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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ㅣ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천위안 지음, 이정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1월
평점 :
현대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 열전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주목된 인물은 조조이다.
삼국 역사의 기여도를 따지자면 삼국의 창시자인 조조, 손권, 유비의 기여도가 가장 크다. 이 세 사람이 세운 삼국의 영토 크기 역시 같은 순서이다. (하지만 역사적 영향력은 관우, 제갈량, 조조 순이다.) 조조를 먼저 다루지 않고 다른 인물들을 얘기할 수 없기에 가장 먼저 나온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삼국지>에서는 조조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지도자로 그린다. 군의 사기가 떨어지거나 갈등이 생길 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사기 진작을 도모했고, 보리가 무르익은 계절에 출정했을 땐 보리밭을 밟지 말고 백성들을 약탈하지 말라 명령했다. 이처럼 조조는 안으로는 내 사람들을 챙기고 밖으로는 백성을 위하는 이상적인 리더였다.

"아까 매실이 푸르게 열린 것을 보니 작년에 장수를 정벌하러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소. 행군 중에 물이 모자라 다들 목이 말랐는데 내가 꾀를 내어 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저 앞에 매실 숲이 있다'라고 말했죠. 그걸 들은 군사들의 입에 침이 괴어 갈증을 면할 수가 있었소. 그런데 오늘 매실을 보니 술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소. 그래서 현덕공을 불렀소이다."
망매지갈(望梅止渴) 고사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매실을 생각하고 침을 흘리는 것은 바로 조건반사원리이다. 러시아 생리학자 파블로프가 개를 이용한 실험으로 이 개념을 밝혀내 1904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천오백년 전 인물인 조조는 일상적인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이미 조건반사의 원리를 터득한 것이다.
p.246

내가 <삼국지>를 처음 읽었던 이십년 전만해도 조조는 영웅이자 호걸이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듣던 소문과 너무 다른 인물에 혼란스러웠고 나는 결국 책을 읽다 말았다. 어른들의 영웅은 이런 사람이란 말인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 반항심이 추가되었..)
지금은 조조를 간웅(간사한 꾀가 많은 영웅)이며 역신으로도 평가한다. 나는 이런 솔직한 평이 좋다. 그리고 공감한다. <삼국지>가 포장해 놓은 인물에 딴지를 걸고 솔직히 까놓고 얘기한다는 면에서 책을 읽을수록 구미가 당겼다. 저자 천위안은 역사를 고증하고 당대를 이해하는데 심리학을 이용한다. 인물을 심리학으로 분석해 내용이 참신하다.
"경이 한번 쏘아보시오."
그러자 조조는 헌제에게 보궁과 금촉 화살을 달라고 했다.(헌제는 왕이며 보궁과 금촉 화살은 왕만 쓰는 것이었다.) 헌제가 거절하지 못하고 활과 화살을 주자 조조는 단번에 사슴의 등을 꿰뚫어버렸다. 신하들은 기뻐하며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쳤다. 이 때 조조가 말을 몰아 헌제 앞으로 치고 나가더니 손을 들어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러고는 천자의 보궁을 허리에 차고 돌려주지 않았다. 주위에 있던 모두가 이 모습을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p.220-223 축약
조조는 왕을 수하에 두고 호랑이(유비)를 묶어둘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거기다 그 권력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냈다. 무례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다수'를 만들어 낸 것은 일종의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방관자효과bystander effect'라고 정의했다."(p.222) 방관자 효과는 지켜보는 이가 많을수록 아무도 행동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조조의 이런 행동은 사실 권력에 도취되어 즉흥적으로 벌인 게 아니었다. 반대로 치밀하게 계획된 일이었다. 누구를 경계해야할지, 누가 내게 충복한지 가려내려한 것이었다. 결국 이 일로 왕도 정신을 차리고(? 결국 밀리지만..) 다른 신하들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이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결국 조조의 목을 조른다.

사실 조조에게 이런 위기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 큰 일을 도모한다. 아끼던 수하의 목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쳐내는 조조를 보며 너무 많은 죽음을 겪으며 남의 목숨을 하찮게 생각는데 그치지 않고 그게 자신을 대하고, 일을 결정하는데까지 영향을 끼친게 아닐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조조는 매우 강한 심리면역력을 타고 났다." 한편으로는 '심리면역 망각'으로 볼 수도 있는데 "좌절을 겪었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빨리 적응하고 잘 극복해내"려는 것은 인성이 부족하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의 본능이다. 조조는 "이 같은 선천적인 특질 덕분에 그는 유형과 강도를 막론하고 모든 종류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났고 아무리 나쁜 일이 벌어져도 오랫동안 끙끙 앓지 않았다."(p.87)
아버지를 잃고도 천하를 도모하는데 집중했을 정도이니 가히 대단한 인물이긴 하다. 일생을 통틀어 수많은 실패를 겪고, 죽을 고비를 수도없이 넘지만 용기를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어떤 논란이 있든, 좋든 싫든 후대에도 계속 화자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