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밤 스콜라 창작 그림책 84
안경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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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가면을 가지고 있어.

안경미 그림책, 가면의 밤(위즈덤하우스)

 


퇴근 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읽게 되었다.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에 만난 갓 쓴 사람과 특별한 친구가 되었다. 때마침 튼 노래도 가면의 밤과 어울린다.


앞에 나타난 갓 쓴 사람. 갓 쓴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으면 보름달이 뜨는 날 검은 입을 찾아오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그와의 만남을 잊고 싶지만 쉽게 잊힐 리가 없는 만남이 아닌가. 무엇보다 마음을 꿰뚫어 본 그 사람 말대로 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검은 입으로 향할 수밖에. 가면을 피우는 버섯들 속에서 갖고 싶었던 가면을 골라 쓴 나는 만족한다. 모든 게 완벽한 모범생 가면부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가면, 사랑받는 가면, 투명 가면까지 다양한 가면을 쓰고 벗길 반복한다. 많은 가면을 쓰면서 는 자신의 얼굴을 잃어간다. 각 가면을 쓰면서 좋은 점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뒤따랐다. 자신의 얼굴을 찾고자 했지만 의 얼굴을 갓 쓴 사람이 가면으로 쓰고 자신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는 자신의 얼굴을 잃었으니 자신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얼굴이 내 것이었을 때는 자꾸 타인의 얼굴이 좋아 보이고 탐났을 것이다. 는 막상 원하던 가면을 쓰고 생활하면서 불편함과 더불어 가면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당연하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처럼 쓰고 있으니 어울리지 않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는 수많은 가면을 쓰고 벗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얼굴, 자신의 소중함을 물론 특별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는 가면을 쓴 채 삶을 산다. 가면은 아주 다양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쓰고 벗길 반복하는 가면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많은 가면을 쓰고 벗길 반복하는 과정에서 속이 매스껍거나 두통이 일거나,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면을 쓰면서 생활하는 모습을 순간순간 알아채며, 스스로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면을 쓰고 벗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가면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에서 가면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가면 때문에 진짜 자신을 잃는다면 그건 문제다. 가면이 자신이라고 착각하거나 가면에 자신을 맞추려고 애쓸 필요 없다. 가면을 나에게 필요한 도구(수단) 정도로 생각하며,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된다. 가면 위에 내가 있어야지 가면에게 잡아 먹혀서는 안 된다. 자신을 잃는 건 순식간이지만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건 오래 걸리니까. 어제 오늘 내일 우리는 수많은 가면 속에서 가면을 하나 골라 쓴 채, 주어진 하루를 보낼 것이다. 매일 어떤 가면을 쓸지 고민하고 상대방은 어떤 가면을 썼는지 혼자 유추해 보는 재미도 있다. 일명 가면 놀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하루가 너무 가면스럽지 않길 바란다’. 가면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도 있고 감출 수도 있으니 무조건 자신을 감추고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타인의 입맛에 맞게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내가 듣고 싶은 말). 자신만의 방식대로 가면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거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감추기 위해 쓰는 가면의 의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오늘도 여러 번 가면을 쓰고 벗느라 모두 고생 많았다. 집으로 돌아와 몸을 답답하게 조여온 옷을 벗어 던지고, 예의랍시고 칠한 화장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마주한 거울 속 나는 가면을 쓰지 않은, 가면을 쓰지 않아서 진실해 보이는 나를 만났다. 거울 속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가면을 쓰면서 보낸 오늘의 무게를 떠올리니 갑자기 마음이 텅-, 비고 얼굴이 사라졌다. 눈코입이 사라지고 피부만 존재했다. 손으로 천천히, 얼굴을 더듬어 보니 눈코입이 제자리에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내 얼굴을 잃는 거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를 잃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가끔 나를 잃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어리석었다. 가면에 눌린 얼굴의 숨구멍이 숨을 쉬느라 정신없다. 숨을 쉴 수 있도록 잠깐 가만히 앉아 명상한다. 숨을 쉬며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눈을 뜨고 다시 바라본 거울 속 나의 눈코입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그린다. 내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주를 통틀어 하나라서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내 얼굴. 수많은 가면을 마음에 품은 채 살고 있는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타인의 것을 탐내지 않아도 자신에게 수많은 가면이 있고, 그 가면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하루,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진 삶이 달라진다고. 자신에게 맞는 건 나의 얼굴이지, 내 시선이 가는 얼굴이 아니며 나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또한.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검은 입으로 향하는 대신 자신을 부지런히 돌봐야 할 것이다. 나의 가꿈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깨닫게 될 테니.

