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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평점 :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천둥은 번개가 번쩍이는 것을 공표한다."고 썼다. 번개가 먼저 번쩍이고 그다음 천둥이 울린다. 번개가 생이라면 천둥은 시일 테다. ...열 번 울리는 천둥[시]들은 열 겹의 번개[생]를 품는다."
시인의 글이라고 하면 으레 기대하는 바가 있다. 수려하고~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문체, 단어 등... 시인이 시에 관해 이야기한다니 더더욱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은유의 힘》은 강렬한 첫 장만큼 굉장히 이성적이고 날카롭기가 속도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지금까지 내 머릿속의 시인은 '무엇이든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쨌든 칼이 아닌 펜으로 애둘러 싸우기를 택한 이들이니까. 하지만 펜도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특정 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시인이자 저자인 장석주 시인의 글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시는 보편적, 객관적 지식의 세계와는 무관하며, 인류 문명의 건설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시를 쓰는 것은 상상과 창조의 일이지만 그것이 인간생활에 유용하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쓸모가 없는 것이다.
...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시가 품은 애초의 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는 감각의 착란 속에서 떠오른 언어거나, 세계의 이미지를 조형하는 것, 이름 없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 불러주는 행위, 그도 아니면 거의 모든 존재의 역사를 꿰뚫어보고 존재 현상을 살펴 헤아리는 새로운 '관점의 창'이 될 수도 있을 테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시가 아니다. 시의 주인공인 '은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메타포, 은유가 가진 힘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시 자체를 마구 파헤치지 않고 통찰력 있는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 난이도가 있는 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시인의 눈초리가 얼마나 매서운지 어느새 내가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을 정도이다. '시'라는 과녁을 맞히기 위해 은유를 타깃으로 한 궁수의 실력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화살이 과녁을 맞추려면
이리저리 둘러 갈 순 없다. 하지만 좋은 궁수는
거리와 바람을 수락한다.
그러니 네가 과녁일 때 나는 조금 위를 겨눈다.
-울라브 하우게, 『조금 위를 겨눈다』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은유는 극히 일부였다. '그동안 난 코끼리의 꼬리만 보고 코끼리를 아는 척했던 거였나?' 생각하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수준으로 치면 난 초등학생 수준이었고 책은 교수님 강의 같았다. 하여.. 조금 어렵긴 했다. 감탄과 물음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머리에 꽂혀 날 어지럽게 했다. 아무래도 세 번은 읽어봐야 이 책을 읽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오는 거죠."
"그래. 그게 은유야."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에서 망명 생활 중 겪는 이야기를 담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시인이 우편배달부와 나눈 이 대화를 보자마자 "아!!!!" 싶은 동시에 "?!" 싶었다. 이 책과 꼭 닮은 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