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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세트 - 전5권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바른번역 옮김, 김성곤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6월
평점 :
사람은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가? 그 물음에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부정적이고 또 괴기스러우
며 미지의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많은 존재들을 창조했다. 괴물, 귀신, 형체가 없는 저주에 이
르기 까지... 그야말로 공포는 그 무궁무진한 소재거리가 가득하다. 그러나 앨런 포가 다루는
공포는 미지의 존재가 아니라, 흔하디 흔한 인간 그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둔다. 그는 시대에
걸맞게 '순간 악마가 들어왔다' 라는 오래된 문구를 사용했지만, 실제로 인간, 그리고 그들이
일으키는 엽기적이고 광신적인 많은 일들은 분명히 이 시대를 지배하는 실존하는 공포의 최고
봉이 아닐 수 없다.
애초부터 앨런포의 작풍은 어둡고, 사람에 대한 불신과 혐오의 정의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가 표현하는 인간의 모습...인간의 눈은 희생자를 탐하고, 손은 죄악을 낳으며, 귀는 끔찍한
소리를 심장에 닿게 해 실행자에게 변태적인 기쁨을 누리게 한다. 그뿐인가? 다리는 정의의
심판을 피하게 하고, 혀는 온몸이 썩어 문드러진다 하여도, 영원한 저주를 품으며 불멸의 생을
부여받는다. 과연 이만큼 끔찍한 존재가 세상 또 어디에 있을까? 때문에 '공포'라는 이 단어
에 들어있는 인간의 본질의 이야기는 분명히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경고의 메시지를 부
여한다. 그리고 순간적인 화나 부조리를 참지 못하고 이웃간에 그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등의 많은 엽기적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만큼 앨런 포의 혐오는 그
나름 정당하다고도 할 수 있다.
파괴와 살육의 본능, 그것은 이 소설에서 검은 고양이로도, 또 어셔가의 아름다운 누이동생의
존재와 같은 분명한 형태의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들은 일종의 거울이요, 결과물이다. 그
리고 그렇게 분명한 만큼 소설에 표현되는 공포의 증거물로서 독자들에게 보다 선명한 메시
지를 선사하는 존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단편 '검은고양이'를 보자, 그것이 표현하
는 것!! 그것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양심의 조각이다. 아내를 죽이고, 집을 불태우면서 까지 숨
기려고 한 그것을 그는 결국 그 스스로 죄를 고백하며 미쳐버린다. 그렇다. 그 작은 조각이 있
어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과오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
주지 않는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