 


이 그림책은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위즈덤하우스어린이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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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감사 노트 (2024 에디션 : 피치 퍼즈 & 스윗 드림) 3·3·3 감사 노트
좋은생각 편집부 지음 / 좋은생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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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에 숨어 있던 감사!

좋은생각 단행본, 3·3·3 감사노트(‘감사노트 기록단’)

 


3·3·3 감사노트를 꼭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내 간절함이 닿았는지 당첨되었다! 감사 노트에 손을 잠깐 얹고,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이유는 모르지만 떨렸다(나의 하루에 감사할 게 있나 싶어서 그랬을까). 솔직히 나의 하루에 감사한 일을 찾기 힘들 거라고 확신했다. 매일 다이어리를 쓰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늘 짜증과 한숨뿐이었고 감사는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듯 생각조차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이었다. 하루에 나에게 고마운 일 세 가지, 타인에게 고마운 일 세 가지, 오늘 하루에 기억에 남는 일 세 가지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시험지면 찍을 수라도 있지만 이 질문에는 내가 아니면 답을 아예 할 수 없는 나만의 감사 노트였다. 그래서 다행이었던 것 같다. 여백보다는 뭐라도 채우는 걸 좋아하는 내가 어떻게서든 답을 찾아내 끄적일 거라는 확신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감사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감사 노트 1일차는 뭔가 조심스러웠다. 이렇게 쓰는 건가?’라는 질문을 고마운 일 하나하나 적을 때마다 했다. 정답이 없는데, 자꾸 정답을 찾으려고 했다. 나의 하루 중 감사한 일을 이렇게 찾기 힘들었나?, 싶어서 짜증과 한숨으로 하루를 보내는 나를 꾸짖고 싶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마음과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웃음과 행복을 채울 수 있는 하루를, 그렇게 많은 날을 아쉽게 보낸 게 후회돼서 나의 하루 중 꼭꼭, 숨어 있을 감사를 찾기 위해 애썼다. 겨우 찾아 끄적인 감사는 생각보다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나에게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감사를 얼마나 거대한 덩어리로 생각했던 걸까.

감사 노트 2일차1일차보다 아주 조금 수월했다. 감사를 찾는 재미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감사를 찾기 위해서라도 나의 하루를 조금 더 괜찮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꼭 나의 하루 중, 숨은 감사를 찾는데 설레는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감사 노트를 꾸준히-부지런히-쓰다 보면, 정말 감사로만 가득한 하루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어색해서 주변을 자꾸 둘러보는 것처럼 예시로 나와 있는 감사 노트를 여러 번 보기도 했지만). 감사 노트 3일차에서 작심삼일의 표현이 떠올랐다. 다행히(?) 가장 힘든 3일째 되는 날도 무사히(?) 감사 노트를 썼다. 3일차가 되니 하루를 떠올리며 감사를 떠올리는 내 모습이 제법 익숙했다. 머리를 꽁꽁, 싸매고 찾으려 들지 않아도 감사가 내게 찾아온 것처럼 빠르게 빈칸을 채웠다. 4일차, 5일차, 6일차는 한 달은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펜을 움직였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다이어리를 쓰는 것처럼 감사 노트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감사 노트와 친해졌다. 감사한 일을 기록하니 그날 있었던 일들이 조각조각, 떠오르면서 감사한 날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가 있었기에 기록한 것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하루가 있었다!

