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 매혹과 권태, 상실 그리고 성장의 심리학
주현덕 지음 / 나무의마음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마지막 맺음말이 인상깊다. 그리고 그 맺음말은 이책에서 내내 했던 말이기도 하다. 사랑의 답을 나에게서부터 찾고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내 삶을 밝히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냥 줄 수 있는 것들을 늘려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때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될 것, 그것이 곧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기에.

이끌림, 지속, 선택, 온전한 사랑, 그리하여 남는 것들에 대해 차례로 서술한 이 책을 공부하듯이 정리하면서 읽어보았다.

사실 내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그리하여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독립적은 두 객체로 만났기에 관계 맺기를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대는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하여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애쓰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랑은 얻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고, 사랑의 질은 두 사람의 성품과 적합성, 좋은 의도와 시간을 들여서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행복한 사랑을 할 권리가 있다.' 자신에게 먼저 진실할 것, 상대에 대해 알아차릴 것, 자신과 상대 모두에 단계와 속도를 조절하며 정성을 다해 돌볼 것.

완벽한 인연, 기막힌 운명, 환상적인 결합은 없다. 수많은 균열과 얽힘을 사이에 두고 적당한 거리두기와 내 삶의 가치(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확고하고 견고하게 가다듬어가는 것이다.

누군가를 바꾸려 하기보다 그대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었기에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할 뿐.

우리의 사랑은 우리를 닮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사랑과 성장의 심리학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킨 단 한 줄의 희망
한동일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前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자, 前 사제이자, 교수인 한동일 작가가 『라틴어 수업』 『라틴어 산책』 등에 이어 『라틴어 인생 문장』을 펴냈다.

책 머리에 한동일 작가의 필기체 프린트가 이 책의 전부를 얘기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살아가는 방법들을 선택하기를, 그래서 끝까지 가기를'
그렇게 7장으로 구성된 라틴어문장들 속에서 "이것이 끝입니다 (Iste finis)"가 마지막 문장이 되었다. 2022년 세바시 1566회의 강의 내용이 이 책의 마무리 문장이 된것이다.

이 책의 부주제가 아무래도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킨 단 한줄의 희망'이기에, 내가 지금 긴 터널에 들어와 있구나 하는 삶의 고비를 느낄때, 터널의 끝을 알리는 한줄기의 빛이 나는 결국 끝까지 걸어 그 고비를 넘겼구나 싶은 순간일 것이다.

터널에 끝까지 가봐야 터널이였다는것을 알게되는 것
끝까지 가야 끝낼수 있다는 것
'끝내 버릴까', 라는 멈춤이 아닌, '끝이구나'라는 끝끝내 다다름으로 이르라는 말.

인생 에 대한 위로의 문장들 답게, 적절한 '끝' 문장이였던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첫 코로나환자 발생 이래, 2020년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주의' 단계로 전파가 시작되었다. 일주일만에 급속하게 전파되자 2020년 1월 27일 지역사회 전파로 보고 '경계'로 단계를 높였다. 다음달 신천지 집단감염이 시작되자 2020년2월23일에 전국적 확산인 '경계'단계에 이르며 2월29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선언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결국 3월 12일 세계적 대유행인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했다. WHO의 비상사태 해제발표 및 '심각'에서 '경계'단계로 하향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23년 6월 1일이었다.


한참 코로나 19의 확산세로 '사회적 거리두기' 라는 말이 생기고, '비대면' 이라는 말이 무성해졌던 2020년의 봄의 소리는, 손소독제로 손바닥을 비비는 소리로 기억되는 해이다.


자가 '격리', 영업장 '폐쇄', 사회적 '거리두기', 모임 인원 '제한' 등 전부 '단절'과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말들 뿐이다. 어쩔 수 없었다. '확산'을 막기위한 방법은 '끊어내기'뿐이었다. 그 수많은 끊어내기 속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벅뚜벅 걸어나와 지금에 이르렀다. 


