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가
홍사훈 지음 / 루비박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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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록 열받는 책이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가>
위 질문의 답은 알지만 해설은 자신없는 저같은 이를 위한 책 :) 조금 나눠볼께요~
시작부터 아주 열 제대로 받으라고 내용도 지하철 구의역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1년 전이죠. 2016년 5월 26일,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참변을 당한 김군. 열아홉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전동열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컵라면, 하청, 파견근로, 스크린도어 수리기사 근무실태 등 ... 단어만 들어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김군의 희생으로 많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김군의 컵라면만큼 화제가 되었던 것이 김군의 월급이었습니다. 김군의 기본급은 130만원이었고, 서울메트로에서 하청을 준 '은성PSD' 용역업체 소속이었습니다.

근데 그거 아시나요? 김군 월급이 실은 그보다 100만원 더 많았답니다. 누가 꿀꺽했을까요?

 

 

 

서울메트로는 공기업이니 당연히 정부의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따라 240을 줬습니다. 아래는 용역업체의 답변입니다. 변명인지 항변인지는 각자 판단해 주세요,

 

다 주라고 안해서 다 안줬을 뿐이랍니다. 권고안이니 안지켜도 그만이라니. 똥인지 된장인지요.
김포공항 등 공항청소를 담당하는 한 외주 용역업체 또한 45만원 정도를 덜 지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용역업체가 마치 자신들이 일자리를 대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다는 모양새를 하고 돈을 떼 먹습니다.

한국공항공사 노무 담당자는 "법정 임금제도인 최저임금이 엄연히 있는데 정부가 쓸데없이 또 다른 임금 지침을 만들어 분란만 일으킨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답니다아....아... 아.....

으....읔.... (쉼호흡, 忍, 忍, 忍...)

 

 

2009년 완공된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많이들 다녀보셨지요~? 길이 뻥 뚤려 시원하게 내달리기 딱 좋죠. 이 글을 쓰게 되 죄송한 마음이 들 지경입니다. 진실을 아는 순간 예전같이 기분이 좋을 수가 없으실테니까요. ㅡ.ㅜ 그래도 뚫린 입이니 얘기해야겠습니다.

국토부와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해 일부 구간에 대해 하청 건설업체와 원청 건설사, 땅 주인간 공사비 시비가 붙은 덕분에 공사비 원가가 공개될 수 있었습니다. (공사비 원가가 드러난 유일한 사례라고 해요.)

위 사진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터널 한 구간 전기공사 노무비 내역서로, 원청 건설사가 정부에서 노무비 명목으로 10억 140만원을 받아갔습니다. 그리고 또 하청 건설사에 하청을 주고 노무비로 3억 4천만원을 지불해 공사를 했습니다.

나머지 6억 6천만원은 어디로 갔을까요? 잔돈입니다~하고 정부에 반납했을까요? 비자금이 이렇게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계역사로 건설사 하나씩 두고 있는거라고.... 건설사가 비자금만들기가 어떤 사업보다 쉽다고 하니.. 내가 세상 참 순진하게 살았구나. 싶다 못해 바보같은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요.
우리 세금은 그렇게 대기업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가, 정치인에게로 가고,,, 누군가의 주머니를 오고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참 많습니다. 구조적으로도 문제고, 행정적으로도 고칠게 참 많더라고요.

 

우리나란 표준품셈을 권고하고 있고, 미국은 적정임금제도를 건설사가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도록 법제화시켜놓았습니다. 미국의 사례가 꼭 정답은 아니지만 노무비를 건설사가 아닌 근로자에게 직접 주는건 정말 좋은거 같아요. 근로자에겐 좋겠지만 우리나라 공공기관 공무원들은 보면 뜨악하겠지요. 하지만 돈을 줬으면 잘쓰나 감시하고 책임지는 건 공무원의 당연한 역할이잖아요?

그럼 법으로 하면 되지? 싶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죠. 우리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론화가 자꾸 되어야 법으로 제정할 수 있을 거에요. 
미국은 기본적으로 노동한만큼 정당하게 대우해야한단 사고방식이 깔려있습니다. 열정페이 이런거 미국엔 없잖아요. 잠깐을 일해도 페이를 꼭 지급해주죠.  

생각없이 따라하는 것 만큼 위험한 건 없습니다. 4대강이 한국판 뉴딜이라고 불렸던거 기억하시죠?


