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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김희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평점 :
한때 살았던 그 같은 성이라는 것, 🏰
: 김희재 장편소설,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뭐라고 써야 할까. 책을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면, 아니 책을 읽으면서 서평에 이런 내용을 넣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주저했다. 차라리 듣지 않았다면 좋았을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가지는 무거운 마음이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들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째서 이리도 고약한 상처를 품은 채 살아야 하는 건지, 사는 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어렵고 괴로운 건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당연하게도 소설은 답이 없었다. 이 책을 펼친 독자의 몫이라는 듯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감당하기에 나는 여전히 무언가 부족했다. 이야기를 담은 그릇도, 내가 겪어온 경험도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아쉬웠다. 그래서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나’의 이야기, 새 언니의 이야기, 이소의 이야기 모두 버거웠다. 읽으면 읽을수록 속이 뒤틀렸다. 답답했다. 짜증이 나고 미친 사람처럼 울고 싶었다. 외로웠다. 내가 겪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느꼈다.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라는 제목을 보고 많이 아플 거라고, 이 책을 펼친 순간 한번에 이 책을 다 읽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자주, 책을 읽다가 멈추고 책장을 덮을 줄 몰랐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다. 분명 소설 속 이야기인데, 실제로 내가 또는 내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처럼 다가와서 이 책을 읽고 나면 현실과 혼동했다. 일하다가 또는 버스타고 이동하다가, 자기 전에 눈을 감고 있는 순간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힘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책을 다 읽지 않고 쓰는 것이다. 다 읽고 나서 쓰기에는 이 책이 나에게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124쪽까지 읽었는데, 지금 읽은 페이지까지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적어 놓고, 읽고 나서 떠오른 것들을 덧붙일 생각이다. 그래서 앞뒤 문장이 어색할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한 번 읽을 수 없고, 이 책을 펼친 이상 마지막 문장까지 읽어야 할 책임이 있고, 책을 읽은 이상 기록을 남겨야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우리는 한 번쯤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에 갇힌다.”라는 문장 앞에서 나는 맥없이 무너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기억이라는 성이 얼마나 단단하고 무서운지 알기에 그렇다. 각자 갖고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에서 자신을 구해내는 것은 누구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병원에 있는 나,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나의 전 새 언니이자, 이소의 엄마, 나의 유일한 혈육 조카 이소의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폭력과 침묵,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나는 방황하고 있다. 그들도 어쩌지 못 하는 그 성에서 외지인인 나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고 있다.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 익숙한 그들에게 독자인 나의 방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보인다. 그들의 텅 빈 눈을 마주하는 기분을 느낄 때면 오싹한 느낌이 나를 감싼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부분인 ‘외로움‘을 제대로 마주볼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나도 병원의 나, 이소의 엄마, 이소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두렵다. 기억의 성에 잡아 먹힌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발버둥친다고 해서 예외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 공포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불쾌하고 울컥하고, 하나뿐인 심장이 닳아질 만큼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소가 갇힌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이 가장 무서웠다. 이소 자신만의 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고모, 아빠, 엄마, 새 아빠가 있기 때문이다. 이소 엄마가 밤늦게 야반도주하는 것처럼 짐을 싸서 이소와 함께 바다로 향했던 날 이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엄마의 말이 잔인하면서도 무책임하게 들렸다. 이소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고, 모른척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너무 잘 알아서 자신 곁에 남은 사람이 엄마 뿐이기에 엄마만 괜찮아진다면 뭐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에 매달렸다. 이소는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뭐든 할 준비가 되었다. 이소에게 엄마뿐이라는 사실이 참 잔인했다. 자신이 없는 엄마의 삶을, 자신 때문에 살아야 했던 엄마의 삶을 생각하게끔 만든 상황이 불쾌하고 안타까웠다. 이소 곁에는 정말 아무도 없던 것이다. 혈육 고모인 ‘나’가 있었지만 엄마 장례식장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고모를 보고 이소는 새 아빠와 살 거라며 고모의 속내를 정확히 짚고 책임을 덜어줬다. 그 어린것이 어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나서 새 아빠와 있었던 일을 준에게 말하는 이소에 분노가 치밀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고, 바로 잡기에는 아주 먼길을 돌아가야 했고 돌아가더라고 시간과 기억의 바래짐에 바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소의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은 이소의 의지와 상관없이 콘크리트를 여러 겹 덧댄 것처럼 단단해졌다. 덧댈수록 빛은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이소가 숨을 쉴 수 있는 구멍도 사라졌다.
