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여자
선요 지음 / dodo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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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선요, <나무 여자> (도도그림책)

아침부터 <나무 여자>를 읽었더니 마음이 편안하다. 매일 아침에 꺼내 읽어야 할 책을 만났다. 이 만남이 나를 지키고 아끼는 방법을 알려줄 것만 같다. 상대를 위한 사랑을 하라는 작가의 말이 꼭 나를 위한 사랑을 하라는 말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책은 현재 나의 감정, 기분, 태도, 생각, 상황 등에 따라 여러가지 측면에서 읽힐 수 있는데, 사랑하는 존재가 상대인 이 그림책과 달리 나는 사랑하는 존재가 나 자신으로 읽혔다. 이 책을 무겁게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에 펼친 건 내가 가장 잘한 일이다.

나무 여자는 새벽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화분 하나를 만나게 된다. 집으로 데려가서 화분을 애지중지해서 돌본다. 나무 여자의 사랑을 받은 화분은 처음에 잘 자라기 시작한다. 나무 여자의 일상은 곧 화분의 일상이고 화분의 일상 또한 나무 여자의 일상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삶이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나무 여자의 사랑이 두려움과 집착이 되면서 화분이 점점 시들어 가는 것이다. 나무 여자는 화분을 살리기 위해 식물 병원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를 사랑하는 방법은 쉽다. 아니 쉽다고들 생각한다. 쉬워서 실수를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너를 위해서 그런 거라고 한다.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진 나머지 사랑하는 존재의 자유와 행복을 해치는 것이다. 그 해침은 사랑이라는 틀 안에서 정당한 것이 된다. 무서운 일이다. 사랑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사랑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이의 행복과 자유를 가린다면 그건 더이상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사랑하면서 누가 그런 걸 일일이 신경쓰면서 하냐고 묻겠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이들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한 적당한 거리를 둔다. 나는 아직 그 거리를 경험하지 못 했고, 사랑이라는 것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 사랑을 하기에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하기 위한 조건은 ‘스스로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이 조건을 아마 죽기 직전까지 충족하지 못할 것임으로 사랑 또한 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스스로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직접 경험한 후에 들려주는 말들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 하는데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늦은밤까지 화분의 곁에서 떠날 수 없던 그날밤, 나무 여자의 꿈에서 나무 여자는 안전하고 편해보이는 유리 상자에 갇히게 된다. 친구도 만날 수 없고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 유리 상자 속에서 나무 여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숨이 막히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한 것이다. 다음날, 나무 여자는 화분을 지키겠다고 씌워둔 유리 상자를 열고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밖으로 화분을 꺼냈다. 나무 여자가 화분을 지키기 위해 버섯을 뽑고 벌레가 오지 못하도록 유리 상자를 씌운 그 마음은 화분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것이다. 사랑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받는 상대가 시들어 간다면 그건 더이상 사랑이 아닌 것이다. 나무 여자가 너무 늦지 않게 그 사실을 깨달아서 다행이다. 나무 여자는 종종 화분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존재가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고 싶지만 살면서 해야 하는 경험이 있고, 모든 것을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고 난 뒤 화분은 더 단단해지고 더 화사하게 자신을 뽐낼 것이라는 것을. 화분이 힘든 시간을 잘 버티는 것을 지켜봐주는 것만으로 힘이 되며, 화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진정한 사랑임을.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의 두려움과 집착으로 행복과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뭐든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원활하게 흐른다는 것을.

나는 고통과 슬픔을 대신 감당해주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존재가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어려운 나에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아주 버겁고 무겁고 무서운 일이다. 애초에 책임지지 못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하게 넘길 거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다. <나무 여자>는 부드럽고 다정하면서도 그 안에 뾰족한 가시가 서 있는 이야기다. 그 가시에 찔리지 않았지만 언제든 찔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나에게도 사랑이란 것이 생각지 못 한 때 찾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찾아온 사랑을 밀어내기는 하겠지만, 대부분 쳐들어온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로 봐서는 나도 사랑에 웃고 우는 경험을 할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아름답고 특별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 일이 내게 일어나기 전에 스스로부터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고 아끼는 것에서부터 사랑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일부러 나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렇게.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나를 사랑하는 일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준비와 애씀이 필요할 듯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깨달았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나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찾아올까 기대를 품는다. 찾아오는 사랑을 지나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사방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이니까.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도도그림책‘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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