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 선물 가게 꿀잠 선물 가게
박초은 지음, 모차 그림 / 토닥스토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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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선물 가게를 만나기까지,

박초은 장편소설, 꿀잠 선물 가게(토닥스토리)

 

이 책을 만나게 된 정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아닐 수 없다. 출근하기까지 시간이 남아 서점으로 향했고, 문학 코너에서 서성거리다 초록색 배경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 찬 꿀잠 선물 가게를 보게 되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책을 집었다. 뭔가 이 책이 나를 끌어들였달까. 착각이어도 좋다. 이 책을 읽기를 아주 잘했다고 생각하니까.

꿀잠 선물 가게는 오슬로와 그의 조수 자자가 운영한다. 오슬로는 학창 시절 때부터 잠을 좋아하고, 잠자는 것이 가장 잘한 일이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이 부분에서는 오슬로가 정말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 단지 잠을 좋아하고 잠자는 것을 잘해서 이 가게를 연 것은 아니다. 오슬로라고 불면을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불면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걱정 고민 없이 편안한 잠을 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가게를 계획하고, 운영하게 된 것이다. 오슬로의 따뜻한 마음은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와 자자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서는 걸음과 뒷모습을 보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솔직히 자기 챙기기도 급한 게 인생인데, 오슬로는 타인을 생각하고 위한다. 오슬로는 꿀잠 선물 가게를 운영할 운명으로 달님이 이라는 능력을 그에게 줬는지도 모르겠다. 자자와의 연도 달님의 계획에 포함된 것일 수도.

꿀잠 선물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살면서 하는 걱정,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다. 특별하지 않아서, 누구라도 할 수 있고 했던 고민이라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손님의 고민마다 각각 다르게 추천하는-오슬로가 직접 재료를 골라 제작한-아이템은 현실에서 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가게를 찾아온 손님들은 꿀잠 선물 가게에서 값을 지불하고 가져온 아이템 덕분에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든 날이 잦아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아마 오슬로와 자자도 내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손님들은 털어놓지 못할 고민-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을 들어줄 누군가와 시간,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오슬로와 자자, 꿀차를 마시다가 편안하게 잠드는 시간,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갖춘 꿀잠 선물 가게야말로 짓눌린 마음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의지를 토닥여줄 수 있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을 수밖에 없는 곳이지 않은가.

잠을 잘 자기 위해 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을 보니 살면서 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덜 자거나 밤을 새우더라도 턱이 빠질 만큼 입을 벌려 하품하거나 졸 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잠에 대한 나의 오만이었다. 몇 달간 우울한 채 하루하루를 살면서 잠이라도 푹-, 자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뒤척거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자지 않으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나도 한때 오슬로처럼 잠을 좋아했고, 엄마 말을 빌리자면 누가 업고 가도 모를 만큼 잠을 잘 잤다. 잠을 잘 자는 것은 곧 하루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슬로는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걱정이 고개를 내민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걱정과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오슬로는 손님들을 위해 아이템을 만들고, 손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이 가게를 방문한 용기를 단단한 확신으로 변화시킨다. 잠자는 것조차 일이 되는, 아니 잠이 사치가 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 포근하고 아늑한 침대의 항해를 선물할 꿀잠 선물 가게가 뜬눈으로 긴 밤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다정하고 따스하게 닿길 바란다.

언제 어디서나 꿀잠 선물 가게를 만날 수 있기를, 나의 마음 한구석에 흩뿌려진 달빛의 줄기를 보고 조수 부엉이가 나를 향해 힘차게 날갯짓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잠들기 전에 창문을 살짝, 열어둘 테니 나의 꿈속으로 들어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의 밤을 환하게 수놓길.

