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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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놓아 부르면, 닿으려나요.

조해진, 겨울을 지나가다(작가정신)

 

올해의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따뜻했던 조해진 작가의 소설을 만났다. 조해진 작가와의 만남이 겨울을 지나가다여서, 올해가 끝나갈 때여서, 추울 때여서 좋다.

엄마라는 두 글자는 무슨 힘을 가지고 있길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고, 눈시울부터 붉어지는 걸까.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에게 바치는 헌사이다라는 책을 소개하는 강렬한 문장에 마음이 이상했는데, 책장을 펼쳐 조해진 작가가 그려놓은 세상에 들어가 보니 이상한 감정이 무엇인지 대충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엄마라는 두 글자에 목이 메는 이유와 책을 소개하는 한 문장에서 오는 수학 공식처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들이 이 책을 읽고, 마음껏 서로를 위해 웃고 울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꼭 안아주면서 서로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임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잠깐 멍하니 앉아 있을 때면,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수시로 내 눈과 마음에 물을 차게 만들었다. 엄마는 이런 내 마음을 알까 싶다가도 나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 또한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어 생각하기를 멈췄다. 내 마음에 거칠게 이는 물결이 잔잔해지면, 엄마께 꼭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엄마를 향해 끄적였던 수많은 편지는 (진심이 담겼지만)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해 뻔한 말의 나열이 되었지만, 이 책에는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엄마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담겨 있으니 작은 글씨가 엄마 눈을 괴롭혀도 꼭 끝까지 읽어달라고, 그러다 엄마의 마음을 쏙- 빼닮은 문장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색을 칠해도 좋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132)의 문장을 만나기 위해 나는 정연과 함께 엄마를 떠나보내고, 추운 겨울을 아프면서도 따뜻하게 보냈다. 이 문장을 만나기 위해 너무 아팠던 것 같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울고 웃었다. 마음 한곳이 자꾸 저릿한 게 엄마라는 단어가 너무 따뜻하면서도 아프게 느껴진 건 처음이라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숨기도 하고 도망도 다녔다. 고백하면, 엄마의 죽음에서 도망 다녔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되도록 아주 멀었으면 좋겠는(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두 눈 가득 물이 채워졌다. 엄마는 나의 세상이고 전부라는 사실을 책에 밑줄을 긋고 내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 이상으로 절감했다.

엄마를 보낸 후, 엄마의 집과 식당에서 엄마가 남겨둔 흔적으로 엄마 없는 삶을 사는 정연이를 보고 분명 추운데, 어디서 온 지 모를 온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고 느꼈다. 정연이가, 별이 된 엄마를 마음에 품은 딸들이 다시 살아가는 힘이 곧 그 온기이지 않을까.

엄마의 죽음이라는 것이 곧 빈 자리, 공허함 뿐인 자리라고 딱 끊어냈는데, '부재'를 언급하면서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질 사람들의 세계를 '확장'(연결)했고, 남는 사람들이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다정한 시간을 만들었다. 옷깃을 여며도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읽은 나는 다정하고 귀한 시간을 선물 받은 것이 틀림없다. 책장을 펼치고 덮는 순간까지 엄마를 잊은 적 없으며, 갑작스럽지만 엄마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에 울컥을 내포한 분노로 목놓아 부르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었다. 소리 없이 엄마를 부르는 나를 엄마는 알 것이다. 엄마와 딸은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 드리운 햇살과 그늘을 알아내고 웃어주고 토닥여주는 존재이니까. 정말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에게 바치는 헌사가 아닐 수 없다. 세상 모든 엄마와 딸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책은 작정단 11기 활동을 위해 6번째로 받은 책입니다:D

 

올해의 소설이라고 생각할 만큼 좋은 작품을 만나게 해준 작가정신 출판사에, 그리고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에게 바치는 헌사를 써준 조해진 작가님에게 우주를 담아 고마움을 전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딸 중, 한 명으로서 감사히 작가님이 써준 헌사 잘 받았습니다.