" 횡단보도에서, 건물과 거리곳곳에서 사람들과 마주칠때면

거기 있는 모두가 2020년을 겪고 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라기도 한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오늘에, 내일과 모레에,

이 소설의 못다한 이야기처럼 가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주』 작가의 말 中 


소설은 2020년을 배경으로 우리가 겪은 시간들을 다루고 있다.

그때는 처음이였을, 그래서 너무 당황하고 두려웠던,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 '지나온 시간들'을 담아 두었다. 이 모든게 지나고 나니 엄청나다.

그리고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게 놀랍다.


01 "그럴 수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소상공인 '이나리'는 코로나가 한참이던 그 해 기정시의 새경프라자 304호에서 캔들과 비누를 만드는 첫 상가 공방인 <나리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공방에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친하게 지냈던 한 수강생이 코로나19의 67번 확진자가 되어 인근 시립병원으로 이송되고 만다.

정작 나리는 '잠복 결핵 보균자'라는 이유로 코로나19에 감염되지는 않았다. 모두가 신종 호흡기 바이러스로 정신이 없는 때에 생각지도 못한 결핵얘기를 듣게 된 나리는, 호흡이 불편해지는 증상을 겪기도 하고 나아가 공황장애 현상인 과호흡을 겪기도 한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이런저런 생각의 늪에 빠지게 된 나리는 그동안의 관계와 앞으로의 관계를 다시 천천히 되짚어보게 된다. 기정시에서 살아온 남편 '오종수'를 만났고, 기정시에서 학원차량기사를 하며 살아온 '수미'도 만나 비슷한 시기에 마흔의 고비를 넘겨왔다. 13살 나리의 딸 '오은채'와 14살 수미의 딸 '김서하' 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했으며, 무엇보다 결핵을 옮겼을거라 추정되는 '만조 아줌마'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재회한다.

'자신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소설이 바로 『마주』이다.


02 '치부가 다 까발려진 사람이 동네로 돌아왔을때, 우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보고를 하듯 매일 서로의 동선을 공유하던 안전 강박심이 안심되는 동시에 숨막혔던 시절'이었기에, 확진자를 향한 '분노'와 '적대', '경멸'과 '실소'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한 형태였다.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는 명명할 수 없는 울퉁불퉁한 감정들로 뒤섞여 우리의 관계망를 흔들었다.

때문에 완치된 뒤 복귀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돌아오면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방과후 교사, 학습지 방문교사, 학원기사 등 '집단'을 상대하는 직업은 더욱 그랬다. 수년을 같이 일해오며 신뢰를 쌓아온 사람들과 더 이상 함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든 일자리를 잃는다는건 선택의 폭을 아주 많이 제한할 수 있었다. 이건 사회적인 부분이였다.

수미는 개인적으로도 자신에 딸에게 많은 제한을 두는 여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도 이제는 그녀에게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리가 우연한 계기로 수미와 서하의 관계를 알게되어 두 모녀를 '분리' 시키려 하자마자 수미가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단절'을 겪는다. 수미의 단절은 자신이 쌓아왔던 경력과 신뢰의 단절이자, 부모로서 자식과의 관계의 단절이었다.

나리와 비슷한 나이대의 수미는 '감각을 죽이고 사는 여자'였다. 의욕도 기력도 없어 언젠가부터 접어두어 잊고 사는 '생기'라는 것을 살다보니 죽여버리고 말았지만 다시 살릴 엄두가 나지 않는 여자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기분은 어때?'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사는 낙이 하나도 없다' 며 기진맥진한 채 아이에게 매달리며 '니가 아니면 이게 다 무슨 의미니'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 투사하며 숨통을 조이는 전형적인 부모였다. '아이의 부정적인 반응에 상심'하고 '아이가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해 하였기에 온전하게 아이를 지지해 주지 않는 부모였다.

"제발 나를 안심시켜줘,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줘" 라는 자신의 확장으로 자식을 생각했었기에, 자녀 역시 "내가 나로 있으면 엄마가 힘들어할거예요"라고 말하는 그 세상을 나리는 알고 있었다. 나리는 딸의 세상을 최선을 다해 좁게 만들어 온 여자의 면상을 쳐다봤다.

