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년 전 쯤, 꽃을 식재료로 한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유명 수목원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그 식당의 음식은 모두 초록 풀과 알록달록한 꽃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내 기억으론 비빔밥과 파스타, 피자를 시켰는데 음식이 다 나오고보니 테이블이 정말 꽃천지였다.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안타깝게도 이날의 기억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꽃을 먹는다는 낯선 식감과 맛으로 일행과 나는 꽃은 눈으로 먹는 거란 교훈을 혀에 새겼다. 비빔밥을 고추장 맛으로 삼키며 '그래, 꽃이 아니어도 세상에 먹을 수 있는 건 많으니까.' 괜찮다 서로를 위로했다.

몸에 새긴(?) 교훈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난 꾸준히 꽃을 먹고 있었다. 장미가 들어간 허브차, 말린 국화를 띄운 블렌딩티, 꽃이 올라간 찹쌀전. 꽃가루를 뭉쳐 만든 간식. 아, 유채꽃 나물을 신나게 먹었던 일도 있다.
한국은 외국에 비해 나물요리가 발달해 있다. 외국에서 먹는 풀의 종류는 고작해야 몇십가진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풀의 종류는 이백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보릿고개를 넘으며 눈에 보이는 건 뭐라도 먹어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꽃도 사람 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잎보다 꽃에 비타민과 무기질이 더 많든 말든, 반대로 영양가가 덜 했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꽃을 먹었을 것이다. 그 옛날엔 꽃을 어떻게 조리해서 먹었을까?
"선인들은 꽃수가 놓인 옷과 신발을 신고 꽃이 새겨진 상다리를 가진 상에서 밥을 먹고 매화를 그린다. 밤에는 꽃이 새겨진 율다식을 안주 삼아 도화주를 마시는데 매화가 달빛 그림자를 안고 방안으로 홀연히 들어와 벽에 걸린 국화와 짝을 이룬다."
저자는 한식 + 꽃의 조화를 위해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요리를 즐겨했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정조지>를 참고서로 삼았다. 떡, 죽, 밥에 넣어 먹고 비벼 먹고, 음식 위에 올려 먹었다. 본연의 색을 찾아볼 수 없는 빛 바랜 무채색 옷을 입고 장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채색 집에 앉아 밥을 먹는 평민에게 꽃을 곁들인 밥상은 거의 유일하게 "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조선셰프 서유구의 꽃음식 이야기》는 해석하는 수고를 덜어줌은 물론,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도와준다. 전통음식을 복원하고 현대식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책 뒤에 첨부된) 원문만 읽어봐도 짐작할 수 있다. 한자와 한글이지만 읽어도 해석되지 않는 글자들이 좀처럼 해독되지 않는 암호같았는데 《임원경제지》 <정조지>는 한글이 있기 전에 쓰여진 책인지 한자로 써져 있다. 한 때, 음식 복원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첨부된 원문 몇 장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만 해석할 수 있는 건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ㅠ) 다른 시리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이 책은 시리즈 중 5권이다.) 이 책은 전통 음식 복원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있고 현대식으로 재해석 된 케이크와 피자는 좀 아쉬웠다. 퓨전이나 서양식 요리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책은 꽃을 잘 말리는 것부터 담겨 있어 처음 시도하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꿈에 그리던 유채꽃무침을 해 먹을 수 있다니! 부추꽃은 구할 수만 있다면 꼭 꼭 먹어봐야겠다. 저자는 돼지와 볶았는데 오리고기와 볶아도 궁합이 아주 좋을 것 같아 꼭 먹어보고 싶다. 장아찌도~
꽃피는 봄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