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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를 만들어간다 - 장마리아 그림에세이
장마리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8월
평점 :

저자는 첫 개인전 이후 3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30대 초반 갑작스럽게 한쪽 눈이 보이지 않자 화가로서의 삶이 끝났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우울하고 무기력했다고 한다. 그 무렵에 보던 미국 드라마에서 "이제 불평은 그만하고 뭐라도 해보세요"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 말에 화가로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단다. 그림에세이라는 장르가 생소하지만 생소하기에 더욱 궁금했던 책이다. 첫 장부터 의미심장한 그림이 보였는데, 짐시였지만 그림의 '그'자도 모르는 나로서는 괜히 읽겠다고 했나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니 저자의 에피소드와 함께 그림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찬찬히 살펴보니 작품의 의미가 편안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정령이 살고 있는 듯한 거대한 나무 밑동과 작업마다 한사코 고집하는 나무 판넬, 깍아지를 듯한 가파를 스톤마운틴과 툭 불거진 독특한 양감의 회반죽, 사파이어를 닮은 울창한 수풀 사이로 아스라이 펼쳐진 시골 풍경까지. 어린 시절 이런 원초적이고 강렬한 자연환경에 자주 동화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것들의 작은 일부일지 모른다. 그렇게 믿는 순간 지금의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는 무엇도 이상하지가 않다.
p.20, '자연을 오마주하는 일' 중에서
저자는 아버지의 학업으로 인해 미국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5학년을 졸업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중학교를 보내다가 남은 고등학교 과정을 미국에서 마쳤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두 나라를 번갈아가며 보냈다고 하는데, 환경이 바뀌는 것에 대해 불안도가 높은 나로써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편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생겼다고 생각할 무렵에 새로운 장소로 떠나와야했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저자가 어머니로부터 한국의 미술입시학원에 끌려가 석고상을 데생으로 그렸다가 주변의 웃음을 샀던 이야기를 하며 싫어하는 것이 없으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고통이 없으면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도 알 수 없으니 모두의 예상을 가뿐하게 뛰어 넘는 것, 스스로 오답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쩐지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싫어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싫고 좋음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폭넓게 경험해보고, 해봐야한다. 그러다 보면 삶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불혹에 가까운 삶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삶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을 때가 있다. 에세이를 읽다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기 위해 애써보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