꾸준히 감사 노트를 쓰면서 나의 하루를 값지게 보낼 것이다. 늘 평범해서 지루하게만 느꼈던 하루하루는 지루할 틈 없이 바빴고, 감사가 불쑥- 튀어나와 아주 반갑게 인사했다. 너무 작고 사소해서 내가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감사 노트를 펼치지 않았다면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눈에 보일 만큼 큰 것만 좇았고, 그 뒤에는 텅 빈 숨 가쁨과 외로움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사소한 것들을 마음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하고, 그것들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감사 노트를 쓰기 시작하고 나서 나의 하루는 천천히, 조금씩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항상 특별한 하루를 이제야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감사 노트에 오늘의 한마디가 실려 있는데, 그 한마디를 따라가다 보면 현실의 내가 꿈꾸던, 절대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온점 끝엔 가장 행복한 내가 서 있다, 내가 원하던 내가 서 있다. 눈을 감고, 문장에 손가락을 올리고 쓰다듬으면 글자가 툭-하고 튀어나와 따라붙는 것 같다, 나를 안아주려고 말이다(길을 알려주는 북두칠성처럼). 일곱 개의 오늘의 한마디를 내 마음에 깊이 새겼다, 오래오래 나를 붙들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내일도 오늘의 한마디를 마음에 새길 것이다. 텅 빈 마음을 오늘의 한마디로 새겨서 가득 채울 것이다. 환하게 빛나는 글자들을 새기다 보면 정말 내가 진심으로 웃고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내일도 감사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다. 나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사소한 순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감사를, 그 감사를 온전히 느끼며 베풀 수 있는 내가 되는 날까지 감사 노트는 쓰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차곡차곡- 쌓인 감사 노트를 보며, 감사하는 날이 올 것이다, 분명!

 


감사 노트감사 기록을 위해 좋은생각 단행본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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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감사 노트 (2024 에디션 : 피치 퍼즈 & 스윗 드림) 3·3·3 감사 노트
좋은생각 편집부 지음 / 좋은생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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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3가지씩 찾는 감사한 일을 기록할 수 있는 노트! 쓰기 시작하면 특별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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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알아주는 마음
김지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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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다림, 그리고 의지

김지호 에세이,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은행나무)

 

언어치료사가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열한 에세이라고만 생각했다. 언어치료사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펼친 이 책에 빠져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읽는 동안 미소를 짓기도 하고, 마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물컹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가볍게 책장을 넘긴 나에 대한 이 책의 울림 있는 복수(?)가 아닐까, 생각했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의 이야기와 그런 아이들을 침묵하고 숨어버리게 만드는 세상에 관한 김지호 언어치료사의 이야기는 생각에 긴 꼬리를 물어다 줬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아이들은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 옆을 지키는 보호자들도 마찬가지다. 말의 문턱 앞에서 걸려 넘어진 아이들과 그 옆에서 넘어진 아이를 찢어지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하는 보호자들의 꾸밈 없는 이야기에 세상을 향한 원망 그리고 좌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내가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면 또는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의 부모였다면, 그리고 말의 문턱에 걸린 나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을 어땠을지 등 를 대입하여 수많은 가정을 세웠다.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몸을 웅크리고 어둠이 되어 영원히 사라지길 바랐다.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쉴 새 없이 뒤쫓고,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고 사라지길 바랐다. 이런 생각이 들자, 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모습 그대로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함이 더 컸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나는 쉽게 흔들리고 약하니까.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면 왜 저러지?’와 같은 질문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머릿속에 물음으로 떠오르던 몇몇 순간들이 떠올랐다. 읽는 동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깨달았다. 나는 타인에게 시선을 받을 행동과 말을 전혀 하지 않으려고 수많은 계산 끝에 출력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이 틀리게느껴진다. 핑계지만, 이 부분이 장애를 향한 나의 부끄러운 편견을 갖게 하는 데 작용했다. 장애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잊고 산다. 장애 가진 사람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은 무엇일까? 말하지 않는 게 상황에 좋을 것 같아서 의지대로 말을 안 한 적은 많지만,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상황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아이들의 답답함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걸, 자신의 이야기를 지저귀는 새들처럼 하루 종일 하고 싶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과 보호자에게 언어치료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아이의 의지와 보호자의 책임이 필수적이고 중요한지도. 이 책에 등장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맑고 푸르렀다. 내가 생각했던 장애와는 전혀 달랐다(장애에 대한 나의 편견이 아주 심했구나, 또 깨닫는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본인만의 세계를, 본인의 자리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세계와 자리를 위협하는 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하는 보호자와 동정과 안타까움, 불편함을 담은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었다. 아이들은 그 시선에 굴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몸에 힘이 세게 들어갔다.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강하고 단단했다.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힘들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채고, 그 마음을 만져줄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겠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건 어른의 몫이다. 답답함에 어른이 개입하면 아이들이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성장과 회복을 막아버리게 된다. 아이들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 자신을 믿고 기다리며 지지하는,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어른을 원한다. 아이들은 각각 제 속도대로 오늘도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더딘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은 수많은 좌절을 경험한 만큼 상처가 많고 덧났겠지만, 상처 위에 굳은살이 생겨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아이들에게 더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건 아이들을 향한 믿음과 기다림이다. 아이들의 특별한 순간을 함께 보내면서 어른들 또한 성장할 것이다. 아이만 어른에게 도움을 받고 의지하는 게 아니라, 어른 또한 아이에게 도움을 받고 의지하니까.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이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함께 하는 보호자와 언어치료사에게 힘찬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며 한 걸음씩 단단하게 걸음을 내딛는 아이들에게도!


