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면 자기조절력부터 - 내 아이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시형 지음 / 지식플러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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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조절력 함양 육아 지침서
부모라면
자기조절력부터

 

 

처음 이 책 제목을 읽곤 부모의 자기조절력에 관한 이야기를 쓴 책인줄 알았습니다. ㅎㅎ
하지만 제 예상과 달리 이 책은 수십년간 이상적 육아로 여겨져 온 허용적 애정과잉 양육의 착오를 뇌과학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책이었어요.

애정과잉, 아이 중심 양육이 어떻게 자기조절력 결핍을 만들었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며, 부모로써 어떻게 아이의 뇌를 발달 시켜야 하는지, 어떻게 유지시켜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려줍니다.

 

저자 이름을 보고 긴가민가 했는데 저희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하고 있는 '세로토닌 키즈 프로그램'을 만드신 분이셨어요.
올해로 2년째 어린이집에서 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늘 알던 기초 생활, 그러니까 아침 체조, 밥을 꼭꼭 씹어 먹는 식습관, 마음습관 등 어려서 우리 어렸을 적에 배웠던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바로잡아 세로토닌을 활성화시키는 프로그램이에요.

저자는
배냇머리 교육을 중요시 합니다.

배냇머리 교육은 조기교육과 다릅니다.
그래도 너무 이르다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까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몸에 익히는 지가 왜 중요할까요?

자기조절 능력이 제대로 생기려면(=자기조절력 중추가 잘 발달하려면) 적어도 세 돌이 되기 전까지 뇌의 전전두엽, 특히 안와전두피질(OFC)이 발달되어 감각, 감정, 이성 간에 제대로 된 연결회로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말이 어려웠나요? 그럼 이렇게 설명해 볼께요. 

'저 아이가 싫다. 때릴까?' 아이들 머리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생각이죠.
싫단 감정은 편도체에서 발생합니다. 편도체가 흥분하면 '때리자'는 반응이 일어나요.
이 때 조절중추가 나서서 '싫다고 때려?' 질문하며 '맞으면 아플텐데..'하는 감정이입현상을 일으킵니다.
전두내측은 그 아이의 무서워하는 표정이나 주위사람들의 표정을 띄워주며 뇌 속에선 '폭행은 안된다'는 공감대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OFC는 편도체의 폭주를 막고 감정과 이성을 균형있게 조화시키는 엄청난 역할을 합니다.


자기조절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공격적이고, 감정이입을 할 줄 몰라 공감력이 약하고, 문제 해결력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흔히 눈치없다 말하는 (표정 인지) 비언어적 대화 능력과 참고 기다리는 능력이 부족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해 새로운 환경 적응에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무엇보다 OFC는 임계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3세 이후의 발달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배냇머리교육이 필요한 건데요. 책에서 말한 자기조절력키우는 방법들이 세로토닌 프로그램과 비슷한게 많았어요. 그 점에서 보고 겪은 부모로써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워낙 기초적인 것들이라 정말 이 교육이 도움이 되는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걸 굳이 돈주고 배워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구요.

반년까진 아침마다 체조하는거 말곤 아이가 영어나 중국어처럼 뭘 배워와서 제 앞에서 쫑알쫑알 이야기하는게 아니니 눈에 보이는게 없었는데 반년이 지나고 1년쯤 되니 아이가 배운걸 집에와서 이야기하며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더라구요. 제게 알려주기도 하구요. ㅎㅎ

되돌아보니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눈덩이처럼 굴러서 오늘의 아이를 빚어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직 다져지는 중이고 갈길이 멀었지만.. OFC가 잘 발달하지 못한 아이는 아니구나, 잘 발달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사실, 유치원 시기는 일생의 가장 조용하고 말 잘 듣는 모자간의 허니문 시기로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초등학교 입학해서라고 하는데요. '입학'이 주는 엄청난 압박감, 과제, 스트레스가 시너지를 일으켜 아이가 폭발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게 되는데 이를 '초등1 문제 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럼 우리 아이들의 OFC가 잘 발달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0~3세까지는 자기조절에 필요한 신경 연결망이 완성됩니다. 이 시기에 OFC가 잘 발달하기 위해선 1.엄마와의 애착과 신뢰감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2. 애착과 신뢰감의 바탕 위에 적절한 통제와 제한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은 방임학대로 인한 OFC 발달 미숙이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아이 중심의 애정 양육으로 인한 조절 중추 발달이 미숙한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아이의 욕구가 100% 충족되면서 아이는 참고 기다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억제하는 조절 중추가 발달하지 않는다는 거죠.

