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중년이 된다 - ‘내 마음 같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무레 요코 지음, 부윤아 옮김 / 탐나는책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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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젊었을 때는 모공이 동그란데 나이를 먹으면 모공도 중력을 이기지 못해서 타원형이 된다더라.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다 중력과 시간의 법칙에 의해 중년이 된다.

중년이 된다는건 어떤 기분일까.


가끔 그러니까 몸이 아플 때나 체력이 걸림돌이 될 때 종종 '벌써 이러면 나이들어선 어쩌지?'란 생각과 함께 '나이 드신 분들은 이래서 걸음이 느리고, 여행도 버겁고, 틈만 나면 앉아 계시는구나..'란 생각도 듭니다.

이십대때 까진 쉬면 회복이 되고 건강해졌지만 삼십대부턴 한번 병을 크게 앓거나 다치면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조금씩 내리막길로 내려가는게 느껴지는 나이는 삼십부터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중년이 된다는 저희 엄마 또래 작가란 이유 하나로 마음이 끌렸어요. 저희 엄마도 갱년기랑 긴 터널을 지나고 계시지만 워낙 바쁘신 탓에 크게 앓거나 우울해하시진 않으셨어요. 더 힘들고 아픈 분들이 주변에 워낙 많아 갱년기는 명함도 못내밀 직업군 탓도 있겠지 싶지만 왠지 알아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읽어보고싶었습니다.

 

 

표지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책에는 섬세하고 조곤조곤한 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제는 역시나 중년의 위기! 갱년기입니다.

갱년기를 겪고 있는 자신의 건강 그러니까 체력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약을 먹는지, 사회 생활이 얼마나 가능하고 어떻게 지내는지부터 이제 좀 가줬으면 싶은 생리불순으로 인한 불쾌감, 짜증 같은 솔직한 감정들, 지인들의 갱년기로 인한 마음의 병, 남자의 갱년기까지 아주 디테일해요.

저자는 처음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을 멘붕에 빠지게 한 건 바로 눈으로 보이는 외적인 변화였다고 해요. 중력의 법칙을 몸소 보여주는 체형의 변화는 말 그대로 몸이 '붕괴'하는 느낌이었고, 외모에 신경쓰지 않아 '아저씨'가 되어가는 모습에 적잖케 충격을 받아 젊어서도 안한 관리를 나이들어 시작하셨다고 해요. 그렇다고 체력이 되서 운동을 빡세게 하거나 쫄쫄 굶어 다이어트를 할 수도 없기에 젊을 때처럼 다이나믹한 변화도 바랄 수 없어요.

서서히 나이듦을 받아들여가는 과정 또한 느릿느릿한데 적고보니 왠지 일기랑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글솜씨가 좋아서인지 일기같은 느낌은 아니었어요. 갱년기 에세이 정도? ㅎㅎ

제 개인적으론 아이 둘 낳고 나니 생리 이제 그만 했으면.. 싶은 마음이 종종 드는데 (저만 그런가요??;;) 책을 읽으며 중년은 오죽 귀찮을까 싶더라고요. 그냥 있어도 몸이 불편한데 호르몬이 긁어대면 정말 짜증 나잖아요. 몸의 변화에 아주 예민한 편인지라 전 왠지 갱년기 호되게 앓고 지나갈 것 같아요. 갱년기엔 딸이 좋다던데.. 이런거 생각하면 또 낳고 싶고. 셋째 얘기하면 주변서 막 이상하게 보는게 참아야 할 것 같고.. 줏대 참 없쥬.ㅎㅎ

어제 지인과 이번 추석 연휴 이야기 하다 어른들은 놀러가는거 싫어하신다고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책이 떠올랐어요. 어르신들 여행 안좋아 하시는 것도 체력의 한계도 그렇지만 평생 살면서 많이 봤으니 감흥이 없으실만도 하겠다, 아이들과 내가 다른 것처럼 어르신들은 또 그만큼 다르구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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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실록으로 읽다 실록으로 읽는 우리 문화재 2
최동군 지음 / 도서출판 담디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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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으로 읽는 궁은 어떤 모습일까?"

조선왕조실록은 긴 역사를 담고 있는 만큼 888권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유산입니다. "유산은 지켜주는거지 함부로 들춰보는게 아니야~~" 싶은 농담이 절로 나오는 분량이지만 실록을 적절히 잘 발췌해 재미있게 엮어 놓은 책들이 여럿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죠? ㅎㅎ

 

 

창덕궁은 조선왕실이 가장 오래 머문 궁궐입니다.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경복궁과 한양의 지세 문제(=터가 안좋다)로 도읍을 다시 개경을 옮겼다가 태종(이방원)이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법궁(정궁)인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을 새로 지어 이사오게 됩니다. 이복동생들의 피가 묻은 곳, 자신의 정적이 건설한 궁이니 싫어할만도 하지요.
 
