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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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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은 균형감각이 전부다. (28)

너 같은 애는 딱 질색이야. 제일 좋아하는 애를 울리고 만 미쓰히로. 그녀는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다. 모두들 미쓰히로를 보고 있다. 저 녀석이 울렸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딱 질색이라는 말이 왕왕 울리고 있다. 거절당하면 그것으로 끝. 나타날 줄 모르는 요시쿠니를 기다리면서 죽은 이와쓰키. 도중에 전화가 끊긴 히로코. 모두 결코 돌아오지 않을 머나먼 계절 속의 사건이다. 상냥하지 않은 나. 거절하는 것은 잔인하다.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줘라. 한마디만이라도 해주지 그러니?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무리 해도 싫었단 말이다. (149)

곁에서 간지가 힘없이 고개를 수그리고 밤의 밑바닥을 걷고 있다.
늘 그랬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두 사람은 묵묵히 길을 걸어간다.
문 안쪽에, 하고 요시쿠니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문 안쪽의 어둠 속에 미쓰히로는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것이다.
편안히 자기를.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아무런 꿈도 꾸지 말고 편안히 자기를. (210)

<밤의 피크닉>과 비슷한 느낌인가. 겨울방학, 모두가 떠나간 기숙사에 남게 된 네 명의 남자 고등학생.
끼니를 함께 하고 밤마다 술기운에 고백/실행 게임을 하는 사이에 소년들은 자신들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겨울이라는 시간과 명문고의 고색창연한 기숙사라는 공간이,
소년들의 내밀한 슬픔과 그 맞은편의 공포를 마주하기에 적당한 분위기가 되고...

무언가가 파괴되길 바란 건 아니었으나, 클라이맥스 이후 너무 모범생스러운 전개가 거슬렸다.
제각기 캐릭터가 확실한 소년들이지만, 죄다 진중하고 착하다는 것도 좀..
그렇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히는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좋은 모양이다. 온다 리쿠가 매번 만들어내는 비밀스럽고 슬프고 공포스런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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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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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사건'은 많은 사람을 빨아들인다. 폭심지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 이를테면 각자의 가족, 친구와 지인, 근처 주민,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나아가 목격자, 경찰의 탐문을 받은 사람들, 사건 현장에 출입하던 수금원, 신문배달부, 음식배달부 등, 헤아려보면 한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지 새삼 놀랄 정도다.
물론 이 사람들 전부가 '사건'에서 등거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며, 또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 대다수는 '사건'을 기점으로 방사형으로 그어진 직선 끝에 있는 것이며, 바로 옆 방사선 끝에 있는 다른 '관련자'하고는 전혀 면식이 없는 경우도 많다. 또 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 커다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 경우, 즉 사건에서 가장 먼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91-92쪽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가족은 전에 '이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이웃'이 무섭다는 것은 곧 세상이 무섭다는 것이고, 결국은 '커뮤니티' 자체가 무섭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무엇이 무서우냐 하면, 사람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129-130쪽

건설회사나 분양회사는 아파트를 판매할 때 구입 희망자의 자금 조달 능력, 융자 상환 계획, 자기 자금 비율 등에는 눈을 번뜩인다. 그러나 세대주의 인격이나 인품까지 감안해서 심사를 하거나, 그것으로 매매 가부를 판정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단 사건이 터지면 판매한 기업의 이미지가 타격을 받는다.
"이런 점이, 단순히 '부동산'이라고 단정해버릴 수 없는 '집', 즉 '가정'을 상품으로 다루는 기업의 어려운 점입니다."-145쪽

'매체'가 발달한 현대는, 텔레비전 앞에 30분만 앉아 있어도 보통 사람이 평범하게 평생을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수십 배나 많은 양의 정보를 그 자리에서 얻을 수 있게 되어버렸다. 여기서 난해한 문제가 하나 생겨난다. '현실' 혹은 '사실'이란 과연 무엇이냐 하는 문제다. 무엇이 '리얼리티'고 무엇이 '버추얼 리얼리티'인가. 양자를 가르는 벽은 무엇일까. '실제 체험'과 '전해들은 지식'을 '입력된 정보'라는 틀로 바라본다면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154쪽

