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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평점 :
까칠해도 정말 넘나 까칠한 분의 책에 딱 걸려 몇일을 옴싹달싹 하지 못했어요!
빨리 읽고 해치웠으면(?) 좋겠는데 어찌나 말투가 거슬리는지, 거기다 찔리는 말은 또 왜이리도
많은건지 부정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오묘한 글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세상에... 2~3년 아니 최근 5년 내 이렇게 까칠하고 날선 글이 가득한 책은 읽어보질 못한거
같아요.
얼마나 까칠한 분인지 일단 봐주세요~~~

이 책을 쓴 저자는 일본 철학자이자 칸트 전문가인 나카지마
요시미치입니다. 그는 젊었을 적부터 니체를 혐오했다며 니체의 쩌렁쩌렁한 외침, 영원회귀·운명애·초인 등의 과장된 이념 제시, 눈물을 머금은 자기 긍정,
거리낌 없는 타인 공격등은 몹시도 볼썽사납고 미련했으며 촌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니체에 관한 책을 쓴 이유는 일본의 젊은이들 때문인 듯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착한 사람은 니체적
의미의 약자를 뜻합니다.
니체적 의미의 약자는 크게 두가지로 반동적 약자와 신형약자로
구분됩니다.
'반동적 약자'는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인정하지 않고 약함을 착함으로 정당화하는 사람들입니다. 싸워야 할 때
싸울 줄 모르고, 자유가 주어져도 자율적이지 못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줄 모르는 무력한 존재이지만 강자의 행위와 가치에 대해서만은 움찔!
반동합니다. 이들은 자신은 희생자이고 피해자이며, 나와 반대로 좋은 것을 누리는 사람은 고통을 짊어지지 않았으므로 옳지 않는 자라
우깁니다.
'신형 약자'로
반동적 약자의
변종으로, 반동적
약자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강자를 증오하고 반동을 보이지만, 신형 약자는 반동의 힘마저 없는 철저하게 무기력한 상태의
약자를 지칭합니다. 일본에서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인 히키코모리와 돈과
출세는 물론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사토리 세대가 여기 포함됩니다. 사회적 성숙도가 몹시 낮아 약자 특유의 둔감함이나 오만함에 안주하기는
커녕 자신이 옳다고는 생각지도 못하며, 남을 책망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이에게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사람이 착한
사람일까요?

"그들(착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오로지 단 한가지를
바란다.
바로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에게나 먼저 친절을
베푼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착한 사람들은
남에게 고통받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모두에게 친절을 베풉니다. 누구에게도 상처받기 싫으므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하고, 누구에게도
비판받기 싫으므로 누구도 비판하려 하지 않습니다. 불쾌해지고 싶지도 않으므로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죠.
"선량한 시민의 몸속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불투명한 침전물이 쌓인다.
그것은 단단한 덩어리가 되어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문제를 문제로 느끼지 못하게 한다. "
우린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신념,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는 사회 모두가 모두에게 친절한 따분하기
짝이 없는 사회를 만들 것이 아니라, 명백한 잘못 앞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타인과
부딪칠 지언정 당당히 맛서는 강자가 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안전을 바라면서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강자의 의무라고만 여기고 있진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날선 글이 마음에 걸렸던건 어쩌면 나도 '약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스스로를 지키기도 벅찬 존재라고 생각했고 타인에게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하지만 생각없이 대다수의
편에 서거나 착한 사람 논리를 내세우며 권력자의 편에 붙진 않았으니 제게도 강자가 될 가능성이 조금은 있는거겠죠?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신변의 위협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한 베드로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달아난다. 도망가는 발걸음은 또 어찌나 빠른지 경악할 정도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을 성싶으면 진리든
정의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쉽게 집어던지고 자신의 생명 보전에만 매달린다. "
하지만, 이렇게 강하고 거칠게 말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또 한편으론 이렇게 해야만 깨어질 수 있는걸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이 책이 제겐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백만엔이 든 가방을 전철 안에 두고 내렸다면 그 남자가
잘못한 것이다. 버스를 탔는데 급커브에서 나자빠져 뇌진탕으로 죽었다면 그 노인이 잘못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놀다가 벨트에 끼여 들어가 큰
상처를 입었다면 그 아이가 잘못한 것이다. 아무 확인도 없이 전화 상대를 아들이라고 믿고 거액을 이체시켰다면 그 어머니가 잘못한
것이다."
이런 말도
서슴없이 하니 혼란스러울만 하죠?

"바그너 가는 그 당시 이미 니체에게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 자리에 없었던 친구 니체는 그 이후
'대학생 안젤무스'라고 불리는 처지가 되었다. 이 이름에는 니체를 비웃음의 재료로 삼는 불명예스러운 의미가 숨겨져 있다. 모든 모서리, 모든
가장자리에 부딪혀버리는 서툰 사람, 짜증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분명 니체를
말하는건데 이 글을 읽고 딱 저자가 이런 사람(=니체)같다 느꼈어요. 아이러니하죠. 자기가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을 똑 닮은 저자를
보니 니체가 자기 내면에 있던 동정심, 약함,
선량함을 싫어했던 것처럼, 저자도 자기 내면에 있던 착한 사람, 약자를 내쫓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글은 신중하게 써야 하나 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