 

이 책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지금이 아니었더라도 돌고 돌아 만났을 책이다. 이 책이 긴 밤을 보내는 이, 걱정으로 얼굴에 그늘진 이, 잠을 잘 자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준비할 건 가게를 방문할 시간과 용기뿐이다. 그 뒤는 오슬로와 자자가 알아서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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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일 수 있다면 - 제1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임고을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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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일 수만 있다면,

임고을 장편소설, 녹일 수 있다면(현대문학)

 

종말은 어릴 때 종종 떠올렸지만, 지구가 얼어버린다는 상상은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참신했고, 읽는 동안 또 읽고 나서도 여운이 짙게 남는다. 작가가 지구를 얼려버린 설정을 통해 이 이야기를 만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임고을 작가가 앞으로도 태서진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아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을 그리는 이야기를 많이, 세상에 들려줬으면 좋겠다.

모든 게 얼어버리는 지구에서 살아남은 서진과 서리. 우주연구원인 할머니의 예언은 미치광이 할머니가 떠들어 대는 말로 무시당했고, 무시의 대가는 사납고 잔혹했다. 누군가에게는 언 지구가 얼기 전 지구보다 퍽이나, 다정한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얼어버린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몇 이나 될까? 이 물음에는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이 숨어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살아볼 만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발적으로 얼음 인간이 되거나 미쳐버리지 않을까. 참신한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머지않은 우리 미래라는 것을 읽는 동안 느꼈다. 계절에 맞지 않는 꽃이 피고 전에는 쉽게 볼 수 있던 곤충들이 자취를 감추는 등 지구에 문제가 생겼음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손 놓고 보고만 있으니 말이다. 지구가 얼어붙는 건 시간문제이며, 서진의 할머니처럼 머지않은 미래(닥쳐올 재앙)를 준비하는 사람이 분명 세상 어딘가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생 서리가 편지만 남겨 놓고 가장 안전한 집에서 떠난 것을 알아차리고, 서리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는 서진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서리를 찾으러 가는 길은 살을 에는 두려움이 함께 했다. 모두가 얼어버린 것처럼 서리가 얼어버렸을까봐. 서리가 왜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서진은 서리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고, 해동기로 녹이는 동안도 서리가 아니면 어쩌지, 하는 불안을 느껴야 했다. 불안은 항상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서진이 녹인 사람은 서리가 사랑을 두둔했던 혜성이었다. 서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과 더불어 허무함과 불안감이 서진을 가득 채웠다. 얼어버린 지구를 예상하지 못했듯(가볍게 넘겼듯) 상황은 생각하던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혜성을 집으로 들이게 되고, 혜성과 같이 서리를 찾기 위해 함께 집을 나선다. 혜성이 있어서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혜성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녹여달라고 부탁을 언젠가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거리를 두면서도 혜성을 챙겨야 하는 서진을 짓누르는 무게를 누가 감히 알 수 있을까. 서진과 혜성이 서리를 찾는 동안, 서리는 서진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한다. 물론 서진을 위해서 한 일이지만 서진의 생각을 전혀 안 한 것만 도 못한 일이다(서리가 나중에 후회하는 걸 보니). 서진의 삶을 파괴한 기유진을 녹인 것이다. 기유진을 녹인 이유는 서진이 여전히 과거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원치 않고, 직접 부딪쳐서 이겨내야 한다는 서리만의 생각 때문이다. 서진을 위한 일이었지만 결국, 서진은 고통스러웠다. 우여곡절 끝에 서진과 서리뿐이었던 집에는 혜성과 그의 형 태양, 기유진, 할머니가 한자리씩 자리 잡는다. 할머니가 준비한 집은 마치 그녀가 지구를 얼린 장본인인 것처럼 모든 게 갖춰져 있고, 어쩌다 녹여져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그들은 서진과 서리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서진은 지구가 얼기 전에 지옥에서 살았다. 자신의 삶을 파괴한 이를 한 공간에 받아들인 건 어쩔 수 없는 조건 때문이고, 서리의 바람대로 서진은 유진과 직접 부딪쳐 얼었던 자신의 일부가 녹는 걸 느낀다. 서리의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 없지만-언 지구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을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말이 안 된다-, 서진은 원치 않은 상황을 마주하면서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혜성이를 녹이고 나서부터 서진의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있어도 언 지구를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서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조건을 잘 활용하여 누군가를 녹이고, 스스로 지켰다. 끝에는 처음과 달리 사람들을 녹여 구하겠다고 말한다. 직접 얼음 인간이 되어 본 서진은 얼음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경험했기에 얼어있는 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얼고 싶냐는 서진의 말에 혜성은 이미 경험한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부분이 있다. 꽁꽁, 얼어버렸다고 의식이 없는 것이 아니며,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섬뜩하면서도 가장 잔혹한 형벌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이성적이고 현 상황에 개의치 않을 것 같던 태양이 노란 털실을 끌어안고 흐느끼며 한 말은 아무래도 언젠가 누군가 할 말 같다. 신을 녹이자. 어디 실수로 얼어 있나 본데.” 그렇다. 신도 실수로 얼어버려서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게 무섭다는 것을 몇 달 우울증을 앓으면서 알게 되었다. 사는 이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정말 모든 게 얼어버린 지구 땅덩어리에 혼자 남겨진 기분 아닐까. 이렇게 살 바엔 얼음 인간이 되고 싶다가도, 그렇다고 얼음 인간이 되기는 무서운 모순되는 마음이 매순간 충돌하며 살아내야 하는 건 인간에게 가혹하다. 정말 신의 실수가 아니고선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랄까.