그러나 맥박을 빠르게 만드는 '이유'는 크게 다르다. 하나는 부정승차이고 또 하나는 살인이다. 한 사람당 5백 엔의 차비를 속이는 데서 오는 공포와, 혈육이 살인을 했다는 말을 듣고 느끼는 공포가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몸이 보이는 반응은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다.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그저 그 뿐이다.
사람이란 의외로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는지도 모른다.-367쪽

지어낸 이야기는 파장을 일으켜 주위에 공명하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또다른 이야기로 부풀어져간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 되고, 나누지도 않았던 대화가 나누었던 것이 된다. 게이트를 닫아 주거공간을 외부와 격리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분위기와 환경만을 애지중지하면서 굳세게 지켜내려고 애를 써도 헛것에는 이길 도리가 없다. 헛것을 몰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시다 나오즈미와 2025호의 중년여성에 관한 목격담의 태반은 이런 종류의 헛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증언들이 나오는 순간에는, 적어도 증언하는 사람에게는 진실이었다. 그 자리에 없던 사람들도, 증언이 나오는 순간에는 분명 거기 있었던 것이다. 스나카와 노부오 외에 세 사람, 그 생생하게 존재하는 세 사람의 신원이 불명인 채로 남아 있는 한편에서는, 수많은 실재하는 사람들이 '일가 4인 살해사건'을 어떻게든 자기 인생에 얘깃거리로 남기려고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증언이 무수한 근거없는 '기억'을 낳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이라는 추측을 낳고, '그러고보니 그때 보았던 그 사람은..'이라는 추상을 부른다. 이렇게 해서 유령이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516-5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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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
시게노부 후사코 지음, 최순육 옮김 / 지원북클럽(하얀풍차)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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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적군파라면, 72년 전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합적군의 내부 숙청 사건이라 할 아사마 산장 사건이 떠오른다. 이 시기에 이미 레바논에 넘어가 있던 시게노부 후사코는 일본 적군파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국제근거지론'에 따라 팔레스타인해방전선과 함께 다양한 '테러' 작전에 결합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00년 11월에서야 오랜 지명 수배 생활을 끝내고 20년형을 받았다. 이 책은 27년간 무국적자였던 딸에게 일본 국적을 취득해 주기 위해 법무성에 보내는 탄원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체계가 잡힌 책은 아니다. 뭔가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기 일쑤고. 다만 70년대 초반 말그대로 이역만리로 날아가 혁명에 투신한, 어느 여성의 내면을 훑어보기에 적당하다.

지금 보면 마냥 놀라울 뿐이다. '국제근거지론'이라는 것, 아마 68혁명도 그렇고 체 게바라등 게릴라들의 남미 혁명 운동의 기운이 남아 있는 70년대 초반에는 무척 신빙성 있었을 거다. 무장 투쟁노선도 그러하고. 어디 취직하고 재테크는 어떻게 해야 하고 결혼은, 애들 교육은, 내집마련은.. 뭐 이런 문제들에만 골머리 싸안는 지금 세대의 눈에, 세계의 부조리를 바로 잡기 위해 인생을 내던지는 각오가 가능했던 그 시절은, 차라리 희망이 있어 보이기도.

"총이야말로 남녀노소를 평등하게 한다.
나는 이것을 실감했었다.
어른이나 어린이도 총을 손에 들었을 때, 그저 방아쇠를 당기기만 한다면 체력적 한계와 관계없이 적을 향해서 평등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총을 잡지 않으면 안 되나?
왜, 총을 잡을 수밖에 없나?
이런 물음 앞에 놓여지면,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되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강대국의 이기심, 돈이나 자본에 의한 지배 논리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결론을 내려본다.