이 세상엔 여러 종류의 문제가 있듯이 여러가지의 방법이 있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힘들게 했던 상황과 조건 속으로 다시 자신을 기어코 밀어 넣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미는 '단절'로 회복되지 않은것 같은 딸과의 관계가 어긋나자 딸과의 관계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대신 둘째를 낳아 새 관계를 그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마주하기보다,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사람은 어쩌면 많을지도 모른다. 나리는 수미를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마주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사과밭으로 가자"

수미를 데리고 나리는 2020년 1단계의 가을을 마주하기로 했다. 


03 " 코로나가 언제 끝나는데? "

나리는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자주 있는 13살 사춘기의 딸을 데리고 있는 40대 중반의 '엌마'(딸은 엄마를 이렇게 저장하고 있었다)였고, 제 3자처럼 적당한 해결책만을 내놓으며 '무슨 말만 하면 내탓이냐'고 말하는 남편을 둔 '아내'였고, 9년만에 홈에서 상가로 옮겨 공방을 연 자랑스런 '양초공예협회의 지도사 자격증 소지자'이자, 공방에 확진자가 나오며 민폐를 끼쳐 조심스러우면서도 코로나의 여파로 임대료 및 생계가 걱정이 되는 '자영업자'였다. 쏟아지던 관심에 '결핵 보균자'라는 걸 알았고, 과호흡으로 인한 '공황'증세까지 얻었다.

" '공황 장애' 단절이 일어날 때 나타납니다. 내 안의 미해결된 감정과 단절될 때, 내가 나한테 벽을 쳐버릴때, 몸으로 그게 나타나는 거예요.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질환이죠. 당신은 그걸 찾아야 될 거예요."

사람은 큰 공포를 겪으면 모든 일상은 다시는 그런 상황을 겪지 않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며 살게 되어 있다. 밝고 오지랖 넓던 성격은 움추러 들었고 모든 공공장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미용실, 영화관은 물론이고 엘레베이터나 계단 통로, 그리고 운전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만사가 조심스러워 매사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나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여파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9년만에 연 10평남짓한 공간의 문을 매일 여는 것이 지금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예약이 없어도, 제작 주문이 없어도 꾸역꾸역 열었다. 두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소를 확보하는것, 그것이 가장 절박했다. 공방은 그렇게 이어나갔다.

가깝게 지냈던 '수미'와 딸 '서하'를 보며 자격 없는 엄마인 수미를 경멸했고 엄마의 굴레 속의 서하에 감정이입했다. 관계는 공방만큼 이어나가는게 힘겨웠다.

단절. 미해결. 자신과의 관계의 재정립.

그래서 가게되었다. 명절 귀향길에 싸운 부부처럼 고개를 돌리고 날이선 상태로라도 몰입할 다른 것을 찾아서, 순간적 해방감을 찾아서, 만조 아줌마에게.

"엄마는 잘 계시니?"

"코로나가 다 끝나면 오래요. 추석때도 오지 말라고 해서 못갔어요."

엄마보다도 먼저, 이 가을, 사과 수확 일을 도우러 수미와 사과 밭으로 간다.


04 " 그 많던 사과는 어디로 갔을까? "

나리는 어릴적 반 이상이 산비탈에 걸쳐져 있는 사과밭을 운영하느냐 바빴던 부모님 집에서 자랐다. 만조아줌마는 여안 일대에서 과수원일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도와주던 팀중에 하나였는데, 이웃해 산다는 심리적 가까움 때문인지 부모님은 만조아줌마에게 많은 의지를 하며 자주 맡겨지곤 했다.

언젠가부터 맡겨지다가 언젠가 부터 그만두어 떠나게 되어서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만조 아줌마가 사과를 발효하던 모습, 나누던 대화, 닭간을 챙기던 것, 예초기보다 민들레를 심자고 말하던 아줌마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비탈사과민들레밭 의 가장 최근 사진을 보았을때, 삼십년전 만조 아줌마가 2020년 여름을 살면서 자신처럼 지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항상 나도 모르는 나를 알아봐줄 누군가를 계속 갈구하고, 친밀감에 목이 말라 있었던 나리였다. 어릴적엔 만조아줌마가 곁에 있었고, 자라서는 남편이 곁에 있어줬다. 그리고 지금은 곁에 누구를 남겨 두었던가. 딸인가. 친구인가. ...공방인가.