 

김지호 언어치료사님! 잘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 아닌 척 숨겨둔 저의 모습에 부끄러웠고, 반성했습니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과 보호자의 이야기는 봄날 같았어요. 아프기도 했고, 퍽 다정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언어를 찾아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하는 그날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언어치료사의 역할과 일하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과 기분,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면서 받은 선물들을 알 수 있어서 의미 있고 따뜻한 시간 보냈습니다.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일을 해서 그런지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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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들
한요나 지음 / &(앤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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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건 태양의 아이들덕분이야.

한요나 장편소설, 태양의 아이들(앤드)(SF소설)

 


태양의 아이들은 넥서스 제2회 경장편 작가상을 수상한 한요나 작가의 청소년 SF소설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작품이지만, SF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망설임 없이 책장을 넘겨도 좋다!

좋은 햇빛이 곧 권력과 부가 되는 세상에서 사는 하루와 주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SF소설이라고 해서 내가 이미 접하거나 알고 있는 스토리에 인물과 배경, 인물 간 갈등 등에서 진부한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좋은 햇빛이 권력과 부가 된다는 설정부터 호기심을 끌었다. 언젠가 지금 당연하게 매일 쬐고 있는 햇빛이 정말 권력과 부가 되는 세상을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서늘하기도 했다.

하루는 1구역 아이들처럼 까만 머리카락이 아닌 갈색 머리카락을 갖고 있고, 주하는 까만 머리카락과는 전혀 동떨어진 빨간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까만 머리카락은 선망의 대상인 반면, 빨간 머리카락은 오염이나 외계인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출신 구역 상관 없이 머리카락 색을 통해 계급을 나눈다. 주하는 빨간 머리 때문에 통합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괴롭힘을 당한다. 하루는 주하에게 동정이 아닌 진짜 친구로 다가가 주하의 보호자가 되길 자처하고, 후에는 주하가 마음을 놓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진짜 친구가 된다. 주하는 하루 같은 친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낯설면서도 좋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것을 알아채는 건 주하 본인이 아닌 빌리다. 빌리는 주하와 하루가 조금 더 진짜 친구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주하를 따라다닌 건 주하도 어느 정도 무슨 의미인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하는 빨간 머리 때문에 집에서, 학교에서, 연구소에서 끊임없이 의심했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어쩌면 하루를 만나기 전에는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하루는 주하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명쾌하고 능숙하게 답변을 내놓는다. 주하는 그런 하루가 어른스럽고 능숙해 보여 신기하지만, 하루는 주하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시간에서 느꼈던 감정이라서 주하가 지금 감정이 느끼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을 알고 주하가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주하의 옆에 있는 하루는 어른보다 더 어른 같고, 주하의 말을 빌려 정말 태양의 아이로 태어났어도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냈을 것이다.