반대로 3세까지 자기통제용 회로가 잘 발달되었다 해도 아이가 이 후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응용 발전시키지 않으면 뇌는 회로를 소멸해 버리니 육아란 정말 고비 넘어 고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3세까지 기초 회로인 하드웨어가 완성되고 나면 이후부터 6세까지, 길게는 사춘기의 재성장기까지 우린 소프트웨어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3~6세까지는 ① 자기조절력, ② 사회성, ③ 생활습이 균형잡힌 트라이앵글을 이루며 발달해야 합니다.

3세까지가 자기통제력 발달을 위한 부모의 타율적 강제 훈련이었다면 이후 6세까지의 생활은 스스로 깨우치는 자율적 훈련이 필요한 시기로 부모가 해 줄수 있는 것이 적어집니다. 그동안 부모에게 배운 것을 제 스스로 사회에서 부딪치며 다져나가는 기특한 시기 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길 나누면 좋겠지만 신간인지라 여기까지 나누는게 좋을 듯 싶네요. ;)

저자는 애정과잉이 방임학대형 못지 않게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여, 애정만이 육아의 답이라 여기는 분들께선 읽고 버럭 화가 날찌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무한사랑, 무한애정 육아가 유행이고 대세인 현재에 이 책이 브레이크를 거는 제동장치가 되어 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첫째에겐 모질만큼 강하게 굴면서 둘째에겐 한없이 약한 지킬앤하이드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제게도 마음을, 육아를 한번 더 다잡아 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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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 시작 노트 - 쉽게 따라 쓰며 배우는 손글씨 수업
이정원 지음 / 비타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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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또 하나 더 늘릴 심산인가 봅니다. ㅎㅎ

 

이건 또 얼마나 갈런지...!


제 마음 속 까칠이와 버럭이가 폭풍잔소리를 해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긍정이와 함께 붓펜이랑 워터브러시까지 샀습니다. 힛 :)

 

사실 아이랑 함께 있으면서 할 수 있는 힐링은 없을까. 꼭 아이가 (등원하고) 없어야만 내 자아를 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 요 몇주 머릿 속에 맴돌았어요.

 

병원을 자주 다니다보니 엄마가 24시간 케어해야 하는, 밥 한술 제 스스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저 엄마들은 어떻게 지낼까, 그냥 견디고 버티기만 해도 살 수 있을까. (죄송하지만 솔직히) 궁금했어요.

 

동시에 아이를 돌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거나 다른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그런게 있긴 할까? 아픈 아이 옆에 두고 스트레스를 푸는 게.. 사치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많던 차에 책 한권이 제게 왔어요.

 

이왕 길어진 서두에 몇자 더 추가하자면,
이 책으로 글씨공부하는 엄마 덕분에 글씨쓰기 공부해야할 다섯살 첫째와도, 색연필로 부지런히 손을 쓰는 둘째와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갖게 됐어요- 앉았다하면 30분은 거뜬히 함께! 즐겁게! 놀 수 있어 너무 좋더라구요. ㅎㅎ
(낙서로 인증샷찍기가 불가능하단게 단점이 될 순 있겠네요. ㅎ)

 

미리 고백하자면 전 악필입니다.
어려선 연필에 지우개같은 고무를 끼워서 글씨연습도 참 많이 했는데 아무리 정성껏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써도 글씨가 너~~~무 못생겼서 도저히 제 머리론 이해가 되질 않는 필체였어요. ㅎㅎㅎ

 

중학교 입학해서 사귄 친구들이 얼마나 글씨를 예쁘게 쓰고 필기를 야무지게 잘하던지, 깔끔하게 정리된 노트에 홀딱 반해 1년 내내 노트를 빌려다 따라 썼어요. 그 덕분에 중2땐 서기를 할 수 있었지요~ :)

 

노력하면 되는구나~라는 깨달음에 덤으로 서기까지 하게 된 귀한 경험덕분에 글씨를 쓰는 것에 대한 애정이 늘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어요.

