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하지만 그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쓰러뜨리고 뒤엎고 바닥으로 내던졌다가, 두 팔을 뻗고 두 손을 들어올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가, 지푸라기가 눈에 띄는 순간 매달릴 시간만 남겨놓고 놓아버리는, 먼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젊음의 그런 유별난 집요함에 얼떨떨해진 채 고개를 내저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런 자신이 정말이지 절망적으로 여겨졌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21-22)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인간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인간이란 걸 말이죠, 선생님. 하하! 날 웃게 내버려두세요, 좀 봤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의학의 발달에 힘입어 진정한 인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기형적인 존재들일 뿐이에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니까요.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기형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적당한 말이 없네요.
('본능의 기쁨' 146)

두어 편을 읽어가는 동안, 이 사람, 자살하지 않았을까? 싶어 찾아보니 자살했다. 1980년에.
1914년 생이니 젊어 죽은 것도,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다.
로맹 가리의 단편엔 위트도 있고, 반전도 있다. 그런데 희망이나 가능성이 없다.
그런 것이 보일라치면 다음 순간 단칼로 내리쳐버린다.
20세기의 진수를 함께 한 그의 삶은,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절망의 근거만 수집한 시간이었던가 보다.
다음에 또 그의 작품을 읽게 된다면, 마음 단디 먹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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