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을 근간으로 하는 감성적 기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것이 문제다. 성적이 부진한 자녀는 위로를 받아야 할 ‘객체인것과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 해야 하는 ‘주체‘ 이기도하다. 그런데 왜곡된 정의 문화는 어느새 주체는 사라지고 객체존재하게 만든다. 그래서 "저 아이도 얼마나 힘들겠어!" 라며이해를 강요하고 보호를 의무화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만다.
무조건적으로 ‘어른이니까‘ 또는 ‘우리는 가족이니까‘라는 굴레는 오히려 더 큰 갈등을 만든다. 가족이라서 오히려 무심하게 소통해도 괜찮고, 어른이니까 늘 배포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는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한국적 문화의 왜곡으로 어느 한편이 무조건적인 수용과 이해의 짐을 짊어지지 않도록, 서로에게 득이 되는 올바른 감성을 발휘하자. 상대방의 마음 깊이 숨겨진 뜻과 생각을 읽고 같은 감정으로 느끼는 소통은 어른으로 살아가지만 그 속에 여린 마음을안고 사는, 성인이 바라는 진정한 소통의 방법이 될 테니 말이다.
의사소통 능력은 의사소통을 지속하는 방법을 아는 능력인 ‘전략적 능력‘과 의사소통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화 능력의 통합‘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을 느끼고 반응하는 일방향 성격이지만감성은 발신자가 다시 수신자가 되는 쌍방향의 성격이다.
공감과 동감을 통해 감성을 발현하고 결국 동화(同和, assimilation, 같이 어울림)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감성소통의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감성은 어떤 개념에 대비한 것이 되어서도 안 되고 긍정과 부정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도 위험하다. 더욱이 감성을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풀이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감성소통의 목적은 무엇을얻어내거나 주도권을 쥐려는 것보다는 보다 나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더 발전시키는 데 있다. 때로는 소통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소통과 관계를 만든다.
당신에게 일찍은 과연 몇 분을 의미하는가? 대인관계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정의의 문제다. 그리고 정의의 문제해결이 바로 감성 대화의 첫걸음이다.
좋은 대화는 주고 싶은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받고 싶은 선물을 건네는 것이며, 좋은 소통은 모두가 만족하는 일종의 ‘기브 앤드 테이크‘다.
소통 자체에 집중하지만 그 소통이 품고 있는 내용과 적용되는 상황, 그리고 그 안에 감정까지 통찰하면 적절한 소통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의사소통은 뜻과 생각의 공유인데감성소통에서 감정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사람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생각보다는 감정에 근거한 기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소통의 순환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는 상대방의 감정을 함께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지만 기억은 정서의 자극으로 남겨진다. 고 했다.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은 잘 모르지만 좋은 느낌의사람으로 따뜻하게 기억될 수 있는 방법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저 가볍게 씨익~,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라도 상대의 동의가 없으면 좋은 마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피로스의 전투, 이겨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승리를 말한다. 상대방에게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도 결국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고, 지금은 졌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도 있다.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라는 어록처럼 조금 내어주더라도 더 큰 것을 얻어내야 이기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다.
"소통은 방법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특히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 말이다."
한국인의 소통은 말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 안 에 ‘관계’가 원활히 유지되려면 ‘소통’이라는 수단이 작동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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