 

언젠간 꼭 해보고 싶었던 캘리그라피♡
정복할 수 있을까요?!

 

펜 종류부터, 직선쓰기(길이, 굵기, 사선연습), 곡선쓰기(기본 획, 자음, 모음), 필압 연습, 획 줄이기 연습을 마치고 나면 다양한 효과를 활용한 캘리그라피와 손그림, 오브제 활용하는 것까지 정말 다양하더라구요.

전 그 중에 특히 찜해 둔게 있는데요. 책에 크리스마스 카드에 쓰기 좋은 캘리그라피가 몇 개 있어서 집중 연습 중이에요.  크리스마스에 멋지게 써서 카드돌리기를 목표!!!로 정하고 열심히 쓰고 있는데 올해는 신세진 분들이 많아 꼭 손카드로 감사 인사 드리고 싶네요~

 

서점에서 다른 캘리그라피 책도 여러권 봤는데요.

노트처럼 연습용으로 딱 나온 책과 비교하자면 조금 적은 양일 수 있겠지만 요 책은 서체가 다양한게 강점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책으로 하는 캘리그라피의 단점이 따라하기에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보니 어떻게 따라 써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단 건데요. 요 책엔 어떤 도구를 이용해 어떻게 쓰는게 좋을 지도 자세히 알려 줍니다.

 

예를 들자면, "같은 크기로 쓰는 대신 누르는 힘을 조절하세요"라던가 "한 글자 안에서 굵은 획과 얇은 획을 적절히 배분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글씨의 밸런스가 살아나요."라구요.

 


나름 중학생 때 서기도 해봤으니 조금만 연습하면 되겠지 했지만 아직은 캘리그라피가 쉽지 않네요~
하긴, 이제 일주일 됐는걸요... ㅎㅎ


그래도 이게 뭐라고 참 재밌습니다. 워터브러시는 솔이 오염되는게 마음아파 자꾸 아끼게 되니 붓펜이 대신 열일 중이에요.

 

붓펜이 이리 섬세한 도구였는지 처음 알아서일까요.
꺾이는 거에 따라, 힘 주기에 따라 얼마나 글씨가 달라지는지 쓸 수록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사람들이 이래서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하는구나 몸소 느끼고 있어요. ㅎㅎ
당분간은 요 녀석으로 스트레스 풀지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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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 대한 최고의 질문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마이크임팩트 / 마이크임팩트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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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는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빅 퀘스천의 세번째 강연을 엮은 책입니다.
주제는 제목 그대로 '상실의 시대'.

모든 것이 풍족하다 못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우린 늘 무언가에 갈증을 느낍니다. 지식에 목마르고, 삶의 여유는 사라진지 오래이고, 모자란 시간탓에 늘 하루가 촉박하죠.

우리가 늘 무언가가 부족하다 느낀단건 바꾸어 말하면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무언갈 찾고 있단 신호일꺼라 생각이 듭니다. 

내 주인이 무언갈 잃어버렸는데 너무 바빠 챙기지 못하니 몸이 신호를 보내는거 아닐까요?
모든 것이 풍족한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부족하단 걸까요?

 

 

정여울 작가는 자아를 찾으려면 먼저 내 그림자와 대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아(ego,욕망과 의지의 산물)가 아닌 자기(自己,self,무의식에 잠재된 나 자신)를 바라보아야 한단 뜻인데요.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편집되고 윤색된 내 모습의 페르소나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고, 보여줄 수 없는, 보여준 적 없는 나의 진짜 모습, 내 그림자를 바라 보아야 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두려워 할 것 없이 나의 아킬레스건,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나의 단점을 떠올려 보면 될거에요.
굳이 왜 아픈 곳을 들 쑤셔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 그림자 안에 나를 지탱해 온 뿌리 깊은 삶의 진실성이 숨어있다고 말합니다.  

