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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게 나이 드는 법 - 불멸의 고전 오디세이아에서 찾은 ㅣ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3
존 C.로빈슨 지음, 김정민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은퇴' 우리들은 힘든 회사일과 노동의 굴레속에서, 이 단어를 위해서 살고 또 인내한다. 나이
들어서도 여유있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라는 그 목표와 함께 '자신의 가족들의 안정적
인 삶' 을 위해서 라는 의미는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족쇄와도 같은 것이다. 때문에 많은 사회
인들이 분투하고 싸우고 또 숫양처럼 경쟁을 한다. 사회에서의 성공은 높은 연봉과 직책이라
는 감미로운 보상이 주어지기에, 사람들은 그 보수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모두 순탄해 지는 것만도 아
니다. 특히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내려놓은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부장, 사장, 기술
자, 군인, 학자 라는 이름표 대신 고집스러운 늙은이라는 명찰을 공유 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기껏 얻어낸 '자유'에 쉽게 익숙해 지지 못한다. 아니... 심지어 "이제 내가 필
요로 하는 곳은 없다." 라는 비관적인 생각에 우울한 심정을 내 비치는 사람도 등장하는 형편
이다. 은퇴는 (나름 자유로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단순한 휴가처럼 여행과 취미생
활과 같은 단기적 방법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은퇴한 사람들은 과거와
는 다른 새로운 마인드가 필요하다. 즉 과거의 개념 사회적 지위와 필요성에 매달리기 이전에 '
자유인'으로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지라는 말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그 마인드에 대한 '
멘토'로서 과거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인물 오디세우스의 일대기를 지목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그 유명한 트로이에서 고향 이
타카에 귀향하기 까지 10년이라는 믿기어려운 세월을 소비했다. 신에 대한 불경과 저주 그리
고 괴물의 방해와 마녀와 세이렌에 이르는 다양한 환경요소는 그야말로 그의 모험을 언제나 위
험하게 하는 것이였고, 결과적으로 그의 귀향을 늦추게 했다. 그러나 그 환경요소 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오디세우스의 내면적 마음가짐, 즉 오만와 두려움 같은 자신 스스로의 약함이
무엇보다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전쟁 영웅'은 실로 뛰어난 용기와 지혜를 가진 초인임에도 불구
하고, 인간으로서의 잘못과 실수를 통해서 스스로 약해지고 또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처럼 저
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영웅도 실수를 한다' '영웅도 갈등을 하고, 겁을 먹고, 실패를 한
다' 라는 이야기와 함께, 스스로 자신이 처한 인생의 굴곡을 한번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자신이
과거의 영광(성공) 에 집착하는 완고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는가? 지금보다는 자신이 사회의 유
능한 용사였다는 과거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그는 아직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성난 숫양과 같은 영웅 오디세우스와 같다. 그리고 이미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갑옷과
장창을 꼬나쥐고 만반의 전투태세를 가다듬는 어리석은 전사이기도 하다.
과거의 '전사' 오디세우스는 그 열혈한 고집의 대가로 10년동안 재산, 부하, 자존심 모두를 시
험받는다. 그는 괴물에 의해서 부하들을 잃어버림은 물론, 배와 재산 모두를 잃어버려 결국 어
린소녀 '나우시카'에게 옷가지를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어려
움을 통해서 생각의 유연함과 참을성을 길렀고, 분위기와 자신의 운명에 의해서 나름대로 인정
하는 부드러움을 배웠다. 그 덕분에 그는 신 포세이돈의 진노에도 불구하고, 아테나의 가호를
받아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아내와 아들을 만나 '군왕' 오디세우스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처럼 은퇴는 과거에 대한 이별이자, 새로운 시작의 길이다. 과거의 오디세우스 처럼 괴물이
있으면 베고, 적이 등장하면 싸우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삶은 은퇴를 기점으로
내려놓도록 하자, 물론 반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에 허천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슬프기
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오디세우스가 언제나 오디세우스일 것이라는
법은 없다. 어제의 오디세우스가 내일의 호메로스가 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의 재미
가 아니겠는가? 훗날 서울역 앞 참견쟁이 할아버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숀 코네리가 될 것인
가... 그것은 모두 마음가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