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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후련하다. 그동안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마음 한구석에 퇴적물처럼 자리 잡고 있었는데 책 한 권으로 한방에 해소되었다.
피해자의 고통 속에서 기쁨이 느껴진다거나, 용서받지 못할 악인에게 공감 가거나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경우처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들을 어떻게, 왜 느껴지는지 《이야기의 탄생》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문학 작품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인물들간의 갈등, 감정이 복잡해지는데 《이야기의 탄생》은 독자가 느끼는 것들을 텍스트로 잘 정리해 놓았다.

동화는 내면의 무서운 자아를 허구의 인물로 바꾸어 준다.(p.153) 내가 공포 장르의 영화와 소설,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겁이 많아서다. 의아한가? 저자의 이야기에 내 경우를 대입해보면, 작품을 통해 객관화시킨 악과 내 안의 선한 자아 사이의 싸움을 대리 경험함으로 악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방법을 천천히 터득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상에 사는 생물 중 가장 가축화되고 사회화된 동물이다. 무리 속에서 공생할 동물을 찾고, 위험한 동물은 멀리하려는 생존 본능 때문에 인과관계에 관심이 많고 타인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 그런 까닭에 우린 '위기-갈등-해소'라는 단순한 플롯이 반복된 단 걸 알면서도 흔들리는 타인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종이의 집>은 9명의 강도가 스페인 조폐국에서 돈을 훔치는(동시에 훔치지 않는) 이야기다. 조폐국을 폐쇄해 인질들을 가두고 경찰과 협상을 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강도들은 돈을 찍어내고 그 돈을 챙겨 사라진다. 리더인 '교수'가 모든 수를 예측, 설계하고 강도들을 훈련했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한 단 하나의 룰이 깨지면서 갈등이 증폭된다. 서로 동등했던 강도들은 권력 다툼에 목숨을 걸고, 인질들은 탈출을 시도하거나 강도의 편이 되며 갈라진다.
있지도 않은 내일의 행복을 꿈꾸며 오늘을 희생하는 강도들의 모습이 우습지만 씁쓸한 동질감이 느껴지고, 인질보다 (도둑이) 더 이타적이고 용감하고 선하기까지 해 그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이들은 도둑인 동시에 혁명가가 된다.
천재이자 완벽주의자인 교수를 포함한 강도들이 살면서 겪은 결핍, 상처가 어떻게 사건에 스며드는지 보다 보면 이 책이 말하는 이야기의 요소, 매력은 결국 우리 안에서 나온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소중히 간직해온 통제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의식 아래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근본적인 극적 질문이 거듭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생황을 바로잡으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야기의 탄생》 저자 윌 스토는 우리가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들여다보는 최종 이유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한 것이라 말한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이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인물의 관점에서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극을 정의한다." (p.143)
이야기의 목표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왜 우울한지 가설을 세우면서, 도덕적 신념을 정당화하면서, 음악이 감동을 주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우리의 자아 감각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전히 통제한다고 믿지만 주변 세계와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형된다. 차이가 있다면 이야기와 달리 인생에서는 우리가 누구인가에 관한 극적 질문이 끝내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p.147,167)

책은 분명 뇌과학을 토대로 이야기에 관해 알려주는 내용인데 묘하게도 최근 지인이 받고 있는 심리치료가 오버랩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이야기와 삶 사이에 등호 = 가 있다. 삶에서 찾을 수 없는 자아를 찾기 위해 누군가는 이야기에 매달리고, 누군가는 의사에게 매달린다. 답을 얻었다 생각하는 순간에도 우린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있으니 결국 자아를 찾는 일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이야기로 경험한다. 뇌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에 동지와 악당을 채워 넣는다. 뇌는 혼란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단순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로 바꾸고 그 중심에 주인공(나)을 위치시킨다. 이때 주인공은 일련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이것이 삶의 플롯이 된다."(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