"지하에 뭐가 있어요?" "증류실이 있지, 숙성실도 있고"

"딴산은 어디에 있어요?" "충청남도 여안군에 있지"

"누가 사는데요?" "밭일을 제대로 하는 일꾼들(만조아줌마의 팀)이 살지"

"결핵은 누구한테 옮았어요?"

딴산은 결핵 환자들이 모여살던 곳이었다. 병원에서 병상부족을 이유로 강제 퇴원당한 결핵 환자들이 모였고, 조금씩 그와 비슷한 처지들의 수몰민들이 골짝으로 들어가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서로를 유추하거나 어떤 팔자였는지 묻이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이유건 서로 더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몸이 다할때까지 약초를 캐고, 가축도 기르고, 사과 농사도 지었다.

나리는 수미, 그리고 딴산 사람들과 밭일을 도우며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결국 여안 시장으로 가서 비즈를 꿰맨 마스크 크트랩을 만들고, 털 수세미를 만들고, 천연비누도 만들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의 몸 속에 잠복한 딴산발 결핵군의 원천지인 '그' 딴산 '안'으로 직접 들어간 것이다.

"그때 만조 아줌마가..." 미루고 미루던 것을 확인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어린 시적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허락해 주지 않아 더이상 만조 아줌마와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여름을 기억했다. 지난 날의 자신의 기억을, 엄마의 눈치를 보며 몰래 음식을 먹던 아이가 가여워 '숨 좀 쉬라며' 기꺼이 돌보아 주려 손을 먼저 내밀었던 만조아줌마의 상냥함을,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아줌마에게 얼마나 큰 곤경을 빠뜨리게 했는지를. 미루고 치워두고 덮어두었던 마음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05 "너를 그렇게 둬서 미안해"

나리는 자신의 실수 뒤의 만조 아줌마의 시간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때문에 만조 아줌마의 숙성실의 항아리 옆을 떠날 수가 없었다.

만조 아줌마가 농사와 양조에 쏟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혹시 찾고 있는 날짜들이 있지나 않을까 하면서 항아리 사이사이를 누비고 또 누빈다. 만조아줌마는 나리의 결혼식에 찾아와서 '적적할때 먹어라'면서 사과주를 건내준 적이 있었다. 그 뒤론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은채를 출산 소식을 듣고는 술을 담가 숙성 날짜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나리는 12살 이후 삼십년간 마음 속 어딘가에 아줌마를 숨겨두고 있었는데 아줌마는 아니었다. 언제나 나리 편에서 나리를 마주하며 응원해주고 있던 것이다.

나리는 남모르게 엄마의 눈치를 보며 자라던 억눌린 시절의 자신을 수미의 딸 서하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이입했었다. 그시절 만조 아줌마가 예전에 자신에게 그런 시간과 공간을 내어준것 처럼, 지금의 서하에게도 그런 시간을 내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경멸부터 분노까지 알수 없었던 감정에 휩쓸려 수미를 차단하고, 다시 푸르고, 휘젓던 수미와도 마주한다. 수미의 시선이 닿는곳에 같이 시선을 마주한다. 그렇기에 후에 수미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을때 어쩌면 살짝 웃었는지도 모른다.


06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바길 바랐다"

코로나 19가 확산된 봄이 지나, 재확산된 겨울이 되었다. 여전히 위험했고, 이전히 더 긴 시간을 집에 머물며 그간 쌓여왔떤 서로간의 문제들을 다시 겪게된다.

수미와 서하는 지난 십년간의 시간이 서로의 면전에서 차곡차곡 펼쳐지며 사실은 그동안에 지워졌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전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서로에게 상처주었던 말들은 어떤 날은 마음이 아팠다가 또 어떤 날은 화가 나면서 자책, 자기혐오의 연장선상에서 오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은 결국 당사자들이 겪고 넘어가야 하는 시간이다. 지난 코로나처럼, 지난 봄처럼, 수십년전의 사과밭의 기억처럼 말이다.


