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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 1 - 왕의 목소리
임정원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금(中禁)은 어성을 대신하고 왕명을 통갈하는 것이 주 업무이나 왕을 가까이 모시는 자로서 비상시에는 호위 무사 역할까지 해야 한다. 왕을 대신해 소리를 내기에 목소리가 좋아야 하며 어심을 흐리지 않도록 외모가 준수해야 한다. 또 왕을 지킬만큼 충심도 무술 실력도 특출나야 한다. 중금이 되면 죽는 날까지 오직 왕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때문에 용안을 마주할 수 있는 직급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리 탐내는 자리는 아니다.

중금 효명은 서고에서 서찰 한 편을 발견한다. 그 서찰에 중금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거기에서 국금이라는 단어를 보았네. 나라 국(國), 금할 금(禁). 그러니까 책에는 기록할 수 없는 중요한 기록을 중금을 통해 남긴다는 것이야."(p.45)
중금으로 뽑힌 사람 중 딱 한 사람만이 국금이 될 수 있다. 국금은 왕이 남긴 비밀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자이다. 재운은 국금이 되고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효명의 말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정신이 아득해지지만 절대 들켜선 안된다.
재운은 놀란 눈으로 어둠 속에서 용안을 올려다보았다.
"이재운 중금, 국금이 되어라."
p.51
죽을 운명이었던 재운은 어렵게 목숨을 부지한다. 하나뿐이었던 벗인 효명이 대신 목숨을 내놓았던 덕이었다. 재운은 국금을 지키려는 이들의 도움으로 심마니 이용술이 되어 반도의 남쪽 끄트머리 독골이란 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된다. 딱 십년 만 버티면 된다. 왕이 승하하고 십년이 지나면 선왕의 말을 세상에 전하고 국금으로서의 역할도 끝이 난다.
재운은 아내, 아들과 평범하고 조용히 지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미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눈치 채고 있었다. 사고가 터지고 재운이 위험해지자 마을 사람들이 나서 도우려 하지만 재운은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아들 지견은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궁으로 간다. 아무것도 모른채. 선대 임금이 국금에게 남긴 말이 무엇이었기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죽어야 하는걸까. 이 질문에 소설은 쉽게 답을 내어주지 않는다.

지견은 일곱살에 혼자가 되었지만 사리분별이 빠르고 부지런하며 적극적이었다. 먼 길을 가는데 걸음이 느린 아이기 때문에 새벽 일찍 먼저 출발할만큼. 그의 영특함을 일찍 눈치 챈 도경술은 한 달에 한 번 책 읽는 모임에 아들이 아닌 지견을 데리고 간다. 복면을 써 서로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책을 읽는 모임에서 지견은 한 여인에게 반한다. 모임을 주최하는 음 선생의 권유로 지견과 재인은 <춘향전>(1권 후반)을 함께 읽는다.
지견이 궐에 뜻을 품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즈음엔 허균의 <호민론>과 <유재론>을 읽는다. 역모로 고변되어 거열형(=능지처참)을 당한 허균은 <호민론>을 통해 백성을 두려워해야한다 말하였고 <유재론>은 인재 등용에 신분 차별이 없어야 한다며 기득권에 맞서 적이 많았다.(2권 p.11-13) 소설은 임금의 목소리인 중금을 이용해 역으로 임금에게 묻는다. 군주란 무엇인가. 누가 이 땅의 주인인가.
<중금 1,2>는 조선시대 제20대 왕 경종이 임금으로 있던 1720~1724년 즈음을 시작으로 이복동생인 연잉군이 영조가 되고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던 순간(1762년)을 지나 이산이 임금이 되기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잉군이던 시절 영조는 역모로 몰려 죽기 직전까지 문초를 당했다. 경종이 죽고 임금이 되었지만 경종에게 게와 감을 먹여 죽였다는 소문에 평생 시달려야 했다. (아들도 뒤주에 가둬 죽인 사람이 형은 못죽일까.)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끊임없이 나오는 건 사람들이 그만큼 진실을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그 호기심에 보답하듯 작품이 쏟아지는데 <중금>은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과는 또 다른 상상을 펼쳐낸다. 말많고 탈많은 시대의 임금을 고른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2권 382쪽
<중금 1>은 인물을 조명하는게 강점이다. 소설은 드라마와 달리 인물 하나하나를 조명할 수 있단 점이 큰 매력인데 <중금 1>은 그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서사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라 클라이막스만큼 놀라운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허투로 흘려 보내는 인물이 없다. 덕분에 모두가 주연이자 조연이었다. (이 점 때문에 드라마가 소설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서사만 놓고 보자면 1권은 '재밌네!'정도인데 <중금 2>는 서사가 휘몰아친다. '이게 끝이겠지?', '이제 진짜 끝이겠지?', '설마 끝이겠지.'싶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드라마로 어떻게 제작될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어떤 취향인지는 중요치않다. 남모를 사연을 품은 인물들의 가슴아픈 삶으로 가득한 1권도, 역동적인 이야기가 숨쉴 틈 없이 쏟아지는 2권도 순식간에 읽게 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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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은 고려의 7대 왕 목종 때 처음 역사에 기록되었고 ... 「세종실록」에 이르면 중금에 대해 어전에서 왕의 음성(어성)을 대신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특별히 용모가 단정하고 목소리가 좋은 자를 선발했다고 자격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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