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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박경숙 지음 / 문이당 / 2015년 5월
평점 :
근대 이민의 역사에서, 미주 한인1세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곤고하다' 라는 말이 떠오를 정
도로 열악하기 짝이없는 것이다. 그들은 머나먼 타국에서, '나라를 잃었음'을 귀로 들어야 했
고, 또 언어도 통하지 않는 대규모 농장에서 (사실상 노예로서) 헐값에 자신의 거친 손을 움직
여야 했으며, 눈앞의 즐거움을 누리는 현대인과는 달리, 오로지 언제올지 모르는 미래의 나은
삶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던지는 선택을 강요당한 세대들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더 그
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바로 자신들을 괴롭히는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였을까? 나라가 망함으로
서 조선인으로서 살아가지도 못하고 또 미국인으로 살아가기에는 조국의 향수가 너무나도 짙
었던 그들의 마음속...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미국인도 조선인도 되지 못한 떠돌이가 되어, 가
슴 한구석 평생의 아쉬움을 담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타국에서의 향수는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니 먹을
것도, 입을것도, 심지어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던 이민 1세대의 삶과 그 그리움(괴로움)은
그 얼마나 절박한 것이였을까? 이처럼 이 소설은 그러한 아픔을 겪었던 이민자들의 슬픔을 소
재로 그 시대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민자 대부분이 모두 서럽고 곤궁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자와 여자 중에
서 가장 어려운 시련을 받은 성별을 따지자면 여성이 보다 그 답에 가까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한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의 실질적 주인공을 여성 '수향' 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민자 출신의
갑진에게 원정시집을 온 여성으로서, 머나먼 땅 하와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그녀는
사랑하지 못한 체 조건부로 결혼한 갑진을 진심으로 섬기지 못했고, 또 그의 자식을 일찍 떠나
보낸 '죄인'으로서 주변 이웃들의 가십거리의 대상이 되는 수모와 수치의 삶을 산다.
이에 그는 당시 그러한 부당함에 맞서, 여자로서의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으려 노력하지만, 역
시 번번히 시대의 상식과 그 속박에 의해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향은 아이를 가져
야 하는 의무,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를 넘어 여인으로서 자유롭고자 했지만, 결국엔 조선
에서 객사한 남편을 대신해 자신을 책임져줄 새로운 남자를 의지하는 등의 전형적인 여인으로
서의 삶과 운명을 받아들이고, 또 남자에게 안기는 안정감과 행복을 선택하는 삶을 살게됨으
로서 결국 같은 한인 동포들에게 까지 "여러 남자를 후린다"는 시선과 비난을 받아가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 것이 어디 그녀만의 삶의 방식이였던가? 당시에 여자가 남자에게 의지함은 일종의
상식이였고, 품격은 갖추었지만, 세상에서의 경험이 없었던 수향이 선택 할 수 있는 선택지도
그야말로 손에꼽을 정도였던 것이 당시 시대의 모습이였다. 때문에 수향은 결과적으로 오로
지 살기위해서, 자신을 봉인한 그 시대 여성들의 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봉사하고, 섬
기고, 의지해야만 살 수 있었던 가난하고도 불합리한 삶... 그야말로 수향은 그 불행한 시대의
진정한 피해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