사람은 초와 다르다. 기본적으로 굳기를 기다린다 해도 단단해 지지 않는다.

잊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알고보니 생경히 살아있기도 하고,

지웠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알고보면 지워지지 않았다.

태울지, 태우지 않을것인지를 골라 심지의 깊이를 선택하는 일을 초만이 가능했다.

우리는 그 심지가 자신을 이유 없이 답답하게 하고 얼마나 괴롭히게 할지 그러다 또 언젠가 어떠한 계기로 타오를지 언제 꺼질지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알 지 못한채로 묻어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미는 언젠가 나리공방에서 만들어진 '두꺼비 소주잔'에 만든 캔들을 선물 받는다. 그리고 수미와 나리는 11월에 수확해 긴 겨울을 나눠 먹을 수 있는 부사보다 수확 시기가 늦은 만생종 사과를 로컬 푸드 직매장에서 발견한다. 품종명은 '아삭'이, 생산자 라벨에는 박만조가 적혀 있었다.

무엇이든 온전히 감각해 본 순간을 거치고 나서야 용기 낼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더 흐른뒤에 알게 된다.


건너왔으나 온전히 건너오지 못한 시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서로를 의심하고 소외 시키는고 스스로 고립되는며 단절되는 것이 당연했던 '거리두기의 시대' 건너온 우리들에게 넌지시 그 마음을 보다듬어 주는 시간을 선사한다.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며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들을 다시 마주하게 하게 하고,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냈을때 비로소 타인에게 가까이 마주하며 가닿을 수 있음을 확인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살 위로 사전 - 나를 들여다보는 100가지 단어
박성우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홉 살 마음 사전』 시리즈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 박사’로 등극한 저자가 이번에는 『마흔살 위로 사전』을 통해 청장년층의 마음을 대변하고 위로해주는 단어들로 또 하나의 ‘사전’을 편찬했다.
ㄱ의 '가득차다'부터 ㅎ의 '힘차다'까지 100개의 단어를 골라 직장인의 삶, 가정 내의 삶, 혹은 일상에서 한번쯤 마주 했을만한 상황들이 예시와 비유를 들어가며 가득 담아 놓았다.

처음 책을 펼쳤을때 목차를 보며 책을 읽기 전 그 단어에 대한 나만의 뜻과 표현을 찾아 적어보고 싶어서 쭉 적어본 뒤에야 책을 읽었다. 비슷한 점과 다른 점들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책은 사전적 단어의 뜻풀이가 아닌, 상황적 단어로서 공감 갈만한 에피소드 몇개만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지친 마음을 들여다 보고 어루만저 주며 위로해줄 수 있는 글귀들로 장식하여 독자들의 '마음 정리'를 돕는다.

우리는 종종 몇가지 단어 뒤에 수많은 감정을 숨기거나 때때로 마음 속 감정을 드러낼만한 적절한 표현구를 찾지 못할때가 많다. 그런 어렴풋한 마음 마음들을 구체적인 표현들로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들로 드러내고 감싸준다.

독자들의 하루를 어루만지며 “위로와 격려와 사랑의 인생사전(정호승) ”으로, 어떤 단어가 머물다 가는지 같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관대하다, 끄떡없다, 단단하다, 서글프다, 괜찮다, 힘차다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다들 그런 단어들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힘듦을 알아주는 말, 다독이고 위로 해주는 말, 깨닫고 통찰하게 된 괜찮다, 힘차다는 말들로 이루어진 단어의 힘과 그 단어에 실린 자신의 마음가짐을 확인하고 싶다면 읽기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사자 와니니 창비아동문고 280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 창비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까지 누적 판매 90만부를 기록 중인 어린이 장편 동화 『푸른사자 와니니』 시리즈.

어느새 100쇄 인쇄를 돌파한 1권을 이제야 읽어보았다.