럭스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섹터와 럭스 장사꾼들이 어린아이들을 착취하고 있고, 구역이 낮거나 구역 경계에 있는 아이들일수록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주하는 당장이라도 고향이자, 할머니와 사촌 언니와 동생이 있는 5구역에 가려고 한다. 가족 안전의 걱정보다 어린아이들을 구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결국 5구역에 가서 상황을 본 주하는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과 연구원들, 군인들 사이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그들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니까. 아이들을 착취하면서 위험한 생활에 빠뜨린 섹터와 장사꾼들을 적극적으로 잡아들이지 않고 그저 아이들을 기준에 따라 나눌 뿐이다. 그들도 사실은 럭스를 만들 줄 아는 태양의 아이들을 찾아 연구소로 데려가기 위해 아이들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5구역에 넘어온 것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섹터와 럭스 장사꾼들과 뭐가 다를까?). 주하는 5구역에서 떠날 때까지 적극적인 개입이 없는 그들을 보고, 무력감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이 아이들을 구해내고 싶다는 의지를 키운다. 주하의 의지에 불을 붙인 건 언제나 주하의 편에서 함께 하는 하루다. 주하,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주하에게 하루의 말은 앞으로 주하가 가는 길, 마주할 상황에서 북두칠성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햇빛과 권력과 부, 그리고 럭스, 경제적인 이득이라는 키워드로 이 소설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데, 책장을 덮고 나면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세상눈부신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을 점령한다. 좋은 햇빛으로 계급이 정해지고, 머리카락이 선망의 대상 또는 괴롭힘의 대상으로 만드는 설정이 꼭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의 방황과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 갈색 머리의 하루는 다른 친구들이 괴롭히는 빨간 머리의 주하를 전혀 개의치 않고 진짜 친구가 되고 원래 머리 색을 두고 파란색과 흰색으로 염색한 1구역의 아이들인 빌리와 레오니는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고, 빨간 머리 주하는 튀는 머리 색 때문에 관심과 불편한 시선을 받고. 학창 시절 때, 나는 주하였던 것 같다.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나에게 하루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큰 위로와 더불어 조금 더 괜찮은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울적하다. 하루와 주하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 시간을 외롭지 않게 함께 잘 걸어갔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잿빛이 내려앉은 세상에서 하루와 주하가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며, 본인만의 세상을 되찾길 바란다. 하루와 주하의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하루와 주하가 세상 곳곳에 있을 테니까. 그들에게 희망이니까. 우리가 좋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건 태양의 아이들, 즉 앞으로 세상을 무지개 색깔로 물들일, 한창 푸릇푸릇하게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 덕분이다(이 점으로 보면 좋은 햇빛이 권력과 부일 수도 있겠다). 예상치 못한 만남과 상황, 감정에서 정체성을 찾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하루와 주하를 통해 경험한 눈부신 성장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배움만큼 끝이 없는 눈부신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 책을 펼칠 청소년들의.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넥서스 앤드러블(&) 52회차 서브미션1(서평) 활동을 위해 넥서스로부터 받았습니다:D

 

한요나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제목부터 표지, 내용까지 삼박자가 아주 딱, 맞는 소설이었습니다. 청소년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어른으로 읽는 청소년소설을 느낌이 색달라요.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괜히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진달까요. SF소설이라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재밌게 잘 읽었고 하루와 주하, 그리고 아이들의 머리 색 등 소설에 등장하는 것들에 제가 생각하는 의미를 부여하여 생각하니 이 소설이 몇 번 다시 태어났어요! 다시 한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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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들_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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