녹일 수 있다면은 머지않은 우리의 미래를 미리보기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면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잠깐이라도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다. 작가가 지구를 얼려버리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모든 게 얼어버린 지구를 보니 꼭 지금을,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모든 게 얼어버린 지구보다 먼저 얼어버린 건 인간의 마음 아닐까? 하루빨리 꽁꽁, 얼어버린 수많은 마음이 녹았으면 좋겠다. 마음을 녹일 수 있는 해동기가 있다면, 해동기는 밤낮없이 열일할 것이다. 얼어버린 세상보다 적어도 따뜻한 세상에서 사는 게 나으니까. 올겨울에 이 책을 만난 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것 같다. 올해 말이 되어서야 얼었던 나의 마음이 천천히, 녹는 중이니 말이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현대문학에서 받았다:)

 

#녹일수있다면 #임고을 #현대문학 #1회현대문학미래엔청소년문학상수상작 #지구 #얼음인간 #얼다 #녹이다 #인간 #과거 #현재 #미래 ##이유 #책로그 #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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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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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가 되기까지, 집사를 고르기까지,

추정경 장편소설, 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래빗홀)

 

표지와 제목만 보고, 무작정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주 가볍게 읽을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고, 나는 보기 좋게 스스로 망신당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특별하고 묘하게 빠져 들었다. 우리는 고양이가 강아지와 다르게 도도하기 때문에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사실 고양이를 길들인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고양이를 선택하여 길들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얼굴에 들이밀고 싶다. 고양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하며, 그들만의 확고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니까. 아무래도 이 책을 읽고 나니 본가에서 제 구역인 방과 마루를 소리 없는 걸음으로 다닐 고양이를 떠올리니 사뭇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가 주변을 감싸는 것 같다.

완벽한 개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장애를 가진 호랑이들이 태어나 버려지고, 수많은 근친 호랑이를 교배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돌연변이들이 부산물로 취급되어 연구소 한편에서 안락사당하는 것을 서준은 괴로워했다. 그중,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른다. 그것은 바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티그리스. 서준에게는 배다른 남동생 테오가 있는데, 테오는 티그리스가 처참하고 잔인한 마지막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서준은 말도 안 하고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테오를 데리고 한국으로 온다. 친하지 않은 대학 동기 길연주가 원장으로 있는 두썸띵 동물병원에서 일을 하며, 점차 테오의 삶은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연약한 생명체를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길연주는 테오가 길고양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방식대로 테오를 보살핀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 받을 수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테오는 티그리스가 죽는 날, 티그리스로부터 받은 능력이 있다. 바로 고양이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티그리스는 아마 테오가 천 년 집사혹은 천 년 집사의 조력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고양이들을 구하고 평화를 가져올 특별한 집사의 탄생을 그 누구보다 바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티그리스가 준 능력으로 고양이 언어를 알아듣고, 고덕이 운영하는 계정에서-남들은 고양이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상이라고 하지만-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회색 고양이를 알아차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서준과 테오가 고덕을 찾고, 경찰 고덕이 엄마의 죽음과 고양이의 죽음의 진실을 좇으면서 고양이들과 고덕 사이의 에피소드(고양이와 인간의 관계)는 물론, 생명의 존엄성으로까지 세계관이 확장된다.

