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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엔리코 이안니엘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갓 태어났을 때 나는
울음을 터뜨린 게 아니었다.
"응애"하고 우는 대신 "프리"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한 아이의 휘파람 소리가 노동계급을 위한 혁명의 소리가 되어 민중을 위로했다고 말한다면, 너무 비장할까? 그건 이 소설과 안어울리는데... 흠...
"규칙이 머리를 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일 뿐이죠. 무의미하다는 뜻이에요. 둘 다 올바른 곳을 거쳐서 생겨나야 하는 거죠. 정의는 정확히 가슴을 통과해야 해요. 사람들이 사랑해야 할 정의가 언제나 힘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규칙들이 이성을 통하지 않고 가슴 혹은 배를 통한다면 우매해지고 파시즘을 낳게 되겠죠."

태어날 때부터 휘파람 소리를 낸 조금 독특한 아이였지만, 이시도로는 로맨티스트 공산주의자인 아빠와 맛있는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다정한 엄마 사이에서 더없이 행복하게 자랐다. 가족 뿐 아니라 휘파람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 자신의 재주를 알아보고 무대를 마련해준 아저씨 등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날들을 함께했다.
1부에서는 그랬다.
"세상은 네가 좋아하는 놀이와 닮았단다. 놀이터에서 하는 그거 있잖니. 한 사람은 이쪽에, 또 한 사람은 반대쪽에 앉아서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시소 말이야. 너를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는 사람을 찾으렴. 네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기뻐할 그런 여자를 찾아봐. 마찬가지로 너도 여자에게 그래야 한다. 네가 내려갈 차례가 되면 온 힘을 다해 상대가 올라갈 수 있도록 해라. 그리고 그것에 만족해라!" <욕실에서 쓴 세 번째 사랑의 편지 중에서>

"그 애에게 시간은 창의력이라는 반죽에 넣을 효모로서 필요한 거야. 시간이 없으면 창의력은 길을 잃고 학업에 짓눌려버려. ... 여름철 지루한 오후에 창의적인 아이는 스스로의 삶을 만들며 자란단다. 지루한 오후에 창의적인 아이는 아주 짧은 흰 수염이 난 어린 신이 돼."
휘파람으로 평등을 노래하는 행복한 혁명가가 될 것 같았던 아이의 이야기는 2부가 되면서 급변하게 된다. 부모를 잃고, 무시 당하고, 한 장님에게 얹혀 살게 된다. '벙어리와 장님이라니 이 무슨 세상 가장 불쌍한 조합이란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 무섭게 장님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가라앉으려는 분위기를 빠르게 원상태로 업-시킨다. 결과적으로, 이 아이는 장님과 함께 지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행복하던 어린 시절이 담긴 1부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난 이 아이가 벙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벙어리일 뿐이라고 말한걸 읽고서야 “아! 그래 지금껏 말은 한마디도 안했지?!” 깨달았다. 그런데...
깨달았단 표현이 옳은걸까? 아이가 내는 소리가 우리와 다르니까, 우리가 내는 말소리를 내지 않으니 벙어리가 맞는걸까? 벙어리란 말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난 이시도로가 벙어리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벙어리란 말을 듣는 순간, 이시도로는 내게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는 공산주의, 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이야기, 혁명, 재난(지진)으로 인한 참사 등 무거운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유쾌, 발랄했다. 무거운 이야기를 휘파람으로 경쾌하게 풀어낸 재간둥이 이시도로를 어떻게 편견에 가둬 둘 수 있을까.
"기억해라, 이시도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흥얼댈 뿐이고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노래를 부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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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 + 시간이 아깝지 않은 그런 책을 읽고 싶을 때 함께하면 좋을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