조해진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작가정신)



조해진 작가님



< 차  례 >



너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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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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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문장을 따라 걸었더니,

노재희 산문집,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작가정신)

 

노재희 작가님의 산문집을 읽게 된 건 작정단 115번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아니, 서평단 활동은 핑계이고 노재희 작가님을 만나기 위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작가님이 쓴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났다(‘이라는 문을 통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산문집이라서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읽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노재희라는 사람의 삶의 짙은 부분을 감사하게도 나눌 수 있었다. 작가님의 문장은 특별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에 색을 칠하고, 내 생각이나 경험 등을 내 필체로 덧붙이면서도 문장에 색이 있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노재희 작가님의 문장은 다양한 색이 존재했다. 그 중, 내가 느꼈던 색은 푸른색 계열이다.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던 중, 만났던 자연의 품에서 지낸 작가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여름님과 함께 있는 순간도 마찬가지다(‘여름씨라는 작가님이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 내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진 건 여름씨라는 이름이 갖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작가님과 여름님의 푸릇푸릇한 삶이 부럽기도 했다. 이곳저곳 이사를 다녀야 해서 힘들었겠지만, 그 순간을 기록한 작가님이 있고, 그 순간을 문장으로 만난 독자(나를 포함한 독자들)가 있으니 마냥 힘들었던 기억으로만 남지 않을 것이다(그러길 바란다, ).

작가님의 삶이 어떤지 연하게나마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소중한 일상이 한곳에 모여 빛을 내는 듯한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은 삶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는 것을 소곤소곤 들려주는 것 같다. 작가님이 나눠준 모든 이야기가 마음을 톡톡, 두들겼지만 병원에 있던 작가님이 들려준 이야기에 마음이 한동안 머물렀다. 내가 아픈 것 같았다. 병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터널 입구 앞에 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어둠이 풍기는 싸늘함에 몸을 작게 말고 있는 기분이랄까. 작가님의 걸음을 따라 병원을 나와 본 세상은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다(내가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야 할 세상을 배웠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작가님과 동일 인물이 되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느끼기 시작했다. 느끼려고 하자 받아들여지는 것이 가능했다. 항상 받아들이는 시간이 길고, 버거웠던 나에게 작가님은 하루하루 닿는 거리, 물건, 상황, 기분, 감정 등을 굳이 못 본 척 지나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이 말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무난한 하루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요즘, 노재희 작가님과의 만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내 앞에 나타나 말 대신 품에 넣어 토닥토닥, 안아주는 손길이었다. 직접적인 위로의 말도 그렇다고 이렇게 해보라는 조언도 없지만,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망설임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한 것 같다.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이 내 삶을 떠돌다 보면, 제법 괜찮은 삶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게 삶 아닐까. 정처 없이 책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노재희 작가님을 만났듯이.


이 책은 작정단 115번째 활동을 위해 작가정신에서 받았습니다:)

 

노재희 작가님과 여름님의 싱그러운 나날들을 응원합니다. 작가님의 문장에는 색이 있고, 저는 그 색을 발견했습니다. 발견한 색, 잘 간직하겠습니다:)

 


노재희 산문집,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작가정신)



노재희 작가님 :D



 < 차    례 > 



「에필로그」 239쪽

-

작가님의 문장을 따라 걸었더니

내가 보려고 하지 않은 세상이 눈앞에 있었다.

생각하는 대로, 마음 먹은 대로 달리 보인다는 누군가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나는 '내 세계의 크기'를 이렇다 저렇다, 상상해보고 그려볼 용기조차 없었다.

상상하고 그려보는 것조차 실패라는 결과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이다.

실패가 두려워서 내게 닿은 수많은 도전들을 얼마나 많이 밀어냈을까, 생각하니

이미 내 것이 아닌, 내가 밀어낸 도전에게 미안했다.