흥미로웠던 점은 테오와 고덕의 관계성이다. 둘은 티그리스와 째째로부터 능력을 얻었고, 천 년 집사의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자의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강제로 그 길로 밀어 넣은 것도 아니다. 어쩌면 천 년 집사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테오와 고덕 둘 중에 누가 천 년 집사가 될지(궁금하다면 책을 꼭 읽길 바란다!) 모르지만, 확실한 건 서로 조력자가 되어 고양이들을 구하고 평화를 가져올 천 년 집사의 탄생을 너무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천 년 집사의 탄생은 그 누구보다 고양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단 한 명의 집사만을, 제 한 목숨을 바쳐 택한다.’ 그러니 겁 없이 고양이 집사가 되겠다고 설치다가는 보은과 복수가 동급인 고양이에게 뼈도 못 추릴 만큼 당할 것이다. 고양이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간택 당하는 것이며, 스스로 격을 갖춘 뒤 고양이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아홉 가지 중 그 하나의 목숨을 온전히 그대에게 건 만큼 고양이의 간택을 최선을 다해 거부하거나 최선을 다해 받아들여야 한다.

고양이 집사는 고양이의 목숨 하나를 온전히 받은 인간을 의미하는데, 그중 나도 하나라는 사실이 놀랍다. 어쩌다 우리집에 와서 살겠다고 정신없이 젖병을 빨며, 자신을 향하는 손길에 하악질을 하던 아이가 사실은 우리 가족이 자신의 간택을 받을 격을 갖출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이며,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나름 우리 가족 생활에 적응한 것은 자신의 목숨 하나를 온전히 우리에게 건넸다는 사실에 새삼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엄청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선을 다해 거부하거나 최선을 다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아이에게 묻고 싶다, 나에게 너의 목숨을 하나 주었냐고. 너의 목숨을 나에게 줘도 될 만큼 내가 격을 갖춘 사람이냐고 말이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래빗홀에서 받았다:)

 

#천년집사백년고양이 #추정경 #래빗홀 #장편소설 #추정경신작 #고양이 #집사 #간택 #마음 #미스터리추격 #서평 #책로그 #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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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가 좋아요 문지아이들 180
신현이 지음, 정주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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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

신현이 동화집 정주희 그림, 나는 언니가 좋아요(문학과지성사)

 

제목이 그냥 좋았다. 제목만 보고, 늘 원수 같은 여동생이 생각났다. 지금은 서로 일상이 있다 보니 연락과 만남이 거의 없지만, 어렸을 땐 퍽-, 다정했다고 엄마한테 들었다. 노란색 차에서 내리면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여동생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엄마는 숨어서 우리를 지켜봤다). 솔직히 엄마한테 여동생과 있었던 어렸을 때의 에피소드를 들으면 안도한다. 얼굴 마주보는 것도 어색한 지금이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다정한 순간들이 있었다는 거니까(근데 내 여동생은 언니가 있어서 좋았을까? 나를 좋아했던 적이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표지를 환하게 밝히는 언니와 동생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동생 얼굴이 내 여동생 어릴 적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제목만 보고, 깊숙이 넣어뒀던 추억을 꺼내 회상하고 말았다. 특별할 것 없는 제목인데.