 

 

스페인을 여행 중이던 정여울 작가는 축제 기간 중이었지만 다른 어떤 장면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노는 평범한 모습이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데요. 아이들이 칼싸움하며 노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는데요. 작가의 이야길 들어보니 어렸을 적 아픈 기억이 있었더라구요.

이렇게 나도 모르게 방심한 순간 마주치게 되는 내 옛 상처, 기억 속에서 발견한 나의 그림자는 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까요.

그건 아마 우리 마음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문명은 날이 갈수록 더 빨라지는데 우리 마음의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는거죠. 그래서 주지훈처럼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되는거 아닐까 싶어요. (이 분위기에 땍뱀은 너무 안어울리나요?ㅎㅎ)

내 안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 다움을 내 스스로 완성해 나갈 수 있을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휘둘려 세상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말거에요.

사람들은 어떻게 입고 다니지?(Mode)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지?(Opinion)
시장에 새로 나온 게 뭐지?(Market)

MOM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세가지 경향을 대변하는 Mode, Opinion, Market의 첫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에요.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으면 중요한 걸 놓치고 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어 혼란스러워 집니다.

남들이 쫓는 것 중에 내게 없는 게 뭐지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기 급급한 모습으로 삶을 살다간 결국 남는게 없게 될거에요. 그렇다고 상실의 시대란 지금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세계에 부여할 수 있는 능동적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여유공간이 생긴만큼 이 공간을 어떻게 채워나갈 진 결국 우리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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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 - 세계 최고의 지성 148명에게 물었다
존 브록만 엮음, 이충호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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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엣지>라고 들어 보셨나요~~?
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웹사이트"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웹사이트치곤 다소 과해 보이는 칭찬을 받는 '엣지'는 1981년에 만들어진 리얼리티 클럽이 모태인 꽤 오래된 녀석이더라구요.(www.edge.org)

 

뉴욕이나 맨하튼에서 열리는 예술가들이 모이는 모임이나 종교인들이 모이는 사교모임들과는 조금 다르게 '엣지'는 진화생물학, 유전학, 컴퓨터과학, 신경생리학, 심리학, 우주론, 물리학같은 과학분야의 개념들을 이야기 하는 곳이에요. (엣지의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모두 과학자는 아니지만 책 속의 글로 봐선 과학자라 해도 손색없는! 난이도를 보여주더라구요. )
엣지는 해마다 질문을 하나 선정해서 회원들이 그 질문에 답을 다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는 2012년의 질문에 대한 멤버들의 답변을 묶어 놓은 책이에요.

질문은 바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은 무엇인가?"

위 질문에 대한 명인들의 답이 궁금해 책을 읽겠다 마음먹었지만, 서문에서부터 턱 걸렸어요.

과학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단순한 원리 몇 개로 이뤄진 어떤 이론이 심오한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줄 때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설명은 '아름답다'거나 '우아하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적 예로는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들의 복잡한 운동을 단순한 타원으로 설명한 것이나, 닐스 보어가 원소 주기율표를 전자껍질로 설명한 것,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이중 나선으로 유전자 복제를 설명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모두 엣지 회원인진 모르겠지만) 답을 한 분들 중 워낙 유명한 분들이 많아서 그 분들의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이었어요.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똑똑한 사람들의 생각이 말이지요. ㅎㅎ

답은 겹치는 것도 있었지만 정말 다양했어요.

가장 많이 언급된 건 '다윈'이었어요. 그 다음으론 '단순함'이었어요. 그 외에도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프톨레마이오스(우주의 이치를 발견한 그리스인)같은 인물과 개인, 생명, 뇌, DNA, 구, 우주, 군론, 후성유전학, 판구조론, 기준좌표계(뇌리에 남을만큼 정말 독특한!), 양자론, 실재론, 원자, 힉스 매커니즘(전자 따위의 기본 입자들이 어떻게 질량을 갖는지), 케이지패턴(제어된 우연성), 오컴의 면도날과 대사증후군까지-

다양한 답만큼 읽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사실 쉽지많은 않았음을 고백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과학이란 분야와 그들의 직업적 특수성이 여실히 담긴 함축된 글(위 질문의 답에 단순함을 꼽았으니 짐작이 되실런지..)로 인해 처음엔 눈따로 머리따로 이해따로 책에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버벅거렸는지 몰라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주문에 걸린 듯 묘하게 빨려들기 시작했어요.