이제라도 내 세계의 크기를 가늠하며,

나답게 내 세계를 그런 대로 꾸며 가야겠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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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 - 그림책 작가 오소리 에세이
오소리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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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일기장을 펼쳐야겠다,

오소리, 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아름드리미디어)

 

개인적으로 일기를 쓰는 행위를 좋아한다. 학창시절, 알림장 1번은 중요한 준비물이 아니라면 일기 쓰기를 항상 적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매일 써야 하는 일기가 귀찮았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하루를 기록하기보다 일기를 읽고 선생님이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도장과 그 밑에 짧게 달린 선생님의 댓글을 보기 위해 일기를 열심히 썼다. 일기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의 깊은 생각을 읽을 수 없던 어린 날의 나는 일기 쓰는 시간이 제법 즐거웠고, 빈 종이에 바른 글씨가 줄을 맞춰 한가득 채우고 나면 뿌듯해서 여러 번 펼쳐봤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에 신경 쓰고, 내 글씨에 자부심을 가진 것이.

본가 책꽂이를 채우고 있는 일기장을 가끔 보게 되면, 마음이 이상하다. 내가 쓴 것인데, 내가 쓴 것 같지 않다. 책가방을 메고 엄마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짧은 다리로 열심히 학교를 향했던 아이가 쓴 글은 하나같이 솔직했고,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고학년이 될수록 선생님의 댓글은 짧아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댓글 없이 도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날이 많았다. 도장만 찍혀 있으면 내 일기가 선생님의 마음에 들지 못한 것 같아 더 신경 써서 일기를 쓰고 글씨를 더 예쁘게 쓰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도장만 있다는 건 선생님이 바쁘기도 하고, 댓글을 달아주지 않아도 일기를 잘 적는다는 칭찬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서 일기는 더 이상 숙제가 아니었다. 내가 쓰고 싶으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것이다. 검사하는 사람이 없으면 당연히 일기를 쓰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나는 알아서 일기를 썼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일기장에 모조리 털어놓았다. 짧게 혹은 길게 일기를 쓸 때마다 평범하게 보내는 나의 시간을 기록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시간이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걸 알려주기 위해 숙제를 내줬고 도장과 댓글, 야단으로 부지런히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 것이다. 일기를 쓰면서 일기 형식이 아닌 다양한 글의 형식으로 쓰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은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느낀 것들이 그렇다.

오소리 작가님의 일기를 읽으면서 나의 일기장을 오랜만에 읽어본 것 같았다. 분명 다르지만 닮은 구석이 있어 내 일기장을 빼앗겼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주 가끔 뭔가에 미친 사람처럼 펜을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갈 때가 있다. 다음날 읽어보면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악, 분노 등을 마주하는데,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이 또한 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다행히 길지 않았다. 종종 그런 류의 일기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나를 위한, 나만 보는 일기장에서만큼은 진실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하루가 꾸깃해질 때마다 펼치는 일기장은 개미만 한 글씨들이 그날 기분에 맞춰 각자 다른 리듬을 타고 줄 위에서 떠들고 있다. 시간과 공간 상관없이 언제든 나의 부름에 응해주는 일기장에게 새삼 고맙다.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책장을 보면 울컥한다. 나는 잊어야 내일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일기장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려고 하는데, 일기장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바위보다 더 단단하고 든든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잊기 위해 쓰는 줄 알았던 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던 것이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아름드리미디어 출판사로부터 받았습니다:)

 

오소리 작가님, 일기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일기장인데 어느새 제 일기장인 것처럼 저의 이야기를 많이 덧붙였습니다. 훗날 나의 일기도 한 편의 책으로 세상의 빛을 봤으면 좋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오늘부터 일기를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오소리, 『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아름드리미디어)



오소리 작가님 소개 :D



길벗어린이 증정 :)



오소리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를 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읽다 보니 '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찌릿하기도 하고,

밑줄을 긋고 또 긋고 싶은 문장도 많았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정말.

