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노예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9
미셸 오스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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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된 생각이란 있을 수 없다.  1억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1억개의 인생, 일억개의 사상

, 일억개의 욕망이 있을테니까."

 

이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이, 흔히 입버릇 처럼 말하는 그의 인생철학?(믿음)

중 하나다.  이 말은 물론, 단어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교훈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를 조금만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면, 의외로 무궁무진한 추론거리를 가져다 준다.  자... 그럼 이

책을 중심으로, 그 가치를 적용시켜 보면 아떠할까?  내가 생각으로는 이러한 추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인생은 언듯 일관성 있고 '단순'해 보이지만, 의외로 수 많은 갈림길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고요하게 안정된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언듯 단순하고 일관성있는 인생을 살

아간다.  내가 속한 한국의 사회상 역시, 인간의 최대의 관심사란 '건강' '취업' '고임금' '복지' 

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표현이 가능 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 '단순해 보이는 사회' 속에서도, 인

간은 아둥바둥 죽을 힘을 대하서 살아가고, 때로는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절망하기도

한다.   괜히 사람이 살면서 "어찌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살랴.." 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때와 장

소에 따라서, 또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운명'이라는 존재에 의해서 무거운

시련과, 또 행복한 행운을 부여 받는다. 

 

느닫없이 교통사고로 양 부모를 모두 잃은 사람, 길을 걷다가 우연히 고액의 지폐를 주운사람...

이 모두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의 운명에 의해서, 각자 절망과, 기쁨을 맛보는 순간을 맞

이한다.    이렇듯 사람의 인생은 착실하게 노력만으로 구어지는 존재가 아니며, 이러

한 사실은 당연히 '인생의 베테랑'인 우리들의 뇌리에 깊숙히 박힌 상식중 하나다.  그렇기에, 우

리는 사람의 삶을 각색한 '소설'의 세상속에서, 이와같은 비정한 세상사에서 조금이나마 떨어져

'휴식'을 취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해피앤딩' '훈훈한 이야기' '감성의 이야기'

등등 우리는 이러한 '힐링'의 이야기들을 현실성이 없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읽고 접하고 있

지 않은가?

 

그러나 불과 20~30년전만 해도, '읽히는 문학' 이란 그러한 부류의 것이 아니였던 모양이다.  예

를 들어'프랑스 콩쿠르상'을 수상한 이 책의 내용을 보자, 이 책의 내용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전쟁후의 프랑스'의 모습을 다룬다.  때문에 소설에 등장하는 소년 아르쉐는 본질적으로 우리와

는 다른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한다.   그는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젊은인생을 희생한

어머니와, 가족보다 프랑스라는 국가의 내일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한 레지스탕스 영웅의 아버

지를 두었다.    때문에 그는 우리들이 평범하다고 믿는 안정된 나날을 보내지 못했고, 오히려 어

머니의 무심함과, 집을 나가 살아있는지도 모를 기억없는 아버지를 문득 떠올리는 비운한 성장

기를 보냈다.

 

그 때문인가? 덕분에 아르쉐는 친 가족인 어머니와도, 가족의 정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없고,

또 어머니도 '의무의 틀'에 머무르며,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아르쉐에게 어머니는 모성과 사랑의 상징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증오와 미움의 대상도 아

니다.  그에게 어머니란 어머니라는 명찰을 단 '중년의 여인' 그리고 전쟁에 의해서 인간성이무

너진 '동정받아 마땅한 자아'에 불과하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를 비꼬고, 동정하고, 무시하며

살아가지만, 의외로 그들도 '가족이라' (어떠한 '여행'의 상승효과로 인해서) 드물게 서로의 마음

을 교환하는 작은 이벤트도 벌이는 인간다움을 보여주기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은 이벤트' 일 뿐, 그들의 일생은 언제나 무감각과 무관심의 연속

이다.  그러나 그러던중 소년 아르쉐는 점차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그녀들을 통해서, 인

간의 내면의 아름다움과, 지금껏 잊었던 그리움 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자유를 누린다.  그는

그 해방된 자유행동중 하나로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려는 시도를 한다.  그 당시 그에게 있어서

, 노력없이 상속받은 '상당한 규모의 공장' 의 존재, '아버지를 찾기위해 어떤 윤락녀에게 건낸

'일만 프랑'의 가치란, 어디까지나 아버지를 찾기위서라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는 부

수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비록 가족을 버렸지만, 그 때문에 불운하고 무미건조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그는 아버지를 미

워한 적이 없다.   프랑스의 영웅, 레지스탕스의 영웅, 그렇게 아버지를 기억하는 무수한 사람들

을 만나면서, 아르쉐는 이미 아버지의 무심함을 용서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의 눈앞

에 드러난 아버지의 모습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였다.  아니..정확하게 말하

자면, 그는 전쟁에 의해서 망가진 불쌍한 모습이 아니였다.    그가 만난 아버지의 모습은 이미

명성과, 재물, 그리고 변태적인 성행위에 취한 타락한 영혼 그 자체였다.

 

그동안 간직해온 마지막 인간의 감정... 그것이 철저하게 배반당하는 순간.   그 순간을 접하기

위해서, 주인공은 일만 프랑이라는 값비싼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해피앤딩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인공인 그가 철처하게 망가지는 배드 앤딩도 없다.    그는 분명 아버지의 존재

에 실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당신의 아들입니다.' 라고 앞으로 나서지도 않았을 것

이다.   그는 그저 실망의 마음을 가슴에 안고, 무미전조한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그 어느일

이 일어나도,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내일이라는 삶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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