"아주 작은 것"이라고 답한 물리학자 제레미 번스타인의 이야기입니다.

20세기로 넘어올 무렵 플랑크는 작용 양자 개념을 도입하면서 이것이 새로운 자연 단위들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플랑크 시간은 플랑크 상수의 제곱근에다 중력 상수를 곱한 뒤 광속의 5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시간 단위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시간'일까?

그는 이를 측정할 시계를 만들려 시도했다. 그는 양자 불확실성을 사용해 그것이 스스로 만들어낸 블랙홀에 잡아먹히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측정은 불가능하다. 플랑크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혹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플랑크 시간이 심오하고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합니다. ㅎㅎ

"태양은 왜 아직도 빛날까?"
바트 코스코는 태양은 왜 불처럼 타버리지 않고 아직도 빛이 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태양은 태양 안에서 열핵 수소폭탄 폭발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수소폭탄 재료 물질이 아~~주 많기 때문에 빛이 납니다.

하지만 결국 언젠간 수십억년쯤 뒤엔 모두 소멸될거에요.

그럼 우린 어떻게 될까요? 수십억년 뒤엔 태양없이 사는 법을 과학자들이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걱정마세요~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변해 지구를 삼킬 때쯤엔 우주의 모든 별도 다 타거나 폭발해 없어지고 우주는 절대 영도에 아주 캄캄한 암흑 천지일 뿐일테니까요. 인류에게 '종말'을 설명하는 만큼 바트 코스코는 이 질문이 더할 나위 없이 심오하고 아름다운 설명이라고 말합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
하늘은 왜 파랄까?
모든 어린이가 한번쯤 묻는 이 질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뉴턴, 케플러, 데카르트, 아인슈타인까지 대부분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던졌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에는 색이 없는데, 어떻게 대기에는 색이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가까이 있는 공기가 투명하고 하늘에 있는 깊은 공기가 파란 이유는, 얕은 물은 투명하지만 깊은 물이 검어 보이는 것과 같다고 했어요.(아이에게 써먹어 보고 싶을 만큼 문장이 멋지지 않나요?ㅎ)

하지만 공기가 왜 '파란색'인지는 한참 뒤에서야 밝혀졌는데요. 하늘이 파란 이유는 공기를 이루는 기체 분자들이 파란색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어요. 공기 중의 기체 분자들이 상호작용하여 스펙트럼 중 파란빛이 더 많이 산란되어 우리 눈에 도달하고, 우리 눈은 파란색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하늘이 파랗게 보였던거죠.

이런 사소한 듯 보이는 질문에 가시 스펙트럼의 색들, 빛의 파동설, 햇빛이 대기에 입사하는 각도, 산란의 수학, 질소와 산소 분자의 크기, 심지어 사람의 눈이 색을 지각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의 많은 분야가 동원되니 아이의 질문이라고 함부로 가볍게 여겨선 안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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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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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해도 정말 넘나 까칠한 분의 책에 딱 걸려 몇일을 옴싹달싹 하지 못했어요!
빨리 읽고 해치웠으면(?) 좋겠는데 어찌나 말투가 거슬리는지, 거기다 찔리는 말은 또 왜이리도 많은건지 부정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오묘한 글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세상에... 2~3년 아니 최근 5년 내 이렇게 까칠하고 날선 글이 가득한 책은 읽어보질 못한거 같아요.
얼마나 까칠한 분인지 일단 봐주세요~~~

 이 책을 쓴 저자는 일본 철학자이자 칸트 전문가인 나카지마 요시미치입니다. 그는 젊었을 적부터 니체를 혐오했다며 니체의 쩌렁쩌렁한 외침, 영원회귀·운명애·초인 등의 과장된 이념 제시, 눈물을 머금은 자기 긍정, 거리낌 없는 타인 공격등은 몹시도 볼썽사납고 미련했으며 촌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니체에 관한 책을 쓴 이유는 일본의 젊은이들 때문인 듯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착한 사람은 니체적 의미의 약자를 뜻합니다. 니체적 의미의 약자는 크게 두가지로 반동적 약자와 신형약자로 구분됩니다.