한국판 짝퉁 뉴딜 vs 미국판 원조 뉴딜
미국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타개책으로 도입한 뉴딜 정책은 '정부가 테네시 강에서 대규모 토목 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만들테니 실직한 사람들은 공사현장에 와서 짐이라도 지라. 땀흘려 일한 만큼 그 대가는 정부가 반드시 보상해주겠다.'는 거였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임금을 착취당하지 않고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하겠다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루스벨트는 일반 시민의 소득이 늘어야 대공황에서 벗어나 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건설사가 하청에 하청에 또 하청을 줘 누구배만 불리고, 누구 주머니만 채우는 그런게 아니었어요. 한국판 뉴딜은 짝퉁 정도가 아니라 뉴딜을, 경제불황을 악용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시민 작가가 알쓸신잡에서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를 들어 하청업체가 사실은 헌법에 위배되는 거라고 이야기했던게 기억납니다. 불법을 왜 그냥 멀뚱멀뚱 쳐다만보고 있는건지. 국회의원들 다 어디간건지..으휴..

문제가 문제를 낳고 고민을 낳고, 내가 고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답답함에 고구마 백만개 책 <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가>.
 해외의 모범 사례들을 이야기해주어 바꿀 수 있구나 희망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 처한 현실이,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저분한 밑바닥이 들통난거 같아 씁슬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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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도 괜찮아 - 삶을 바꾸는 일상 유유자적 기술
박돈규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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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표지에 월요일도 괜찮다기에 자기계발서인가 했다. 하긴, 지금보니 자기계발서라 하기엔 표지가 너무 무르다. 제목을 다시 읽고는 요즘 유행인 위로를 화두로 삼는 책인가 싶은 생각도 잠시 스쳤다.

<월요일도 괜찮아>는 월요병을 포함한 인생의 고비들을 잘 넘기기 위해 스물다섯가지 주제를 가지고 고비를 그리고 우리 삶을 관망해본다. (관망이랑 단어를 쓴 건 에세이가 아니란 뜻이기도 하다.)

멀리서 바라본만큼 우리의 삶은 심플하다. 기자출신 작가라 그런지 글도 심플하니 군더더기가 없다. 그 점이 좋으면서도 아쉬웠다. 세심하게 들여다보는건 내 몫이니 부담스러웠달까. (귀찮은건 절대 절대 아니었다.)

어쩌다 내게 온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책이지만 내게 왔으니 일단 읽었다. (이런 책이 조금씩 늘고 있다.;; 병원을 가야하나.. 또?)

직장인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휴식에서 노동으로 환승을 경험한다. 주말의 끝이 오면 주말을 제대로 못보낸게 못내 아쉽고 후회가 밀려오면서 우울해진다. 우리는 왜 주말의 끝자락에서 늘 우울해지는 걸까?

세계보건기구가 21세기 최대 위험으로 지목한 것은 에볼라 바이러스도 에이즈도 아닌 직업적 스트레스다. 영단어 'worry(걱정)'를 붙잡고 뿌리를 캐면 '목을 조르다', '숨이 막히다'라는 뜻이 나온다. 근심은 그렇게 역사가 길고 치명적이다. 마음을 '졸이고' 속을 '태운다'는 우리말도 있다. 걱정은 몸 안에서 번지는 불길을 닮았다. 밖에서 난 화재라면 소화기로 끄겠지만 안에서 쥐고 흔드니 다른 대처법이 필요하다.

현대인에게 불안은 어쩔수 없는 생의 조건이다. 신분이 대물림되어 정해져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고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쓴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 작가가 그랬단다. "스스로 살아갈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자유는 혼란과 두려움의 원인일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첫 사회생활을 할 때, 결혼을 해 살림을 꾸려나갈 때, 아이를 낳았을 때- 굵직한 문제 앞에 늘 나란 존재는 한없이 작고 나약해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곳인지 섬뜩하게 표현한 이야기가 있다.

남자 둘이 산에서 곰과 마주치면서 시작되는 농담을 들었다. 한명이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다. 옆에 있는 친구가 "죽어라 뛰어도 곰보다 빠를 수는 없어."라고 하자 그가 대꾸한다.
"너보다만 빠르면 돼."

차라리 신발끈을 동여매는 저 남성처럼 자신감이라도 있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의자뺏기 게임을 꼭 닮은 이 사회에서 나약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책감이 들고 겁을 먹거나 화를 어찌하지 못해 사회를 향해 화살을 마구 쏘아대는 이도 적지 않다.

'헝그리 사회에서 앵그리 사회로 넘어왔다"는 말이 있단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지성은 낮아졌고, 수명은 길어졌지만 여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엇 하나 성에 차지 않아 짜증게이지가 높아질대로 높아진 사회. 이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사회를 살아내고 있으니 우린 정말 대단한 존재 아닌가?!

