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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ㅣ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평점 :
집사가 되기까지, 집사를 고르기까지,
추정경 장편소설, 『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래빗홀)
표지와 제목만 보고, 무작정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주 가볍게 읽을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고, 나는 보기 좋게 스스로 망신당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특별하고 묘하게 빠져 들었다. 우리는 고양이가 강아지와 다르게 도도하기 때문에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사실 고양이를 길들인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고양이를 선택하여 길들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얼굴에 들이밀고 싶다. 고양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하며, 그들만의 확고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니까. 아무래도 이 책을 읽고 나니 본가에서 제 구역인 방과 마루를 소리 없는 걸음으로 다닐 고양이를 떠올리니 사뭇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가 주변을 감싸는 것 같다.
완벽한 개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장애를 가진 호랑이들이 태어나 버려지고, 수많은 근친 호랑이를 교배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돌연변이들이 부산물로 취급되어 연구소 한편에서 안락사당하는 것을 서준은 괴로워했다. 그중,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른다. 그것은 바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티그리스. 서준에게는 배다른 남동생 테오가 있는데, 테오는 티그리스가 처참하고 잔인한 마지막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서준은 말도 안 하고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테오를 데리고 한국으로 온다. 친하지 않은 대학 동기 길연주가 원장으로 있는 두썸띵 동물병원에서 일을 하며, 점차 테오의 삶은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연약한 생명체를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길연주는 테오가 길고양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방식대로 테오를 보살핀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 받을 수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테오는 티그리스가 죽는 날, 티그리스로부터 받은 능력이 있다. 바로 고양이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티그리스는 아마 테오가 ‘천 년 집사’ 혹은 ‘천 년 집사의 조력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고양이들을 구하고 평화를 가져올 특별한 집사의 탄생을 그 누구보다 바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티그리스가 준 능력으로 고양이 언어를 알아듣고, 고덕이 운영하는 계정에서-남들은 고양이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상이라고 하지만-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회색 고양이를 알아차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서준과 테오가 고덕을 찾고, 경찰 고덕이 엄마의 죽음과 고양이의 죽음의 진실을 좇으면서 고양이들과 고덕 사이의 에피소드(고양이와 인간의 관계)는 물론, 생명의 존엄성으로까지 세계관이 확장된다.
흥미로웠던 점은 ‘테오와 고덕의 관계성’이다. 둘은 티그리스와 째째로부터 능력을 얻었고, 천 년 집사의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자의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강제로 그 길로 밀어 넣은 것도 아니다. 어쩌면 천 년 집사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테오와 고덕 둘 중에 누가 천 년 집사가 될지(궁금하다면 책을 꼭 읽길 바란다!) 모르지만, 확실한 건 서로 조력자가 되어 고양이들을 구하고 평화를 가져올 천 년 집사의 탄생을 너무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천 년 집사의 탄생은 그 누구보다 고양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단 한 명의 집사만을, 제 한 목숨을 바쳐 택한다.’ 그러니 겁 없이 고양이 집사가 되겠다고 설치다가는 보은과 복수가 동급인 고양이에게 뼈도 못 추릴 만큼 당할 것이다. 고양이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간택 당하는 것이며, 스스로 격을 갖춘 뒤 고양이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아홉 가지 중 그 하나의 목숨을 온전히 그대에게 건 만큼 고양이의 간택을 최선을 다해 거부하거나 최선을 다해 받아들여야 한다.
고양이 집사는 고양이의 목숨 하나를 온전히 받은 인간을 의미하는데, 그중 나도 하나라는 사실이 놀랍다. 어쩌다 우리집에 와서 살겠다고 정신없이 젖병을 빨며, 자신을 향하는 손길에 하악질을 하던 아이가 사실은 우리 가족이 자신의 간택을 받을 격을 갖출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이며,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나름 우리 가족 생활에 적응한 것은 자신의 목숨 하나를 온전히 우리에게 건넸다는 사실에 새삼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엄청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선을 다해 거부하거나 최선을 다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아이에게 묻고 싶다, 나에게 너의 목숨을 하나 주었냐고. 너의 목숨을 나에게 줘도 될 만큼 내가 격을 갖춘 사람이냐고 말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래빗홀’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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