공식적으로는 경복궁이 법궁이지만 태종 외에도 많은 왕들이 실제로 기거했던 곳인만큼 기구하고 긴 역사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경복궁은 다소 FM스러운 건축 그러니까 왕만 생각한 건축이었지만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해 본래 지형을 훼손하지 않았고 주변과 어우러지게 설계하고 만들어 무척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궐 내 역사는 화려한만큼 붉었습니다.
 

 

태종12년 5월 22일
도성 좌우의 행랑이 완성되었다. 궐문에서 정선방 동구까지 행랑이 472칸이고, 진선문 남쪽에 누문 5간을 세워서 돈화문이라고 이름하였다.

돈화문은 동궐도를 보면 가장 좌측 아래 노란 느티나무가 있는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요. 돈화문이 의미있는건 바로
'5문3조'이기 때문이에요. 아시죠? 황제의 궁궐은 5문, 왕의 궁궐은 3문이잖아요. 경복궁의 광화문, 덕수궁의 대한문, 경희궁의 흥화문, 창경궁의 홍화문 모두 3문인데 돈화문과 중국 천안문은 5문입니다.
그럼 근정전은? 사실 3문인데 5문인 것처럼 효과(?꾀?)를 낸 거라고 해요. 월화문, 일화문을 만들어 5문효과를 낸거죠. 중국에게 절대 굴하지만은 않겠다는 마음 속 의지가 엿보이죠. :)

순종 1년 3월 10일
돈화문 밖으로 거둥하여 각 학교들과 일반 백성들의 등불 행렬을 관람하였으며, 만세를 축원하는 의식을 가졌다. ....

조선시대에도 촛불집회가 있었어요. 물론. 조금 더 크고 강해보이는 '등불'이었지만 초가 없었으니 지금의 촛불과 비슷하다 해도 되겠지요. 이 행렬은 다행히도 고종의 만수무강을 축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드라마나 영화에선 궐 안의 이야기, 왕의 모습만 보여주지만 이렇게 서민들과 왕이 화기애애할 때도 많았겠죠?

정조 즉위년 9월 25일
규장각을 창덕궁 금원의 북쪽에 세우고, 제학, 직제학, 직각, 대교 등 관원을 두었다. ...

돈화문을 지나 숱한 조선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인정전, 왕의 서재 겸 사랑채, 조선왕실 가족들이 여생을 보내거나 임종을 기릴 때 머물던 낙선재를 둘러보다 제 마음이 확~ 꽂힌 곳은 역시나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부용지였어요. 부용지에는 부용정, 규장각, 주합루, 영화당이 있습니다.

이 중 규장각이 가장 유명하지요. 정조가 즉위한 해에 곧바로 설치하고 관리직에 서얼 출신을 기용, 초계문신 제도를 도입한 곳이 바로 규장각이에요. 초계문신 제도는 이미 과거를 거친 사람 중 낮은 직급 출신으로 27세 이하의 젊은 인재를 뽑아 임금에게 재가를 받고, 3년 정도 특별 재교육을 시키는 제도였어요. 세종 때의 독서사가제(문신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유급휴가)와 비슷하게 운영되었지만 정조가 친히(;;;) 강론에 참여하거나 직접 시험을 보여 채점하기도 할 정도로 아주 타이트하게 관리, 운영되었다고 해요. 공부 못하면 유배 ㅜ_ㅠ지만 왠지 엄청 탐나는 건.. 제가 시대 감각이 좀 떨어지는 걸까요.(누가 유배 좀 시켜줬으면 싶은 걸까요. ㅎㅎ)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쓸 때까지도 전 규장각과 주합루가 같은 건물인지 몰랐어요. ㅡ.ㅜ 역사무식자라서 그렇겠지만 눈썰미도 참 없나봅니다. 한옥은 1층이 답인줄 알았다는게 핑계가 될까요. 궐 내에 2층 건물이 있었지 뭐에요. 1층이 왕의 책을 보관한 규장각, 2층은 열람실인 주합루! 저 멋진 곳이 도서관이라니 더 부럽네요~ 역시 궁궐은 클래스가 다르구나 싶지요. 

