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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후지사키 사오리 지음, 이소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평점 :
십대를 사는 건 어렵다. 어느 정도 자랐단 이유로 어른과 비슷한 책임감을 요구받는 동시에 그리고 반대로 어리단 이유로 많은 제약을 받는다. 떠안겨진 책임감에 비해 결정하고 선택할 자유는 턱없이 모자란다. 남들이 깔아놓은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를 의문도 없이 타는 십대가 어디 있겠는가. 의구심을 떨쳐내고 입꾹하는 것만이 생존의 지름길이라니 그저 잊으려 노력하는 수 밖에.
십대엔 붕어빵 반죽 마냥 물러야 살아남는다. 묽으면 묽을수록 어른이 정해놓은 틀에 잘 들어맞는다. 제 고집과 주장이 섞여 질어지면 버림만 받는다.

"어쨌든 쓰키시마는 스무 살이 되어서도 인생 게임의 시작점에 장기 말을 놓아둔 채였다."
여기 버림받은 아이가 있다. 싫은 건 싫다고, 재미없는 건 재미없다고 말하는 쓰키시마는 제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다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고 만다. 퇴원 후에도 위태위태하다. 버림받는 아이 곁을 지키는 친구가 있다. 나쓰코는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우울은 옮는다던데.. 옮겨다니기도 하나보다.
"밴드를 시작한 뒤, 나와 쓰키시마의 관계는 단숨에 변했다. 병을 극복하고 급격히 성장하는 쓰키시마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 사이에 생긴 차이를 나는 좀처럼 소화하지 못했다."
나쓰코가 친구를 챙기는 데 정신이 팔려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 그런 나쓰코를 언제부턴가 쓰키시마가 챙기고 있었다.
"나쓰코가 나랑 똑같은 경치를 봤으면 해."
밴드를 결성하고, 음악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지만 훈훈하지 않다. 답답하고,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날 가장 우울하게 한 건 현대 소설이 던지는 질문, 십대들의 갈등, 고민이 수십년 전 내가 (십대일 때) 했던 고민과 똑같았단 점이다.
"규칙을 지키는 거. 중요한 건 규칙의 의미가 아니야. 규칙을 지키는 데 의미가 있을거야. 학교에서는 그걸 배우는 거겠지."
머리는 귀 밑 12cm. 교복 치마는 무릎 아래 3cm. 하복 안엔 이너를. 구두는 검은색, 굽과 장식없는 앞 코가 둥근 것이어야 한다. 지금은 학기 중에도 머리 염색이 가능할만큼 규칙이 줄어들었다. 그럼 학생들은 자유로워졌을까?
"왜 노력하지 못할까, 왜 금방 포기할까 의아해하면서, 노력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나는 어느새 잊고 말았다. 열심히 하는게 좋다고 그냥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초등학교 졸업 후, 근 삼십년만에 초등학교를 다시 들락날락하고 있다. 처음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습을 보고 추억에 잠겨 행복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학교를 보고 답답해하던 청소년기와 지금의 내 마음이 똑같다. 학교의 주체가 학생인데 주인은 교사다. 교무실은 내가 8살 때나, 내 아이가 8살인 지금이나 그대로 1층에 자리잡고 있다. 난 이게 가장 불만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항의하지 않았고, 세상은 나같은 입꾹들 덕분에 여전히 그대로이다.
"너는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살고 있어?"
나는 이런 질문을 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