이 한 장씩 담겨 있었다. 대부분 작업실, 작업 공간에 대한 사진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내부 디자인이 별로 없는 가운데, 유일하게 소설 생각을 담은 에세이답게 만드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기 전에 소설가의 일상을 좀 더 체감하며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라 인상적이었다.

 

23개의 소제목들 중에서 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가 표제목이 되었을까?

해당 제목으로 글을 쓴 오한기 작가는 스마트스토어로 월 매출 3억 원을 달성했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나도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스마트스토어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게 된다. 스마트스토어의 상세페이지 입력을 하는 것보다 소설을 쓰는 것이 훨씬 즐겁고 의미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은 이렇게 끝난다.

 

따지고 보면 나는 3억 대신 소설을 택한 셈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을 썼을 때 이익은 얼마일까? 순수하게 나에게 남는 건 뭘까? 과연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pp. 90-91)

 

이에 대한 답을 이어나가진 않지만, 읽으면서 오한기 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적으로 남는 것이 없더라도 이들의 마음에, 일상에,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 읽으면서 나는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계속하여, 꿈을 꿀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처럼.

 

그래서 계속 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책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

#작가정신 #작가정신서포터즈 #작정단10기


그러나 이제는 안다. 식사를 미루지 않듯 운동을 미루지 않아야만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예전보다 더 소설 쓰기를 사랑하고, 그보다 더 소설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나는 영감을 찾아 나서지 않고 다만 묵묵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에 좀 더 가까워졌다. - P46

볼라뇨의 밤 행사에서 마지막으로 연 폴더는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왜 아이스크림이고 왜 볼라뇨인지 설명할 자신은 없고 그냥 간단히 정리하면 문학이고 뭐고 아이스크림이나 먹죠 뭐 같은 건데 사실 나는 문학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나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대로 좋지만 말이다. - P57

다만 요즘 나는 소설을 쓰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약간은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이면서. 도대체 나는 무엇을 쓰고 있는 걸까? 상상 속의 내가 쓰는 글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래도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은 즐겁다. 무엇이 즐거우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도리가 없지만 이런 즐거운 상상을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한 편의 소설을 다시 쓸 수 있게 되리라. - P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피드, 롤, 액션!
연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전(前) 미미 분식에서 만난 세 사람의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


전 미미분식을 세트장으로 삼아 촬영하려고 했지만 제작비를 들고 도망간 ‘은표’ 때문에 홀로 머무르게 된 영화감독 ‘보리’와 전 미미분식의 주인 할머니 손녀이자 할머니 기일이라고 장미꽃을 들고 찾아와 머무르는 삼수생 ‘율’, 눈을 떠보니 전 미미분식의 냉장고 옆 이 인용 테이블 앞에 엎드린 채로, 1998년에서 온 시간 여행자이자 주방장 ‘상은’.


세 사람이 본격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끝이 났다. 가제본이라 감질 맛나게 끝나버린 이야기. 장편소설의 도입부만 읽은 느낌이었다. 6개의 소제목과 92페이지 분량이었는데, 미니북 형식인 것을 고려해본다면 정식 출간되는 책의 30-40페이지 정도 해당하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었다. 짧은 분량의 가제본이었지만, 그 안에서 세 인물의 등장이 전형적이지 않고 흥미롭게 흘러가서 여운이 남았다.


결국, 차례대로 준비가 되어야 최종적으로 영화를 찍기 위해 “액션!”이라고 외칠 수 있다는 것. 율과 상은이 보리가 액션을 외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일까, 준비된 사람들이 되어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결말까지 온전히 완성되어 근사한 만듦새로 정식 출간된 연여름 작가의 첫 장편소설 『스피드, 롤, 액션!』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보리의 작은 현장을 예로 들면 조연출이 그 모든 시작을 위해 ‘사운드’라고 물었을 때 이상이 없는 경우 붐오퍼레이터는 스피드라고 대답한다. 다음으로 ‘카메라’라고 물으면 촬영감독의 대답은 롤이다. 이어서 연출부 막내가 슬레이트를 치면 준비는 완료다. 그제야 감독은 액션을 외칠 수 있다. - P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