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도 될까? 노란상상 그림책 97
오하나 지음 / 노란상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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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좁은 울타리에서 만족하며 살아온 코끼리의 첫 뜀박질.

 

동물원에서 지내온 코끼리는 이곳이 지내기 좋은 곳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끼니마다 먹을 게 나오고, 때마다 깨끗한 물로 목욕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불이 나서 동물원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동물들이 울타리를 빠져나와 도망치는 순간에도 코끼리는 누군가가 와서 해결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빠르게 번져가는 불길에 다른 동물들을 따라 정문 앞까지 다다랐다. 동물들은 코끼리의 힘에 빌려 정문을 부수고 달려나가는 중에도, 코끼리는 내가 정말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갈팡질팡하게 된다. 그러다 눈을 질끈 감고 달리기 시작한다. 코끼리의 첫 뜀박질.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이다!

 

이 책은 현실에 안주하던 코끼리의 난생처음 겪는 내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태어나 기억하는 순간부터 코끼리의 세상은 좁은 울타리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코끼리의 표정이었다. 동물원의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운이 좋다고 말하는 코끼리의 표정에는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덤덤한 표정. 평생을 좁은 울타리 안에서 타인에 의해 학습되어 살아왔기 때문일까. 진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게 아니었다는 것이 느껴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서 인상 깊었다.

 

사실 달려도 될까?’, ‘달려도 괜찮을까?’ 머뭇거리는 코끼리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우리 역시 모르는 세상으로 나아갈 때,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주저하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눈을 질끈 감고 달리기 시작하는 코끼리를 보면서, 가슴이 쿵쾅거리는 감정을 느끼는 코끼리를 보면서, 우리도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 처음 달렸어.

가슴이 쿵쾅거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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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유채꽃 둘레책방 4
정도상 지음, 휘리 그림 / 노란상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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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으로 유채꽃이 빨갛게 물들게 되었던, 슬픈 희생과 폭력을 담고 있는 동화.

 

왜 붉은 유채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맨 처음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제주 사람들이 흘린 피가 유채꽃을 물들였다는 것을.

 

굇들으 마을에서 사는 아이들 중 봉달이라는 아이의 시선으로 미군과 산사람, 검은개라고 불리는 경찰들이 총과 무기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마다 젊은 사람들과 남자들을 잡아가고, 동굴에 숨기도 하고, 집은 불타 없어지기도 하는 등 이유 모를 피해를 입게 된다.

 

이러한 비극적인 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보여주니 더욱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어른들이 보아도 이해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인데 아이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동화로서 제주 4·3 사건을 어렵지 않게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평화롭고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통해 바라보는 역사이기 때문에 어른들에게도 더욱 가슴 깊이 와닿을 수 있는 거 같아서 인상 깊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아무래도 붉은 유채꽃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봉달이는 유채꽃을 따기 시작했다. 피에 젖지 않은 유채꽃을 찾아 미친 듯이 헤매며 노란 꽃을 모았다. 봉달이는 포수 할아버지의 얼굴 가득 유채꽃을 덮었다. 이어 부뜰이와 숙자와 수미의 얼굴과 가슴도 유채꽃으로 덮었다. 나머지 유채꽃으로는 미자 엄마의 얼굴을 덮어 주었다. 노란 유채꽃이 금방 붉은 유채꽃으로 변했다.’ (pp. 176-177)

 

붉은 유채꽃의 슬픈 진실. 어린아이들이 노란 유채꽃을 덮어주는 게 참 슬프고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도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제주도와 유채꽃의 낭만에 숨겨진 비극, 역사 속 슬픔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제목이어서 독자들의 마음속에도 오래 남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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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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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가지 감각에 대한 세밀하고 다채로운 정보가 담겨있는 박물관 같은 책.

 

각 감각의 챕터의 시작 페이지 구성이 참 좋았다. 앞 페이지에 해당 감각에 대한 명언이 적혀 있었고, 뒤 페이지에 그와 연관된 그림 작품이 담겨 있었다. 정말 박물관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감각의 박물학이라는 제목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각>에서는 냄새에 대한 감각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후각에 대한 개념과 기원, 향기에 대한 기억, 인간이 체취인 과 인간·동물의 페로몬등등이 담겨 있었고, <촉각>에서는 인간의 피부와 접촉, , 그리고 놀라운 촉각을 가진 동물에 대하여, 고통 및 통증의 감각과 키스와 손 같은 신체 접촉 등등이 담겨 있었다.

 

<미각>에서는 주로 음식에 대한 이야기, 로마인들의 만찬, 초콜릿과 바닐라, 송로버섯, 생강의 특성 등등이 담겨 있었고, <청각>에서는 소리와 소음에 대하여, 청력의 상실, 동물의 청각, 음악과 자연의 소리 등등이 담겨 있었다.

