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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ㅣ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는 초로기 치매인 아빠를 8년 째 간병하고 있다. "효자"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조커'와 한 끗 차이라 했다. '착하다'는 것은 내 안의 악을 집 밖으로 내놓지 않는 것일 뿐.(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이렇게 기억하는 건지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
"지킬, 이 불쌍한 친구야. 만약 사탄이 사람의 얼굴로 나타난다면 아마 자네 친구의 얼굴 같았을 걸세."
그를 목격한 사람 모두가 한결같이 그를 '악마의 얼굴'로 묘사한다. 기분 나쁜 외모, 거부감드는 인상, 혐오스럽다 등등...
하지만, 악은 우리 속에 있다.
인간은 선과 악,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세상을 향한 분노, 그릇된 호기심, 갖지 못한 것을 향한 욕구 모두 '악'에 포함된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고, 몸이 '균'과 공생하는 것처럼 우린 '악'과 공존한다. 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건강한 까닭은 지성, 도덕성이라는 면역력이 우릴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인간은 약자 앞에서 면역이 약해진다. 하이드가 밟고 지나간 어린 아이도, 흠씬 두들겨 팬 노인도 사회 속 최약체다. 물론, 저마다 우습게 여기는 존재가 다양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투병중인 부모가 그렇다. 그의 기저귀를 갈며 욕지거리에 머리통을 갈기다가도 제 자식 기저귀를 갈 땐 머릿 속이 행복으로 가득차 콧노래가 나오는게 인간이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악한 나는 정직한 내가 느끼는 죄책감을 잊고 자유로이 살 테고, 정직한 나는 기꺼이 선행을 베풀며 정상을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나. 완전히 타인이 된 사악한 자아의 행동으로 발생할 죄책감과 불명예를 괴로워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지킬은 '스스로 세운 높은 이상에 갇혀 병적인 수치심으로 욕구를 숨긴'채 지냈다.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 하이드를 탄생시킨 그가 맛 본 쾌락은 목숨이 위태해져도 끊을 수 없을만큼 강렬했다. 명예와 쾌락,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지킬의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범죄자와 마찬가지로 지킬 또한 "자신은 잡히지 않을 줄" 알았다. 자신이 모든 상황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을거란 착각, 오만함에서 싹을 틔운 악은 그를 결국 집어삼키고 말았다. 한 번 피어난 악은 꽃을 피우기 전까지 끊임없이 영혼을 갉아먹고, 종기같은 열매를 맺어낸다. 세상 어떤 악도 자연의 섭리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숙주가 죽지 않는 한 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악을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