혼란스럽다. 지금 내가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헷갈린다. 정신없이 몰아친다. 무서울 정도로. 지신영, 이소, 새언니(주연), 요양보호사 모두 비슷한 폭력에 노출되었고, 그 폭력으로 인해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기억의 성이 만들어졌다. 기억의 성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한 줄기라도 안으로 들여보낼 생각이 없다며 단단해졌다. 기억의 성에서 고통받는 건 기억의 성을 원치 않았던, 생각지 못 한 기억의 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네 명의 여자들이다. 왜 하필 지신영이었을까, 왜 하필 이소였을까, 자꾸 왜 그들이어야 했는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 기억의 성이 무너지는 건 곧 그들이 무너지는거나 다름없었다. 이미 무너진 그들이지만 기억의 성을 이루는 근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네 명의 여자가 겪어야 했던 시간이 너무 무겁다. 그 시간을 담고 있는 기억 또한 무겁다. ‘기억’이라는 영역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생각했다. 기억이라는 것을 애초에 영역을 잡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기억은 광범위하다는 표현으로도 담지 못 하는 것이다. 그들이 기억의 성에 갇힌 모습에서 알았다. 기억의 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입구도 출구도 없다는 것을. 성에 기꺼이 갇히기로 한 것이 그녀들이라는 것도.
마지막 챕터에서 내가 이 책을 넘기기를 주저했던 이유를 알았다. 무서웠다. 내가 예상하고 생각했던대로일까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일까봐. 역시나 그랬다. 쌍둥이 여동생의 새언니이자 이소의 엄마인 주연이 언니에게 남긴 글과 그녀의 꿈은 비참했다.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안개가 갇힌 성을 멀리서 바라본 느낌이랄까. 주연의 글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를 받아들이는 건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자신의 상처와 상대의 상처가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것은 아니며 감히 상대의 상처를 보듬고 감싸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상처가 상대의 상처로 덮히거나 상대의 상처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물 거라고 함부로 생각하고 기꺼이 상처를 안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고. 주연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 살지 않아야 할 삶이 있을까 싶었지만, 주연의 삶이 살지 않아야 할 삶일지도 모르겠다. 주연처럼 살고자 한다면 살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나을 것이다. 주연의 선택으로 결국 혼자, 외로이 남은 건 딸 이소니까. 자신의 삶과 같은 삶만큼은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뒤늦은 계획하지 않은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사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상처를 더 만드는 것일뿐. 기억의 성에 사는 건 죽은 사람이 아니라 남는 사람이니까.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아주 많았다. 나중에는 너무 고르는 것도 지쳐서 노란색 형광펜으로 다 그어 버렸다. 노란색을 입은 문장들이 내 시선을 잡고 놓지 않는다. 눈에, 머리에, 마음에 깊게 새겨진 문장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문장이 나를 꽉 쥐고 흔든 순간을 기억한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 문장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릴 거라고 확신한다. 책장을 덮고도 진정되지 않는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이야기들에 마음과 눈을 빼앗겨 버렸다. 이미 빼앗긴 걸 돌려주라고 할 수 없기에, 뺏긴 마음과 눈이 제자리로 알아서 찾아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마 이 기다림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이 기다림 끝에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 기억의 성에서 살고 있는데, 나의 기억의 성은 어떤가? 기억의 성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주연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기억의 성에 갇혔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계획도 지은 적도 없는 기억의 성은 어떻게 지어지고, 매일 단단해지는 건지. 어제에 베어 물리며 시작하는 오늘이 쉬운 나는 오늘도 나의 기억의 성이 단단하게 쌓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기억의 성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기억의 성에서 제발로 나오거나 기억의 성을 완전히 부수기 어려울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다산북스‘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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