아인슈타인도 말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가지 방법 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명언 따위 집어치우라고?
그럼 이건 어떤가.

"라면 먹는 것도 눈치봐야 하는 이 세상 참 뭣같다!!"
ㅎㅎㅎㅎ월요병이 몇시간이라도 물러간거 같이 후련하지 않은가. ㅎㅎ 싫은게 있다면 꽁해있지말자. 후련하게 털어내버리고 내 갈길 가자. 부지런히 걸어도 완주하기 어려운 인생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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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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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좌표가 없다. 길도 없고
여기까지 오는 길을 가르쳐주는 지도도 없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그간의 프레드릭 배크만표 작품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진지함이다. 재치나 위트로 시도때도없이 웃기던 그가 폭을 좁히고 깊이를 더하는 작가 나름의 시도를 하는게 엿보였다.

전작들은 주인공은 있지만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인, 주위환경, 여러사람들의 사정들까지도 두루 살피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그에 반해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할아버지와 손자에게 집중하고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할아버지로 돌아왔다. :) (프레드릭 배크만의 첫작품은 '오베라는 남자'이다.) 소설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손자와 아주 느린 속도로 처언~천히 이별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펼치고 독자에게 남기는 글의 첫 문장을 보자마자 마음이 요동을 쳤다.

"나이를 먹어서 가장 나쁜 점은 더 이상 아무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이 아파 누워지내는 그러니까 멀쩡한 정신으로 몸에 갇혀 지내는 내 꼴을 보고 요근래 생각이 많았다. 솔직히.. 슬프기도 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몸을 가진 게 얼마나 슬픈건지..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몇 주였다.

이 문장을 읽고 육체에 갇힌 정신(나)이나 정신을 잃어가는 멀쩡한 노인이나 뭐가 다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치매걸린 노인과 나를 동일시하다니.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연히 갈 길이 다른데! 나는 살아나는 중인데! 싶었다.

근데 ...음...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 모두가 세상과 이별하고 있는 중 아닌가?

 

 

"노아한테 뭐라고 하지? 내가 죽기도 전에 그 아이를 떠나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하지?"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엔 빛나는 특별한 순간이 몇개쯤은 새겨져있다. 수십년 후, 아니면 죽음이 다가온 순간 떠오르는 생각 속에 누가 자리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나를 떠올리기보단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그 혹은 그녀를 위해 난 무엇을 남겨야 할까.

세상을, 가족을 좀 더 따뜻하게 대해야겠다.
매일 해도 모자란 다짐을 오늘도 어김없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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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엄마에게 - 오롯이 나를 위한 공부를 위해
송수진 지음 / 하나의책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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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면서 잃게 된 것도 많지만 동시에 얻는 것도 많습니다. 얻는 것 중 하나로는 '초인적인 힘'이 있습니다. 아가씨는 고난이 오면 약해지지만 아줌마는 강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쓰이는 이 말처럼 아줌마 파워는 강인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상승되는
지구력과 동시에 육아와 살림, 시댁과 친정과의 관계조절 등 일상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혜 즉 통찰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직종을 통틀어 가장 복잡한 멀티플레이어가 바로 엄마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죠?

조심스레 여쭤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이 힘을 어디다 쓰고 계신가요?"
이 무한한 잠재력을 그냥 썩히시려는건 아니지요? 가사와 육아만으로도 벅차 짜증이 목까지 올라올 때도 솔직히!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진 재능이 너무 아깝단 생각.. 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수십년전과는 다르게 상당수의 엄마들이 대학을 졸업하거나, 사회생활을 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러다 아이를 낳으면서 의도치않게 격리되고 말죠.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을 다시시작하기까지 8.5년이 걸린다는 리서치 결과를 (어제!) 들었습니다.

시간이 더 좁혀지면 좋겠지만, 그런 사회적인 이슈는 잠시 제쳐두고 전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걸 짚어보고 싶습니다.

"내게 8년이란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엄마들은 무엇을 위해 시간을 보내시나요? 아이에게 올인하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지만 혹 나를 위한 시간이 절실할 때 있지 않으신가요?

 

 

 

 

지인분들께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지는 대체로 같습니다. 애가 어린데 어떻게 책을 읽느냐, 시간이 있느냐는 겁니다. (첫째는 6살, 둘째는 세살 곧 두돌입니다.)

