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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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사건'은 많은 사람을 빨아들인다. 폭심지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 이를테면 각자의 가족, 친구와 지인, 근처 주민,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나아가 목격자, 경찰의 탐문을 받은 사람들, 사건 현장에 출입하던 수금원, 신문배달부, 음식배달부 등, 헤아려보면 한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지 새삼 놀랄 정도다.
물론 이 사람들 전부가 '사건'에서 등거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며, 또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 대다수는 '사건'을 기점으로 방사형으로 그어진 직선 끝에 있는 것이며, 바로 옆 방사선 끝에 있는 다른 '관련자'하고는 전혀 면식이 없는 경우도 많다. 또 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 커다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 경우, 즉 사건에서 가장 먼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91-92쪽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가족은 전에 '이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이웃'이 무섭다는 것은 곧 세상이 무섭다는 것이고, 결국은 '커뮤니티' 자체가 무섭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무엇이 무서우냐 하면, 사람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129-130쪽

건설회사나 분양회사는 아파트를 판매할 때 구입 희망자의 자금 조달 능력, 융자 상환 계획, 자기 자금 비율 등에는 눈을 번뜩인다. 그러나 세대주의 인격이나 인품까지 감안해서 심사를 하거나, 그것으로 매매 가부를 판정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단 사건이 터지면 판매한 기업의 이미지가 타격을 받는다.
"이런 점이, 단순히 '부동산'이라고 단정해버릴 수 없는 '집', 즉 '가정'을 상품으로 다루는 기업의 어려운 점입니다."-145쪽

'매체'가 발달한 현대는, 텔레비전 앞에 30분만 앉아 있어도 보통 사람이 평범하게 평생을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수십 배나 많은 양의 정보를 그 자리에서 얻을 수 있게 되어버렸다. 여기서 난해한 문제가 하나 생겨난다. '현실' 혹은 '사실'이란 과연 무엇이냐 하는 문제다. 무엇이 '리얼리티'고 무엇이 '버추얼 리얼리티'인가. 양자를 가르는 벽은 무엇일까. '실제 체험'과 '전해들은 지식'을 '입력된 정보'라는 틀로 바라본다면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154쪽

그러나 맥박을 빠르게 만드는 '이유'는 크게 다르다. 하나는 부정승차이고 또 하나는 살인이다. 한 사람당 5백 엔의 차비를 속이는 데서 오는 공포와, 혈육이 살인을 했다는 말을 듣고 느끼는 공포가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몸이 보이는 반응은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다.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그저 그 뿐이다.
사람이란 의외로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는지도 모른다.-367쪽

지어낸 이야기는 파장을 일으켜 주위에 공명하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또다른 이야기로 부풀어져간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 되고, 나누지도 않았던 대화가 나누었던 것이 된다. 게이트를 닫아 주거공간을 외부와 격리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분위기와 환경만을 애지중지하면서 굳세게 지켜내려고 애를 써도 헛것에는 이길 도리가 없다. 헛것을 몰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시다 나오즈미와 2025호의 중년여성에 관한 목격담의 태반은 이런 종류의 헛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증언들이 나오는 순간에는, 적어도 증언하는 사람에게는 진실이었다. 그 자리에 없던 사람들도, 증언이 나오는 순간에는 분명 거기 있었던 것이다. 스나카와 노부오 외에 세 사람, 그 생생하게 존재하는 세 사람의 신원이 불명인 채로 남아 있는 한편에서는, 수많은 실재하는 사람들이 '일가 4인 살해사건'을 어떻게든 자기 인생에 얘깃거리로 남기려고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증언이 무수한 근거없는 '기억'을 낳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이라는 추측을 낳고, '그러고보니 그때 보았던 그 사람은..'이라는 추상을 부른다. 이렇게 해서 유령이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516-5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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