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옆문과 뒷문 - 대학 입학 비리

경쟁승리자 엘리트 - 능력주의적 오만에 빠지는 현상

공공선을 찾는 것은?

포퓰리즘적 불만에 대한 진단
첫 번째 진단은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즘의 분노가 주로 인종적, 민족적, 성적 다양성의 꾸준한 증대에 대한 반동이라고 보고 있다.

두 번째 진단은 노동계급의 분노를 세계화와 기술혁신의 시대 변화가 너무도 빠른 데 대한 당황, 그리고 방향 상실의 결과라 본다.

공공선public good을 기술관료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승자와 패자를 능력주의적으로 정의 내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 이동이 가장 잘 일어나는 국가들은 평등 수준또한 가장 높은 국가들인 경우가 많다. 이를 보면 사회적 상승의 능력은 가난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의지보다는 교육, 보건을비롯해 직업 세계에서 개인을 뒷받침해 주는 수단에 대한 접근성에 달려 있는 듯 보인다.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은 ‘통제 불가능한 요인에 근거한 보상이나 박탈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정한재능의 소유(또는 결여)를 순전히 각자의 몫으로 봐도 될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재능 덕분에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와 똑같이 노력했지만 시장이 반기는 재능은 없는 탓에 뒤떨어져 버린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가진 몫이 운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보다 겸손해지게 된다.
"신의 은총 또는 행운 덕분에 나는 성공할 수 있었어." 그러나 완벽한능력주의는 그런 감사의 마음을 제거한다. 또한 우리를 공동 운명체로받아들이는 능력도 경감시킨다. 우리의 재능과 행운이 우연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할 때 생기는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그리하여 능력은 일종의 폭정 혹은 부정의한 통치를 조장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겪고 있는 ‘기술관료 버전의 능력주의는 능력과 도덕판단의 사이의 끈을 끊어버렸다. 이는 경제 영역에서 ‘공동선이란GDP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해 버렸으며, 어떤 사람의가치는 그가 제공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에 달려 있다고 못박아버렸다. 또한 정부 영역에서는 능력이란 곧 기술관료적 전문성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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