앞으로도 작가님의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

오늘도 잊히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쓸 누군가에게 이 책을 망설임 없이 권하고 싶습니다.

-

작가님,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나에게 잊히지 않게 노력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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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 - 그림책 작가 오소리 에세이
오소리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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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 작가님이 들려주는 솔직한 이야기!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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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룸 소설, 잇다 3
이선희.천희란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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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룸에도 출구는 있다.

이선희와 천희란, 백룸(작가정신)

 

매번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소설-잇다시리즈의 취지를 읽고, 책을 읽는다. 취지가 내가 존재한 적 없는 세상과 현재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희망을 꿈꿀 수 있는 순간이다. 다만 희망이 사그라들고 현실과 부딪칠 때면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선희와 천희란 작가를 백룸을 통해서 알게 되었듯이 소설-잇다시리즈는 시대를 넘어선 두 여성 작가의 만남이 또 하나의 가능성과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다른 시대를 살던 우리의 이야기가 닮아있음을, 그렇기에 계속 목소리를 내고 글을 써야 함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 역할 이상의 것을 해낼 것임을 보여준다.

이선희 작가의 계산서여인 명령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시대 속의 여성상을 그렸다. 계산서여인 명령에 등장한 여성 인물은 불행으로 치환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사는 듯한 느낌(이 시대에는 모든 여성이 그랬고 당연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불편한 감정이 뒤섞인다)이 강하다. 다리를 잃은 여성과 결국 본처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여성(숙채)의 삶은 햇빛이 들지 않아 습기가 가득한 것보다 닿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건조하고 탁하다. 물기는 오래전에 증발했고, 물기를 만들기에는 아무 의미 없음을 깨달은 여성들은 회색빛을 띤 채 그림자로 전락한다(그림자도 빛의 경로에 따라 존재 여부를 명확히 보여주는데 여성은 왜 사라지는 건가. 여성은 스스로 그림자로 전락하길 바란 적이 없다). 그림자가 된 여성은 몸과 마음이 파괴된 채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불행을 모든 여성에 보편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선희의 소설에 등장하는 두 여성만 봐도 그렇다. 불행이 내재된 삶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차이점이 분명하다. 다리를 잃은 여성은 남편의 목숨값을 받아야 할 몫이라고 한다. 이 여성이 거침없고 당돌하다고 생각한다. 불구가 된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과 행동이 달라진 것을 먼저 알아차리고 느끼는 건 불구가 된 여성 본인이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그것들은 상처와 슬픔을 거쳐 좌절, 분노로 확장된다. 불구가 된 순간부터 약점이 생긴 사람임을 인정해버리고, 하루아침에 변한 삶은 받아들여야 하는 그녀의 분노가 남편의 목숨값으로 환산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안타깝다. 수치화할 수 없는 사랑이 장애(신체든 정신이든)로 인해 숫자로 환산되어 맞아떨어지는 몫이 나온다는 것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져야 하는 무게(계산서를 품고 사는 모든 여성)’사랑의 유한 기간에 대한 싫증을 부풀렸다. 다리 잃은 여성은 목숨값을 받지 못했지만, 수동적이라는 느낌은 약했다. 하지만 여인 명령의 숙채는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 같지만,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유원과의 낭만적인 결혼 생활을 꿈꿨지만 숙채를 기다리는 건 징역살이를 하는 유원이었고,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알게 된 안나와의 만남은 숙채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유원과의 관계가 끊겼다고 봐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숙채는 유원을 한시도 마음에서 지운 적 없는 것 같다) 뭔가 쫓기듯 김 의사와 결국, 결혼하게 된다. 김 의사와의 결혼은 숙채가 불행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결혼 제도가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숙채는 결혼 제도를 통해 불행 그 이상의 경험을 했다. 결혼 전에는 숙채를 통해 여성의 변화를 잘 보여줬다. 숙채가 독립을 하고, 여러 직업을 갖는 부분은 숙채의 삶을 정적이지 않게 만들었다. 숙채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자연스레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시대 여성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남성 그늘 아래 그림자로 존재했기 때문에 작품에서라도 그것을 깨부숴주길 바랐다. 숙채는 아들을 낳고 살면서 어쩌면 부딪치고 싶지 않았던 현실과 정면으로 만났고, 남편 김 의사의 소극적인 태도(본처와의 이혼 과정에서)에 신뢰를 져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부부 사이는 신뢰를 기본으로 탄탄한 가정을 꾸리기 마련인데, 숙채는 흔들리는 가정(본처의 편지, 처남과 본처의 집 방문, 여인숙에서 머무는 본처)에서 남이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숙채 본인은 본처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면서 불안이 불피운 화구를 오고 가다가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본처의 자리에 제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숙채는 여성으로서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했을까. 그렇다고 본처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숙채의 원망을 들어야 할 남편은 자다가 숨이 멎어 세상을 뜨고, 본처는 남편의 죽음에 밤낮없이 울다가 목을 매달아 운명을 같이 했다. 남편의 장례를 찾아온 이들은 하나같이 본처의 칭찬을 했고, 그 안에서 숙채는 구석으로 숨게 된다. 숙채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숙채는 김 의사를 유원처럼 사랑하여 결혼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숙채는 안나가 준 기회를 통해 다른 삶을 꿈꿔보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안나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자신과 닮은 것 같은 숙채만큼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길 바라는 그 마음 하나로 숙채를 보살폈던 것 같다. 그 보살핌이 퍽, 다정했지만 숙채는 무너진 신뢰 위에서 불안과 분노, 한숨으로 보낸 날들이 많다. 김 의사와의 결혼은 숙채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숙채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쫓긴 건 확실하다. 숙채가 죽기 전에 유원에게 한 부탁과 숙채의 죽음은 출구 없는 방을 맴도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출구는 있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방 안에서 숙채는 죽음으로 사라졌다. 백룸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까?

