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은정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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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후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었다. 독일 땅을 네 나라가 나누어 통치했는데 수도 베를린도 네 나라가 나누어 관리(?)했다. 동독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재를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영양실조 문제가 대두될 정도로 경제가 악화되었다. 

동서로 나뉘었지만 완전히 동독체제에 속해 있지 않았던 동베를린의 거주민들은 동독의 경제가 나아지지 않자 서베를린으로 일을 나갔다. 

물리적인 장벽이 세워지기 전 그러니까 1961년까지도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의 주민들은 큰 어려움없이 왕래했다. 동독은 당연히 이를 마땅치 않아했고, 주민을 여러 방면으로 압박하고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이런 왕래 덕분에 독일은 정치적으로는 분단되었지만 삶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똑같은 분단의 아픔을 가진 한국 국민으로서 신기하다. 서로를 잔인하게 죽일 수 밖에 없었던 한국 전쟁의 원한이 계속 퇴적된 탓인지, 우린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편에서 생각하고 옹호하면 빨갱이라 욕먹는데. 남한과 북한은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책을 읽을수록 우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막함이 밀려왔다. 숙제가 산더미다.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 동서베를린 주민들은 경계를 넘을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이 분단의 고통을 제대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동독은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프롤레타리아 사회의 완성을 꿈꾸던 지식인들이 동독 체제에서 등을 돌리면서 동독체제는 정당성을 상실했다. 젊은 지식인들은 체제개혁운동을 확산시켜 나갔고 시민들의 체제개혁에 대한 요구가 날로 강해졌다. 


독일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남한에선 북한 내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나마 가늘게 이어져 있던 여행,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을 통한 교류마저 끊어진 상태다. 반면, 독일은 장벽을 세운 뒤에도 통행증과 체류허가증을 받으면 동서를 오갈 수 있었다. 우편이 계속 오고 갔고, 철도와 상하수가 이어져 있어 자연스레 협력할 수 밖에 없었다. 브란트 시장의 말대로 동독과 서독의 "공존"은 "대안이 아닌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기회"였다. 북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빌미(?)로 공존해볼 기회를 얻어볼 순 없을까? 
사십여년을 떨어져 지낸 독일도 행정, 교육, 사고방식 등 모든 게 갈등거리였는데 두배 더 오랜 세월 떨어져있었던 남한과 북한은 몇배나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걸까? 

노력이야 하면 된다. 동서, 남북, 사람은 어딜가나 다 다르지 않던가. 나라를 건너가지 않아도, 한두시간 거리만 떨어져도 말투와 성격, 식습관... 다 다르다. 동독과 서독도 통일 전이나 후나 당연히 갈등이 잦았다. 하지만 협상 때마다 둘 모두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 원칙을 고수했다.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는 책의 앞부분에서 잠시 언급되지만 자세한건 중반부 넘어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도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북한은 이렇더라, 저렇더라 이야기하기보다 틀린게 아니라 다르게 봐주는 것.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숙제 아닐까. 

 동독 대변인의 착각과 실수가 독일 통일에 큰 촉매제가 되어주긴 했지만 그 이면엔 수많은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다. 《베를린, 베를린》에는 장벽이 세워지기 전, 2차대전 직후부터 - 통일 이후 현재의 모습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통일 이후 사람들이 갈등하는 모습, 서로 다른 행정체재를 합쳐가는 과정, 교육과정이 달라 생겼던 문제들, 통일 이후에도 지속된 서독과 동독의 임금격차... 수많은 문제 앞에 조금 겁이 나기도 하지만, 독일의 사례를 본보기삼아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 

통일하면 막연히 걱정부터 했다면 일독을 
관심만 있었다면 이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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