이 동화집에 실린 세 편 모두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아주 사소한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당장 특별해 보이고 반짝이는 것을 좇는다. 사납고 불편한 요즘, 만나기 어려운 작품을 만난 것 같아서 반갑다. 오랜만에 읽으면서 마음의 그래프가 일정한 높낮이를 유지하는 책을 읽었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솔직함을 보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어렸을 때 나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솔직함을 표현한 적이 있나 궁금하기도 했다. 언니의 것이 좋아 보이고 만져 보고 싶은 동생, 바쁜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아이, 아빠의 새아빠가 되어주기로 한 아이. 스토리마다 등장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뽀송하고 티끌 없이 맑다고 해야 할까, 만나면 아무 말없이 안아주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예쁘다. 세상 곳곳에 이런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이 세상이 사납고 거칠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아이들보다 세상을 앞서 건 어른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자 의무니까.

아이들의 꾸밈없어서 마음을 울리는 세 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던 여동생이나 남동생, 혹은 언니나 오빠가 보고 싶을 것이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이 동화집을 통해 어린 날의 자신을 떠올리면서 어린 날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만들어준 그날들의 내 곁을 지켜준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직접 선택한 책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받았다:)

 

#나는언니가좋아요 #신현이 #정주희_그림 #문학과지성사 #동화집추천 #아이 #언니 #엄마 #가족 #사랑 #마음 #순수 #따뜻함 #책로그 #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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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목마 문지아이들
보탄 야스요시 지음, 김영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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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되어야 할 것은,

보탄 야스요시 글 그림, 여행하는 목마(문학과지성사)

(아일랜드(김지완 글 경혜원 그림/20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우수서평단 선정으로 받은 도서 1)

 

목마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그림책이다. 목마를 매주 타러 오는 남자아이가 지어준 이름은 블랑. 블랑은 블랑이라는 이름이 특별하고 소중할 것이다. 이름이 생긴다는 건 존재를 잃지 않는 이유니까.

남자아이가 지어준 이름을 새긴 채 블랑은 곳곳을 다닌다. 곳곳을 다니면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마주쳐야 했을 상황들을 생각하면 블랑은 오직 앞으로향한다. 블랑이 곳곳을 돌아다닌 것은 블랑 의지가 아니다. 그저 그 시공간에서 블랑의 역할을 다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 이름이 생긴 날, 형제의 친구들과 함께 달렸던 날, 리본을 달아 준 여자아이를 만난 날,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얼굴을 만난 날, 그리고 돌아 돌아 자신에게 블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남자아이였던 노인을 만나 평화롭게 보냈던 날 모두 블랑은 행복하게 기억한다. 블랑은 자신의 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등에 누구를 태울지 알 수 없는 설렘을 매번 느낀다. 자신의 쓸모와 자신의 쓸모를 할 수 있다는 설렘을 가진 블랑이 대단하고, 부럽다. 나의 쓸모에 늘 자신이 없고, 뒤로 빠지기에 급급한 나니까. 블랑은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추억을 만들어 기억으로 쌓았고, 또 다른 새로운 삶을-누군가를 등에 태워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살 준비를 마쳤다. 블랑의 새로운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 그림책을 보면, 목마 블랑이 고정되어 있다. 블랑이 고정되고, 블랑의 주변이 바뀐다. 작가가 왜 블랑은 고정으로 두고, 블랑의 주변(시공간)에 변주를 줬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이해했다. 블랑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이 바뀌면서 외로움을 느끼거나 걱정을 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느끼면서 주변에 적응했고, 자신의 역할을 항상 다했다. 그렇게 블랑은 단단해졌다.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곧으면, 주변의 변화를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중, 하나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 생각하는 지금이 훗날 떠올렸을 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나의 마음이 단단해지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마음은 고정으로 두고, 변하는 주변을 조금 더 유하게 바라보는 연습도 말이다.

 

이 책은 우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직접 선택한 책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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