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지니고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1858년~1875년 사이 발생한 한 사내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실화소설이다.    이 세상에 있었던 일이기에, 이야기의 내용과 묘사는 현실

적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내용을 읽어 내려가면서, 과연 이러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르시즈 펠티에는, 16살

의 어린 나이에 무능한 선장과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체, 십수년의 세월을 섬의 원주민과 함께 생

활하며, 완벽한 '현지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1875년 다른 선박의 선원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원주민과 같은 문신으로 몸이 뒤덮여있음

은 물론, 그의 모국이던 프랑스에 대한 기억과,상식 심지어는 언어까지 망각한 체 그야말로 원시

인과 같은 수준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예는 과거의 작품 정글북과 같이, 실제로 동물에

게 길러지거나, 인류의 문명을 접하지 못한 부족등을 보면 쉽게 그 예를 발견 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러나 나르시스는 이미 문명인으로서의 자아가 깨우쳐진 상태에서, 특수한 환경에 의

해 자연 퇴화를 했다는 드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십수년의 생활은 길다, 그러나 그렇

다고 그가 어떻게 과거의 상식과, 기억을 잃어버릴 수 있었을까?  실제로 외부의 환경이란 것이.

그렇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이렇게 이 책은 나에게 있어, 내용을 떠난 다양한 생각

과 의문점을 만들었고, 그 내용은 궁금증에 대한 해답 대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

한다.

 

'나르시스는 과연 퇴화 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저자는 책 속에

나르시스의 경험담과 더불어,구조된 나르시스를 관찰하는 학자 옥타브의 견해를 담은 보고서라

는 2개의 시점을 준비했다.     이에 소설속의 옥타브 보고서는 나르시스의 관점이, 현대의 사람

의 시점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비교를 하는데 무척이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나의 개인

적인 생각으로는 나르시스는 단순히 문명인에서, 미개인으로 퇴화 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서 환경에 최적화 된 것 뿐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린다.  

 

실제로 나르시스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다.   그 증거로 그는 구조된 이후에도, 과거 섬에서 살았던 그 방식대로 무수한 물

고기를 잡았고, 어두운 곳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사회인으로서는 놀랍기 그지없는) 신체적 우월

성을 보여 주었다.     그가 사회인과 다른 것은, 단지 예의를 차리지 못한다는 것, 내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 돈에 대한 귀중함을 모른다는 것, 단지 그 뿐이였다.

 

나르시스가 프랑스에 도착했을때, 사람들은 그를 둘러싸고, 호기심과 측은함을 표시했다.   그러

나 그 이면에는 미개인의 수준으로 몰락한 그를 보면서, 자신들의 문명과 사회적 우월함을 재확

인 하면서 단순히 우쭐거렸을 지도 모를일이다.  모두가 굴절된 시각으로 그를 판단할때, 심지어

는 그의 친구가 되어준 옥타브조차도 그러할때,  단 한명 나르시즈 만큼은 소설이 끝나는 그때까

지 모든것을 투명하게 보는 깨끗한 존재로 남아있는다.

 

프랑스 황후가 그에게 "내일은 무엇을 할건가요?" 라고 물었을때 그는 "내일은 해가 뜰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야 말로, 인생을 살면서,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 그리고 욕구

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회인인 우리들이지 자연인 인 나르시스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며, 그리고 또한 나르시스가 과거와 미래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는 나르시스에게 기억하고, 이해하고, 꿈꿀것을 강요한다.    그들은 나르시르를 프

랑스로 데려왔고, 가족을 상봉시키고, 어째서 섬에 남게 되었는가를 묻고, 나중에는 그가 제몫

을 다하기를 바라며, 등대지기라는 관직까지 하사한다.    그러나 결국 소설의 막장에 들어 나르

시스는 끈질기게 과거를 캐묻는 옥타브에게 '앙고' '말하는 건 죽는것과 같아'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고 마는데... 과연 그가 말한 "말하는 건 죽는것과 같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진 것이였을까?

 

혹시 그것은 분노가 아닐까?   과거 자신을 버리고 배를 출항시킨 선장에 대한 분노? 착박한 섬

에서 본의 아닌 미개한 생활을 하게 된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  아니...의외로 섬에서 자신을

데리고 나온 문명인들과 옥타브에 대한 분노일지도 모른다.    

 

16년동안 섬에서 표류한 나르시스에게, 프랑스의 생활 역시 '귀환'이 아니라, 또 하나

의 '표류'가 아니였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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