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 - Golden Time
이주희 지음 / 매직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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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바라고 또 믿어 온 것은 무엇일까?      사랑, 명예, 공명... 물론 이처럼

각각의 가치관 마다 다양한 삶의 목표가 존재하겠지만, 그보다 더욱 원초적인 가치관을 들여다

보면, 착하고 바르게 살면 복이 오고, 악하고 또 이익을 위해 남을 짖밟으며 살면, 언젠가 그 업

을 받는다는 '권선징악' 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 삶과

인생"  이처럼 한국인은 전통적인 '성선설' 과 '도덕론'에 근거한 인간의 가치관을 숭상해온 민

족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은 전통적으로 믿고 의지해온 그러한 믿음을 그야말로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어린 청소년이 살인을저지르고, 사소한 이유로 남을 폭행하고, 삶이 무가치 하다는 이

유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해하는 범죄가 일어나는 사회...  그리고, 욕정을 풀기 위해서 약자

를 제물로 삼거나,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먹이로 삼는 '약육강식'현 사회적 분위기의

존제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세상이 그만큼 변질되고 심각하게 오염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오늘날의 정부는 하나의 사건이 있을 때 마다, 세상을 바로잡는다

는 명목으로, '특별법'을 만들어 사람을 통제하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입법활동이 아주 효과

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그 상황을 넘기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땜빵식 응급

처치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여 주지 못한다는 것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오늘날의 사회에

필요한 의료행위는 '응급처치'가 아니라, 심도있는 진단과 꾸준한 치료의 존재이다.
 
      
그러나 지금의 공직자들은 단기간의 질책과 책임론을 벗어나기 위해서, 보다 빠른 '응급처치'를

신봉한다.     그러나 세월호와 같은 사건을 통해서 보면, 도리어 그러한 지푸라기식(그때만 확

불타오르다 금방 식어버리는) 관심과 지원은 그들에게 오히려 상처와 아픔만을 던져주는 것

같다.     특히 세월호 같은 사건은 이익을 위해서, 고객의 안전을 등한시한 '회사' 그리고 경제

대국을 위해서라는 대의를 위해서, 국민의 권리를 축소시킨 '정부' 가 합작해 만들어낸 사상 최

악의 인재(人災) 이다.      그러나 그들이 피해를 당한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과연 어떠한 사죄

를 하였는가?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목격한 사람들... 특히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

아갈 젊은이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과연 어떠할까?   실제로 이제 젊은이들은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고, 정부는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는 장소라는 교과서적인 상식을 비웃는다.     

 
그리고 그러한 불신은 결국 하나의 소설을 만들어 내었는데,  이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은 그

러한 불신을 그대로 증명하는 내용을 지니는 내용과 더불어,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오늘날을 어

떠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단편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 예로 이 소설의 주인

공(주희)은 어릴적에는 '성추행'을 청소년기에는 스스로 '자살'을 선택했지만 결국 살아났다는 

불행의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결국 그는 꾸준한 재활운동과 더불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

하여 주는 '재영' 을 만났고, 또 병원에서 꾸준히 그를 응원해 주는 다양한 친구들과, 어른들의

응원에 힙입어 사회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데, 주희의 그 용기에 대한 하늘의 보답은 한탄스럽

게도 그가 탄 '그네호' (세월호)의 침몰과, 사랑하는 재영의 죽음이다.
 
주희는 눈에띄는 모든 사람들을 붙잡고 (침몰하는 선박속에서) 죽어가는 재영을 살려달라 울부

짖는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해경' '정부' '회사' 들은 모두 그 사건에 대한 적극적

인 책임을 회피했다.    세월호 피해가족들의 절규에  "우리는 실질적 권한이 없다." 고 답변한

해경, 훗날의 책임론이 두려우니 '구조하는 시늉이라도 하라' 지시한 고위 공직자, 심지어 세월

호 희생자에 대한 아낌없는 후원과 사죄를 하겠다며 고개를 연신 숙이던 회사는 결국 그들의

장례비용조차 깎으려 했다.      이렇게 소설속의 주희는 그러한 현실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그리고 다시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무엇하나 기대 할 것도 요구 할 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빠

진다.    
 
무력감... 그리고 실망... 주희는 결국 이 세상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떠나고 싶다는

짧은 수필을 남긴체 더이상의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렇게 미묘하고 텁텁

한? 여운을 남기며, 그 최종적인 이야기를 마치고야 만 것이다.

 
'세상은 책임과 의무도 필요하지만, 희망과 낙천주의또 필요하다'   그러나 침울하게 침체된 한

국의 사회는 책임과 의무는 있지만, 희망과 낙천주의는 전무하다.    과연 오늘날의 세상은 그

속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정의를 보장할까?   혹시 이대로 '무사안일''복불복' '무책임'과 같은

단어가 상식이 되는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을까?    (만에 하나 그리된다면, 나는 이 책의 제목

그대로 다른 차원으로 떠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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