백룸은 확장된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성 서사의 확장, 즉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야기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대에서 살던 여성상이 오늘날에도 있으며, a가 더해져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는 연대 등을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백룸이라는 제목을 표지에 각인한 것은 이 세 편의 소설을 전체적으로 아우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백룸은 일종의 미궁으로, 현실의 이면 혹은 숨겨진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백룸에 직접 발을 들였고, 게임은 시작됐다. 게임은 우리에게 해를 가하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도망쳐 출구를 찾아 나와야 끝난다. 출구는 있지만, 그 공간에 오래 있으면 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백룸을 읽다 보면 앞서 읽었던 이선희 작가의 작품 두 편에서 언급한 특정 단어들이 그것으로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은 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데 서부터 시작된 도돌이표이며, 하나의 의미로 읽히는 특정 표현은 없다는 것을 잊고 있다면 작품을 넘어 세상을 둘러싼 백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백룸의 공간에 고독은 필수적이며,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고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미궁울 견딜 수 없고, 미궁을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세 이야기에 등장한 여성들은 끝이 어떤지 알고 있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제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백룸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는 항상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지만, 틀렸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떤 규칙이 이 행위성을 제한하는가?’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이 책은 작정단 114번째 활동을 위해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이선희, 천희란 작가님의 만남으로 이해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싶어졌습니다.

 

#백룸 #이선희 #천희란 #작가정신 #소설잇다 #여성서사 #작정단11#책로그 #230929




이선희와 천희란, 백룸』(작가정신)




이선희 작가 x 천희란 작가




<차 례>




이 책에 대하여 _ 편집부




'어떤 규칙이 이 행위성을 제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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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백룸 : 알고 있지만 보이지 않고 그러므로 믿어야만 걸어나갈 수 있는 곳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_ 488쪽




출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백룸'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소설_잇다> 시리즈




내가 책을 사랑하는 수십 가지 방법 중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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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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