사람을 다치거나 죽이지 않고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팔레스타인 해방에는 폭력이 힘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이 있으며 서방측과 대결할 수 밖에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강대국의 폭력은 깔끔하고 세련됐으며, 피를 보이지 않고 돈이 붙어 다니는 자본의 냄새가 난다. 민중의 무장 봉기는 증오에 찬, 피비린내 나는 행위가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미숙한 투쟁을 벌인 결과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 하는 많은 사람들을 피해자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우리 주변의 친구나 친척들이 폭력 앞에 전사하고 말았다. 나도, 그 누구도 사람이 죽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81-82) 

여전히 팔레스타인은 '자살폭탄테러'를 벌여야만 해외단신에 소개된다. 공정치 못한 역사를 만든 것은 영국과 이스라엘인데, 그들은 정치와 자본의 동맹으로 엮여 있다. 수백 킬로에 달하는 장벽으로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살던 땅에서 떠나가도록 만드는 이스라엘의 잔학성은, 그들의 부와 세련된 정치로 가려져 있다. 내가 구입한 스타벅스 커피 한 잔(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은 유명한 과격파 시오니스트다)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불도저나 총알이 될 수 있지만, 이런 사실은 닮고 싶은 뉴요커 이미지에 가리워져 있다.

평화, 폭력과 비폭력, 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주제에 대해 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튼 주말에 시게노부 후사코의 딸인 시게노부 메이가 나오는 일본 다큐멘터리를 보러 인디스페이스에 갈 생각이다. '9.11-8.15 일본심중'이란 작품이다. 실은 이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한 워밍업 차원에서 책을 읽은 것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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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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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쓰러뜨리고 뒤엎고 바닥으로 내던졌다가, 두 팔을 뻗고 두 손을 들어올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가, 지푸라기가 눈에 띄는 순간 매달릴 시간만 남겨놓고 놓아버리는, 먼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젊음의 그런 유별난 집요함에 얼떨떨해진 채 고개를 내저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런 자신이 정말이지 절망적으로 여겨졌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21-22)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인간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인간이란 걸 말이죠, 선생님. 하하! 날 웃게 내버려두세요, 좀 봤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의학의 발달에 힘입어 진정한 인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기형적인 존재들일 뿐이에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니까요.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기형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적당한 말이 없네요.
('본능의 기쁨' 146)

두어 편을 읽어가는 동안, 이 사람, 자살하지 않았을까? 싶어 찾아보니 자살했다. 1980년에.
1914년 생이니 젊어 죽은 것도,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다.
로맹 가리의 단편엔 위트도 있고, 반전도 있다. 그런데 희망이나 가능성이 없다.
그런 것이 보일라치면 다음 순간 단칼로 내리쳐버린다.
20세기의 진수를 함께 한 그의 삶은,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절망의 근거만 수집한 시간이었던가 보다.
다음에 또 그의 작품을 읽게 된다면, 마음 단디 먹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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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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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도 기록해 두어야겠다.

미카엘과 내가 침대덮개를 털기 위해 마당으로 가고 있다. 잠시 후에 움직임을 맞춰서 함께 흔들어낸다. 먼지가 일어난다.
그러고는 침대덮개를 접는다. 미카엘이 갑자기 나를 안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팔을 쭉 뻗은 채로 내 쪽으로 온다. 그가 쥐고 있는 두 귀퉁이를 내민다. 그는 뒷걸음질쳐서 새 귀퉁이를 다시 잡는다. 내게로 온다. 내민다. 뒷걸음질친다. 잡는다. 내게로 온다. 내민다.

- 됐어요, 미카엘. 다 끝났어요
- 그래, 한나
- 고마워요 미카엘
-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한나. 침대덮개는 우리 둘 다 쓰는 거잖아.

마당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저녁. 첫 별들. 희미하고 멀리서 들리는 울부짖음 - 비명을 지르는 여자 혹은 라디오의 소리. 춥다.-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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