책은 대체로 꼼꼼해요. 근데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으로 이어지진 않아서 빈 공간은 스스로 메꿔야할 것 같아요~ 학습용은 원래 이런 맛에 읽는 거겠죠? :)
 가을엔 공부 좀 해서 궐로 놀러가 보아요~~~~ 
(놀러가려고 공부한건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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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도 있는 사람
전민식 지음 / 답(도서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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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생소한 열대어들 수백마리가 투명하다 못해 시린 수족관 안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자주색 몸을 가진 열대어 한마리가 죽은 채 수면위로 떠올랐지만 다른 열대어들은 죽은 물고기에 관심이 없는 듯 돌아다녔다.

 

월간지 객원기자 용주,
동호회 리더이자 박물관 큐레이터 수인,
카센터를 운영 중인 기성,
의류업체 영업사원 영미.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2,000cc이하 차량 카레이싱 동호회 사람들이다. 멀리서보면 그럭저럭 괜찮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들여다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로 답답한 삶을 살고 있다.

객원기자라니 그럴싸해보이지만 용주는 그냥 수입이 불규칙한 그래서 미래도 불투명한 비정규직이다. 월 수입 몇십만원이 전부인 카센터 사장은 알바만도 못하다. 영미는 회사를 위해 의류를 납품할 할인점 팀장에게 살신성인!하려 하지만 주변은 그저 방관하고 침묵하고 외면한다.

한달살이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유일한 기쁨이자 도피처가 되어주는 것이 카레이싱이다. 카레이싱이라니 세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멋지게! 세상에 되갚아주는 시원한 홈런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완-전히 반대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차 안으로 꽁꽁 숨어 빠른 속도, 우리에게 주어진 것 이상의 속도로 현재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겁쟁이들이다. 그렇다고 미래로 가고 싶어 하는 것도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달리면 달릴수록 차 안에 갇히고 과거에 발목잡혀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유는 불안을 일으킨다.


조건없이 내 판단과 선택으로 결정된 사안들은 오롯이 내 책임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얻어 불안해진 이들은 다시 불안을 피해 세상 그늘 밑으로 숨어 든다.

각각의 캐릭터가 품고 있는 아픔은 결국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와 닿았지만 캐릭터들이 한데 버무려지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다. '의도한 건가?' 싶었지만 하나로 모이는 꽤나 그럴싸한 결말에 비해 의리도 우정도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드라마에 너무 길들여져 우연이든 억지든 서로 얽히길 내가 바란걸까? 조미료 반스푼이 아쉬운 소설에 내가 문제인지 작품이 문제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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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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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은 에이바가 남편의 외도로 25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구의 권유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입한 북클럽을 통해 인생의 갱년기가 돼서야 자신에게 상처가 많음을 깨닫고 이를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1년간의 과정을 1~12월까지 차근차근 그리고 있다.

남편의 외도 이전에 에이바에겐 동생과 엄마를 잃은 상처가 있다. 에이바가 7살 때, 함께 정원에서 놀던 동생이 나무에서 떨어져 즉사하고, 채 일년도 버티지 못하고 엄마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사고 당시 두 자매를 돌보던 이모는 연락두절이 되고, 유일한 가족인 아빠는 엄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다 치매(혹은 정신병, 아님 둘다)에 걸려 요양원에서 지낸다.


북클럽 첫 참석에서 내년 주제가 <내 인생 최고의 책>임을 알고 급히 추천한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는 사실 에이바가 자신이 겪은 일과 쏙 빼닮은 스토리 탓에 그동안 읽지 않으려 애쓴 책이었다. 살아있는 자신을 두고 죽은 여동생을 따라 자살한 엄마를 어떤 딸이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상처를 다시
들추고 싶지 않아 피했던 책을 추천하게 된 에이바는 과연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책은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을 반복해서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다른 멤버들이 추천한 책은 <안나 카레니나>, <오만과 편견>, <위대한 게츠비> 등으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책들이다. 그에 반해 에이바가 추천한 책은 절판된지 이미 오래되어 도서관에서도 구하기 어려우니 다른 책을 읽자는 멤버들의 성토가 이어지자 당황한 에이바는 덜컥 작가를 초빙했단 거짓말을 하고만다. 그리고 어쩔수없이 작가 찾기에 나서며 이야기는 예상치 못하게 전개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에이바의 딸 메기는 약물 중독에 섹스 중독자이다. 하룻밤 잠자리 상대를 찾다 만난 한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곤 자발적으로 그가 마련해준 거처에 감금되기도 하고, 약물을 과다 투여해 병원에 실려가기도 한다. 여러차례 반복되는 고비를 넘기고서야 자신의 삶이 잘못됐단걸 깨닫게 된 메기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마음먹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변변찮아 보였다. 그래도 엄마에게 물려받은 문학 DNA가 있으니 희망은 있어보였다.