지금은 둘째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고, 예상치못한 지병으로 요양 중이라 시간이 몹시 많습니다만- 기억을 거슬러 생각해보면 둘째를 낳고 집에 왔던 날에도 일상에 흔들림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가 새벽에 깨고 울고 보채서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치는 힘든 날도 많았지만 책을 놓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둘째땐 절대 산후우울증을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째를 낳고 정말 호~되게 가슴앓이를 했던지라 두번 다시 겪지 않고 싶었던 이 절박함으로 전 책을 읽고 제 시간을 무조건! 확보했습니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아이들을 일찍 재우는 겁니다.
놀때는 체력 바닥날 때까지 놀 수 있게 해주고 일찍 재워서 9시부터 새벽 2-3시까지 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적고보니 여우가 따로 없네요. ㅎㅎ  

 

<공부하는 엄마에게> 저자는 아이를 키우며 교육학 전공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을 다녀야 했던 이 긴 시간, 그러니까 결과물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내공을 쌓기만 해야 하는 이 시간은 인내심을 아주 많이 요합니다. 엄마는 공부는 물론 내적갈등에 가족과의 갈등까지도 감당하고 풀어내야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배운게 있다면, 바로 갈등은 부끄러운게 아니란 겁니다. 갈등이란 채찍질 덕분에 바른 길을 갈 수 있었고, 가족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엄마는 더 절박해지고 꿈을 향해 전력질주할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꿈을 이뤄내죠.

절박함이야말로 꿈을 이룬 그리고 이룰 모두에게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되서 포기하느냐, 이를 악물고 견뎌내느냐!'선택은 결국 나의 몫입니다.

공부 하고 싶은 엄마에게,
잠시 세상과 동떨어져
지내고 있는 고급인력들에게
부디 동기부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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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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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의 책> 속 인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위 내용으로 볼 때, <무한의 책>은 어떤 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분류가 어려운 소설이 있다 말로만 들었지 이리 만나긴 처음이었습니다.

파충류의 모습을 한 채 휴대폰에 깔린 '계시앱'으로 계시를 내리는 신이 나오지만 SF나 공상과학소설은 아닙니다. 미스터리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냥 소설이라고 하기엔 스토리가 무척 놀랍습니다.

 

4차원 무한궤도로 순간이동시켜 준 <무한의 책>은  문체도 구성도 스토리도 아주 자유분방하고 독특합니다. '읽기'가 어려울 것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다른 소설에 비해 몰입하긴 아주 쉬웠습니다. 까닭은 아마도 목격담, 회고, 소설, 심문, 신문기사, 칼럼, 책인용문, 대화, 꿈, 편지, 문자메시지, 위키피디아, 참고문헌 등의 다양한 서술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내가 이 산을 정복할 수 있을까?
책을 열었는데 무릎이 시큰거린다.


이 책을 읽으며 메모장에 쓴 첫 문장입니다.
제가 염려했던 것처럼 작품해설을 한 평론가 또한 이 책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니 만만치 않은 책임은 분명하지 싶습니다.

로버트는 그런 느낌이 '기시감'이라고 했는데, 그는 그것이 '세상의 모든 시간과 공간이 서로 맞닿아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해줬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과거로 향하고, 미국과 한국이 교차하는 지점에 등장인물들이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중첩되고 뒤섞이는 비선형적 시간 속을 다니는건 아슬아슬하지만 짜릿했습니다.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요. 파도를 타는 서퍼의 마음이 이럴까요?

파도에 몸을 맡기려면 몸에 힘을 좀 빼고 편하게 즐겨야 하는데 바짝 힘을 주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네요. 얼마나 더 읽어야 책 속을 여유롭게 누비는 서퍼가 될 수 있는건지. (신기루는 아니겠지요?!)

<무한의 책>은 얼마나 많은 다른 인형들이 숨어 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마트료시카 인형을 닮았다. 이야기 속이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가 또 있다.
각봉투⊃각봉투⊃각봉투⊃... 무려 아홉개의 각봉투에 쌓여 있던 소설 속 편지처럼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을 읽는 내내 저 또한
'인지적인 혼란'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했지만 가볍다 못해 살짝 저렴한 캐릭터들이 있어 실실 웃으며 읽다 책을 덮고 미간이 찌푸려 졌습니다.

 '현재, 지금'을 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과거일을 수습하느라 허덕이고 있거나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목하에 현재를 희생시키기 일쑤죠.  그러고보면 소설처럼 우리 삶도 쌩뚱 맞을 때가 참 많습니다. 너무 쌩뚱 맞아 고백하지 못할 뿐...
갑자기 궁금한게 생겼습니다. 작가들은 이런걸 다 계산 하고 작품을 쓰는 걸까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인
나에게 전기충격기같았던 소설!
딴 생각이 절실한 내게 딱 맞았던 이달의 책!
평범한 분께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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