'반동적 약자'는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인정하지 않고 약함을 착함으로 정당화하는 사람들입니다. 싸워야 할 때 싸울 줄 모르고, 자유가 주어져도 자율적이지 못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줄 모르는 무력한 존재이지만 강자의 행위와 가치에 대해서만은 움찔! 반동합니다. 이들은 자신은 희생자이고 피해자이며, 나와 반대로 좋은 것을 누리는 사람은 고통을 짊어지지 않았으므로 옳지 않는 자라 우깁니다.  

'신형 약자'반동적 약자의 변종으로, 반동적 약자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강자를 증오하고 반동을 보이지만, 신형 약자는 반동의 힘마저 없는 철저하게 무기력한 상태의 약자를 지칭합니다. 일본에서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인 히키코모리와 돈과 출세는 물론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사토리 세대가 여기 포함됩니다. 사회적 성숙도가 몹시 낮아 약자 특유의 둔감함이나 오만함에 안주하기는 커녕 자신이 옳다고는 생각지도 못하며, 남을 책망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이에게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사람이 착한 사람일까요?

 

"그들(착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오로지 단 한가지를 바란다.
바로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에게나 먼저 친절을 베푼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착한 사람들은 남에게 고통받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모두에게 친절을 베풉니다. 누구에게도 상처받기 싫으므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하고, 누구에게도 비판받기 싫으므로 누구도 비판하려 하지 않습니다. 불쾌해지고 싶지도 않으므로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죠.

 

"선량한 시민의 몸속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불투명한 침전물이 쌓인다.
그것은 단단한 덩어리가 되어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문제를 문제로 느끼지 못하게 한다. "

 

우린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신념,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는 사회 모두가 모두에게 친절한 따분하기 짝이 없는 사회를 만들 것이 아니라, 명백한 잘못 앞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타인과 부딪칠 지언정 당당히 맛서는 강자가 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안전을 바라면서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강자의 의무라고만 여기고 있진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날선 글이 마음에 걸렸던건 어쩌면 나도 '약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스스로를 지키기도 벅찬 존재라고 생각했고 타인에게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하지만 생각없이 대다수의 편에 서거나 착한 사람 논리를 내세우며 권력자의 편에 붙진 않았으니 제게도 강자가 될 가능성이 조금은 있는거겠죠?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신변의 위협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한 베드로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달아난다. 도망가는 발걸음은 또 어찌나 빠른지 경악할 정도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을 성싶으면 진리든 정의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쉽게 집어던지고 자신의 생명 보전에만 매달린다. "

 

하지만, 이렇게 강하고 거칠게 말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또 한편으론 이렇게 해야만 깨어질 수 있는걸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이 책이 제겐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백만엔이 든 가방을 전철 안에 두고 내렸다면 그 남자가 잘못한 것이다. 버스를 탔는데 급커브에서 나자빠져 뇌진탕으로 죽었다면 그 노인이 잘못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놀다가 벨트에 끼여 들어가 큰 상처를 입었다면 그 아이가 잘못한 것이다. 아무 확인도 없이 전화 상대를 아들이라고 믿고 거액을 이체시켰다면 그 어머니가 잘못한 것이다."

 

이런 말도 서슴없이 하니 혼란스러울만 하죠?

 

 

 

"바그너 가는 그 당시 이미 니체에게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 자리에 없었던 친구 니체는 그 이후 '대학생 안젤무스'라고 불리는 처지가 되었다. 이 이름에는 니체를 비웃음의 재료로 삼는 불명예스러운 의미가 숨겨져 있다. 모든 모서리, 모든 가장자리에 부딪혀버리는 서툰 사람, 짜증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분명 니체를 말하는건데 이 글을 읽고 딱 저자가 이런 사람(=니체)같다 느꼈어요. 아이러니하죠. 자기가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을 똑 닮은 저자를 보니 니체가 자기 내면에 있던 동정심, 약함, 선량함을 싫어했던 것처럼, 저자도 자기 내면에 있던 착한 사람, 약자를 내쫓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글은 신중하게 써야 하나 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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