와니니는 은가레강 구역에서 버팔로를 주로 사냥하는 암사자 '마디바'의 무리였다. 암사자들은 누가 낳았는지를 따지지 않고 무리의 아이들을 함께 키웠기에 모든 아이들의 엄마였다. 치밀한 작전과 풍부한 경험, 무엇보다 자식을 굶기지 않겠다는 책임감으로 사냥해왔다. '공격조'가 사냥감을 쫓으면 숨어있던 '매복조'가 뒤처진 사냥감을 기습하는 것이 암사자의 사냥법이였다. 사냥보다 세상구경에 마음이 끌렸던 아기 와니니는 겨우 한살이었다. 잡아다 준 먹이도 형제 자매들에 밀려 스스로 챙겨 먹지 못하던 힘이 약한 아이였지만 마디바 무리에 속해있는 암사자임에 자랑스러워 했고 반드시 멋진 사자로 자라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초원이 우기를 지나 초식동물 사냥감이 줄어든 건기가 되자 암사자들은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 와니니는 '제대로 된 사냥꾼'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아이' 로 '제 몫을 해내지 않는 아이까지 돌볼 순 없다'는 이유로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암사자가 사는 법은 몇가지 룰이 있었고 그 룰은 절대적이었다.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를 것(우두머리는 무리를 위해 냉정해져야 할때가 있다)'

'사자는 혼자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사자는 여럿이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다)'

'갈기가 자란 수사자는 무리를 떠날 것(이후 수사자의 방문은 공격으로 여긴다)'

'물러서거나 겁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그것이 암사자가 수사자를 제압하는 방법이다)'

'이미 대가를 치른 일에 대해서는 다시 죄를 묻지 않고,

이미 지난 죽음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을 것(쫓고 쫓기고 먹고 먹히는건 당연한 일이다)'

'오늘 내가 할일을 할 것 (그러면 내일이 온다)'

와니니는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다른 엄마들은 '무리를 떠나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것'이라며 와니니는 남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을 뿐이라며 응원했다. 무리에서 떠나게 된 와니니는 사자에게 가장 무서운 '혼자가 되는 벌' 을 받으며 떠돌이 신세가 된다.


혼자가 된 와니니는 '무리는 며칠에 한번씩 이동했지만, 외톨이는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조금씩 몸으로 하나하나 세상의 이치를 스스로 깨우쳐 갔다.

개인적으로 이말이 왜그렇게 아프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혼자가 된다는건 더는 온전히 그리고 마음 편히 쉴 수 없다는 이말이, 매일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 '떠돌이'의 신세를 너무 잘 표현해주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달을보고 해를 보면, 오늘을 열심히 보내자 비로소 오늘이 온다는 말을 실감한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다시 오늘이 지나면 내일,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면 해는 꼴딱꼴딱 잘도 기울었고 다시 떠올랐다.


외톨이로 지내기 힘겨워 하던 어느날, 그저 '지독하게 운이 나빴을 뿐'이라며 다들 와니니처럼 저마다의 딱한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던 또 다른 떠돌이 사자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사자에게는 친구가 필요해, 그동안 혼자 다니면서 충분히 느끼지 않았어?'라며 비록 수사자와 암사자 사이지만 사냥할 줄 모르는 와니니에게, 그리고 절름발이 여섯살 아산테 아저씨와 두살 애송이 잠보에겐 서로 필요한 존재들이였다. 그리고 와니니는 무리를 떠난 뒤 처음으로 편하게 누워 잠을 청했다.


와니니는 자기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 할 친구들이 있다는것 만으로도 기운이 났다. 마디바의 아이로 돌아갈 순 없지만 외톨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새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문제는 사냥을 배울 나이인 한살 반이 되기도 전에 쫓겨났으니 아직 사냥을 할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초원 어디에도 목숨을 쉽게 내 놓는 상대'는 없었다.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사냥에 서투른 떠돌이들에게도 만만한 사냥감'은 언제든지 많았고 결국 '우연한 행운' 같은 첫 사냥에 성공한다. 그리고 '초원에서 가장 운 좋은 사자들에게나 찾아오는 행운' 같은 두번째 사냥에도 성공한다.