 

<시각>에서는 빛과 색깔, 동물에게 있는 색깔에 대하여, 화가의 시선과 색, 외적인 아름다움 등등이 담겨 있었고, <공감각>에서는 감각의 뒤섞임에 대하여, 작가의 뮤즈에 대하여 등등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묘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딱딱해보이는 인문학 책이라는 인상을 깨버리는 책이었다(!) 감각에 대하여 과학적인 이론을 넘어 이에 엮인 사회, 문화, 철학, 미술까지 나아가는 정보를 부드럽고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어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감각에 대해 하나하나 깊이 들어가 알 수 있어서 지식도 재미도 놓치지 않은 책이었다.

 

어느 전시, 박물관 못지않은 책 한 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각에 대한 자세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평소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느끼는 감각에 대한 흥미가 생길 거라는 자신이 드는 책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책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

#작가정신 #작가정신서포터즈 #작정단10기


다른 감각과 달리 냄새는 해석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냄새의 효과는 즉각적이며, 언어나 사고 혹은 번역에 의해 희석되지 않는다. 냄새는 강렬한 이미지와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압도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 누군가에게 향수를 줄 때, 기억의 액체를 주는 것이다. 키플링의 지적이 옳다. "냄새는 시각이나 소리보다 더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 - P28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만지는지 생각해보자. 아이를 달래는 엄마처럼 우리는 두 손으로 어깨를 감싸고 몸을 흔든다. 그리고 기도하기 위해, 혹은 눈물을 감추기 위해 손을 펴서 얼굴을 가린다. 걸을 때 두 손은 힘차게 오르내리고, 깜짝 놀랐을 때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손바닥으로 뺨을 누른다. 감정이 복받치는 상황에서 신체 접촉은 아주 중요해서, 우리는 남이 자신을 이렇게 위로해주었으면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쓰다듬는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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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의 사랑 오늘의 젊은 문학 8
박유경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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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경 작가는 물론, 그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는데 '밀도 높은 서사 속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려내는 작가의 세계'와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의 폭압을 버텨내면서도,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 꼿꼿한 태도를 잃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설명이 읽는 내내 와닿았던 이야기들이었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 중에서도 표제작인 <여분의 사랑>을 읽으면서 여운을 많이 느꼈다. '다희'와 '우주'의 사랑이 이미 끝났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난 여행에서 이들의 어긋나고 망가진 현실과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설이라 인상적이었다. 종종 드러나는 우주의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행동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홀로 숙소에서 빠져나오는 다희가 눈에 밟혔다. 건조하고 메마르고 지친 것처럼 보였던 다희가 강아지를 보며 울음을 참고, 우는 강아지를 보며 마음이 아팠고 마음이 아파서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다희에게 남아있는 여분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나 역시 마음 아프면서도 좋았다.

마지막에 우주와 숙소 주인 몰래 우주가 데려온 강아지를 데리고 같이 떠나는 다희의 모습을 보면서 이별을 말해온 다희에게도 어쩌면 우주에 대한 여분의 사랑이 남아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와 다희의 관계와 이들의 현실, 함께 떠난 여행에서 '여분의 사랑'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려서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맴돌았다.

끝에 실린 작가의 창작 노트에서 여분의 사랑에 대한 부분 중 우주와 다희에 대한 글이 인상 깊어서 가져와보았다.

"소설 속 우주와 다희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되돌아보면 서늘하고 나쁜 관계였을지라도 관계의 끝에 어떤 사랑이든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은 언제나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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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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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치료사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는 내밀한 언어 수업 기록.

 

언어치료사로서의 수업 내용이 일화처럼 적혀 있어서 건조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따뜻하고 다정해서 뭉클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던 에세이였다.

 

25개의 이야기는 스물다섯 명의 아이와의 만남에 대한 기록이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처음부터 어떤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아이에게 맞는 치료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의사 표현을 하고 소통을 하게 되는지 등등 사소한 부분까지 일기처럼 세심하게 기록해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언어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말하기에 귀 기울이며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저자에게도 언어치료사로서 성장해나갈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아이와 만나 수업을 하면서 언어치료사로서 느낀 서툶과 어려움을 돌이켜보며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성장 역시 느껴지는 글이었다.

 

이 책은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언어치료사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데, 특히 각 이야기의 마지막에 저자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담겨 있었다(!) 아이에게 해주는 말들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삶에서도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말들이라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저자의 편지를 읽어나가면서 저자의 마음속에 여전히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뭉클해지기도 했다.

 

언어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수업을 하며 말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소통하는 언어치료사의 뜨거운 애정이 느껴지는 에세이, 그의 따스한 마음과 아이들의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에 한 발짝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희아 너는 말하기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런데 혹시 아니?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은 너뿐이야. 보통의 사람들은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해. 정말 그래.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세상과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에 너와 함께 있는 게 더 좋았던 걸지도 몰라. 그래서 그때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던 길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건지도. - P65

우리는 신이 아니다. 인정해. 하지만 우리에게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랑은 자신을 벌주려는 내 안의 전제군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어. 누군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결아,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자. - P154

세상은 지뢰밭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네 이야기를 해주곤 해.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그런 것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즐거운 마음으로 터뜨리고 또 터뜨린다고 그래도 게임은 계속되고 삶도 지속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이야.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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