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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밤 ㅣ 스콜라 창작 그림책 84
안경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우리는 수많은 가면을 가지고 있어.
안경미 그림책, 『가면의 밤』(위즈덤하우스)
퇴근 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읽게 되었다.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에 만난 ‘나’와 ‘갓 쓴 사람’과 특별한 친구가 되었다. 때마침 튼 노래도 『가면의 밤』과 어울린다.
‘나’ 앞에 나타난 갓 쓴 사람. 갓 쓴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으면 보름달이 뜨는 날 검은 입을 찾아오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그와의 만남을 잊고 싶지만 쉽게 잊힐 리가 없는 만남이 아닌가. 무엇보다 마음을 꿰뚫어 본 그 사람 말대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검은 입으로 향할 수밖에. ‘가면을 피우는 버섯들’ 속에서 갖고 싶었던 가면을 골라 쓴 나는 만족한다. 모든 게 완벽한 모범생 가면부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가면, 사랑받는 가면, 투명 가면까지 다양한 가면을 쓰고 벗길 반복한다. 많은 가면을 쓰면서 ‘나’는 자신의 얼굴을 잃어간다. 각 가면을 쓰면서 좋은 점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뒤따랐다. 자신의 얼굴을 찾고자 했지만 ‘나’의 얼굴을 갓 쓴 사람이 가면으로 쓰고 자신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나’는 자신의 얼굴을 잃었으니 자신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얼굴이 내 것이었을 때는 자꾸 타인의 얼굴이 좋아 보이고 탐났을 것이다. ‘나’는 막상 원하던 가면을 쓰고 생활하면서 불편함과 더불어 가면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당연하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처럼 쓰고 있으니 어울리지 않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수많은 가면을 쓰고 벗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얼굴, 즉 ‘자신’의 소중함을 물론 특별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는 가면을 쓴 채 삶을 산다. 가면은 아주 다양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쓰고 벗길 반복하는 가면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많은 가면을 쓰고 벗길 반복하는 과정에서 속이 매스껍거나 두통이 일거나,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면을 쓰면서 생활하는 모습을 순간순간 알아채며, 스스로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면을 쓰고 벗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가면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에서 가면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가면 때문에 ‘진짜 자신’을 잃는다면 그건 문제다. 가면이 자신이라고 착각하거나 가면에 자신을 맞추려고 애쓸 필요 없다. 가면을 나에게 필요한 도구(수단) 정도로 생각하며,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된다. 가면 위에 내가 있어야지 가면에게 잡아 먹혀서는 안 된다. 자신을 잃는 건 순식간이지만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건 오래 걸리니까. 어제 오늘 내일 우리는 수많은 가면 속에서 가면을 하나 골라 쓴 채, 주어진 하루를 보낼 것이다. 매일 어떤 가면을 쓸지 고민하고 상대방은 어떤 가면을 썼는지 혼자 유추해 보는 재미도 있다. 일명 가면 놀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하루가 너무 ‘가면스럽지 않길 바란다’. 가면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도 있고 감출 수도 있으니 무조건 자신을 감추고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타인의 입맛에 맞게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내가 듣고 싶은 말). 자신만의 방식대로 가면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거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감추기 위해 쓰는 가면의 의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오늘도 여러 번 가면을 쓰고 벗느라 모두 고생 많았다. 집으로 돌아와 몸을 답답하게 조여온 옷을 벗어 던지고, 예의랍시고 칠한 화장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마주한 거울 속 나는 가면을 쓰지 않은, 가면을 쓰지 않아서 진실해 보이는 나를 만났다. 거울 속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가면을 쓰면서 보낸 오늘의 무게’를 떠올리니 갑자기 마음이 텅-, 비고 얼굴이 사라졌다. 눈코입이 사라지고 피부만 존재했다. 손으로 천천히, 얼굴을 더듬어 보니 눈코입이 제자리에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내 얼굴을 잃는 거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를 잃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가끔 나를 잃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어리석었다. 가면에 눌린 얼굴의 숨구멍이 숨을 쉬느라 정신없다. 숨을 쉴 수 있도록 잠깐 가만히 앉아 명상한다. 숨을 쉬며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눈을 뜨고 다시 바라본 거울 속 나의 눈코입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그린다. 내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주를 통틀어 하나라서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내 얼굴. 수많은 가면을 마음에 품은 채 살고 있는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타인의 것을 탐내지 않아도 자신에게 수많은 가면이 있고, 그 가면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하루,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진 삶이 달라진다고. 자신에게 맞는 건 나의 얼굴이지, 내 시선이 가는 얼굴이 아니며 나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또한.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검은 입으로 향하는 대신 자신을 부지런히 돌봐야 할 것이다. 나의 가꿈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깨닫게 될 테니.
◎ 이 그림책은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위즈덤하우스어린이’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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