'외톨이' 이자 '떠돌이'였던 와니니는 '영토'나 '먹이'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던 '무투'나 먹이를 가지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수사자에게도 경고했다. 해치거나 빼앗지 말자고.


사냥에 성공도 하고 새로운 무리도 만들고, 예전의 무리였던 말라이카도 다시 만났다. 그러자 사냥을 못해 '쓸모 없던' 와니니도 꿈을 꾸기 시작한다. 언제나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지내는 꿈을. 약해빠진 아이도 자상하게 돌봐주고, 경솔한 아이도 너그럽게 감싸주고, 쓸모없는 아이도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었다.


'혼자 둘수 없다'며 '와니니 무리'라고 칭해준 일행들과 여행의 행선지로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을 정했다. '지금까진 열심히 노력하면서만 살아왔지만 그곳에 가면 해가 지는 시간까지 마음 높고 자고, 마음껏 포효하며 품위있는 동물답게 마음껏 게으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을 상상하며 해가 뜨는 곳으로 쉬지 않고 걸었다.


초원도 그랬다. 어디에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하찮은 사냥감, 바닥을 드러낸 웅덩이, 썩은 나뭇등결, 역겨운 풀, 다치고 지친 떠돌이 사자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껏 와니니를 살려주고 지켜주고 길러주었다.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서로를 돌봐줄 거란 믿음이 있다면 초원을 누리고,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초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와니니는 친구들과 완전한 한 무리가 되었다. 비록 강하거나 용맹하진 않지만 약하고 부족하기에 더욱더 서로가 힘들고 지칠때 서로 도우며 함께 하는 친구들이었다. 초원의 끝에서 함께 돌아온 친구들이었으며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함께할꺼라 믿었다.

때문에 무투의 침략을 감지하고 마디바 할머니를 만나러 다시 돌아가던 길에서도 기꺼이 도와주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마디바를 만난 와니니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는 복종하지 않겠다는 뜻이였다. 그리고 똑바로 말한다. '마디바'의 무리가 아니라 '와니니' 무리가 되었다고.


" 와니니 무리는 앞으로도 잘해나갈거야.

서로를 돌봐 줄 테니까.

그럴거라고 서로 믿으니까. "


비록 무투와 그 아들에 맞서 싸우다 아산테 아저씨를 잃게 되었지만 아저씨는 웃으면서 이 또한 '초원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품위있는 동물답게 마음껏 게으른 삶을 살기를 꿈꿨지만, 품위있는 동물답게 죽은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겠다고 말하며 초원의 왕 아산테는 사자가 이별하는 범에 따라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떠난다.


"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해. "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사자들의 '무리'의 모습은 각기 달랐다.

강한 아이만 살아남겨 곁에 두는 마디바 무리가 있었고, 자립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무리 속에서 다른 무리를 염탐하는 무투무리도 있었고, 약하고 부족하지만 홀로 있음을 경험해 보았기에, 두번다시 홀로 두지 않기 위해서 서로를 보다듬고 도우며 의지하는 와니니 무리가 있었다.

사자의 삶 뿐만이 아니었다. 이 초원 위에 사는 모든 동물들은 다 저마다의 법칙과 생존방식으로 적대적으로, 때로는 친밀하게, 때로는 교류하면서 그렇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벌어진 일에대해선 탓하지 않으며, 도움 받은 것은 갚아주고, 그렇게 공생하다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에겐 다양한 삶이 있고, 각자의 사연만큼 저답게 열심히 살며 다른 모습을 보여줄 뿐 틀린 삶은 없다는 것을 이 초원위의 동물들은 하나같이 말해주고 있다. 같은 것을 그리고 꿈꾸는 무리들과 뜻을 함께 할 뿐, 그 어떤 무리도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었다.

와니니는 와니니 답게, 사자답게, 왕답게 초원을 달릴 뿐이다.

'와니니 무리'들이 푸른 들판을 달리며 함께 사는 용기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책, 『푸른 사자 와니니』 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