변화를 결심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간 딸이 다시 약물에 빠져 학교를 자퇴하고 남자와 어딘가로 떠나 실종되자 에이바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에이바는 딸에게 받은 실망과 상처를 되갚지도 내색하지도 않고 유연하게 대처한다. 쉼없이 고민하고 걱정한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물 위를 떠다니는 백조같이 우아해 보였고 에이바를 닮고 싶단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표지나 제목을 보면 에이바가 중심을 이루고 있고 북클럽이 주된 장소가 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에이바 못지 않게 중요한 등장인물도 여럿 있었는데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결국 '삶'이 있는 장소였고 책은 삶을 살아내는 나(=보석)를 빛나게 해준 가공사였다. 기억하자. 가공사는 보석을 다듬을 뿐 만들어내진 못한다. 결국 내가, 우리가 보석인 것이다.




+
소설을 읽는 내내 에이바처럼 늙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는데... 표지처럼 머릴 잘라버렸다. 헐.

의외의 전개로 흥미진진하고 쫄깃한데다 마지막은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감동을 안겨 나를 깜짝 놀래킨 책



+
《클레어에서 여기까지》

딸 하나를 잃고 셋이 된 가족이 여행을 가다 길을 잃었는지 차에서 아빠가 내려 잠시 사라졌다. 그새를 못참고 차에서 내린 엄마와 딸은 근처에 있던 오두막을 발견한다.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암흑처럼 어두운 지하에 이끌려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죽은 딸의 영혼과 마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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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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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천둥은 번개가 번쩍이는 것을 공표한다."고 썼다. 번개가 먼저 번쩍이고 그다음 천둥이 울린다. 번개가 생이라면 천둥은 시일 테다. ...열 번 울리는 천둥[시]들은 열 겹의 번개[생]를 품는다."

 

시인의 글이라고 하면 으레 기대하는 바가 있다. 수려하고~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문체, 단어 등... 시인이 시에 관해 이야기한다니 더더욱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은유의 힘》은 강렬한 첫 장만큼 굉장히 이성적이고 날카롭기가 속도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지금까지 내 머릿속의 시인은 '무엇이든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쨌든 칼이 아닌 펜으로 애둘러 싸우기를 택한 이들이니까. 하지만 펜도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특정 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시인이자 저자인 장석주 시인의 글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시는 보편적, 객관적 지식의 세계와는 무관하며, 인류 문명의 건설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시를 쓰는 것은 상상과 창조의 일이지만 그것이 인간생활에 유용하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쓸모가 없는 것이다.
...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시가 품은 애초의 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는 감각의 착란 속에서 떠오른 언어거나, 세계의 이미지를 조형하는 것, 이름 없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 불러주는 행위, 그도 아니면 거의 모든 존재의 역사를 꿰뚫어보고 존재 현상을 살펴 헤아리는 새로운 '관점의 창'이 될 수도 있을 테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시가 아니다. 시의 주인공인 '은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메타포, 은유가 가진 힘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시 자체를 마구 파헤치지 않고 통찰력 있는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 난이도가 있는 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시인의 눈초리가 얼마나 매서운지 어느새 내가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을 정도이다. '시'라는 과녁을 맞히기 위해 은유를 타깃으로 한 궁수의 실력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화살이 과녁을 맞추려면
이리저리 둘러 갈 순 없다. 하지만 좋은 궁수는
거리와 바람을 수락한다.
그러니 네가 과녁일 때 나는 조금 위를 겨눈다.
-울라브 하우게, 『조금 위를 겨눈다』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은유는 극히 일부였다. '그동안 난 코끼리의 꼬리만 보고 코끼리를 아는 척했던 거였나?' 생각하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수준으로 치면 난 초등학생 수준이었고 책은 교수님 강의 같았다. 하여.. 조금 어렵긴 했다. 감탄과 물음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머리에 꽂혀 날 어지럽게 했다. 아무래도 세 번은 읽어봐야 이 책을 읽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오는 거죠."
"그래. 그게 은유야."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에서 망명 생활 중 겪는 이야기를 담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시인이 우편배달부와 나눈 이 대화를 보자마자 "아!!!!" 싶은 동시에 "?!" 싶었다. 이 책과 꼭 닮은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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