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맨
J.P. 돈리비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일반적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전반적으로 책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아가야 하기에

나름대로의 개성과 철학을 지닌다.  그러나 '진저맨'의 주인공은, 그러한 상식을 뛰어넘어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 할 수 없는 모호함을 지닌 존재로 등장한 덕분에,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익

숙치 않은 주인공에 혼란을 느끼고, 또 이 책이 등장한 1955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오랜기간동

안 논란이 되어오는 것 (과연 이 책의 장르는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결단조차 해매는 큰

난관을 만난다.  때문에 나는 내용을 보기에 앞서, 책 커버 구석에 쓰여있는 역자의 소개글을 잠

시 접해본다.   그 혼란에 대한 답을 타인에게서 찾는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역자의 주장을 정리하여 보면, 진저맨은 출판된 당시 1955년에는 일종의 외설적인 음란소설로서

인식되었고,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저자가 사는 아일랜드에서조차 출판을 금지당했으나, 점차 사

람의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주목받게 되어, 이제는 아일랜드 뿐 만이 아니라, 영미권 소설

의 기념비적인 영향력을 가진 소설로서의 위상을 지닌, 베스트셀러로 인식되는 책이라 한다. 그

러나 진저맨에 등장하는 주인공 '새바스천 데인저필드'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과연 이게 그

"기념비적인 소설인가?"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그 이유는 말하자면 데인저필드 그 존재 자체

때문인데.. 그가 주인공이면서도, 무엇하나 배울점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을 읽

으면서, 재미를 능가하는 무언가의 교훈적 의미에 대한 메시지를 찾아내지 못했다.  '무'(無) 그

야말로 이 책의 존재는 '없음' 그 자체가 이야기의 시작이자 이 책의 '모든것' 이라는 허무한 느

낌이 드는 것이다.   

 

주인공 '데인저 필드'그는 아내와 아이를 가진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는다.  아일랜드

에서 손꼽히는 대학의 법대생임에도 불구하고, 공부는 커녕 미래에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청사

진 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비참한 생활상에 아내가 희망을 잃고 절망하면, 그는 도리어 마음

의 평화를 어지럽힌 아내의 폭거? 때문에 모든것이 불행해졌다고 불평하고, 심지어는 그가 추구

하는 평화를 위해서, 그는 어려운 형편의 친구를 이용하거나, 자신에게 헌신하는 많은 '여자들'

을 이용하는 것초차 당연하게 여기는 철면피가 될 수 있다.     '개새끼' 그야말로 아내가 부르는

이 욕설이 그의 모든것을 말해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인물의 말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데인저

필드는 그러한 상식의 틀을 넘어, 마치 '티케'(행운의 여신)의 사랑을 받는 친아들인 양, 원초적

인 쾌락을 탐하는 요행을 일삼는다.    친구들의 푼돈을 밑천삼아 술독에 빠지고, 자신에게 헌신

하는 애인들을 이용하여 하숙비를 해결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사랑하는 풋풋한 여인을 데리고

런던으로 가, 딴 살림을 차리는 한 편,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중산층 부럽지 않

는 경제력까지 갇춘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세련된 미국 부호의 망나니 아들이라는 행운 덕분

에, 그는 아일랜드 최고의 극빈층에서 일약 런던의 깔끔한 신사로 변신하는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나 겉모습은 달라져도, 알맹이는 여물지 않은 그 어정쩡한 인격은, 결국 과거 '개새끼'라 불

리우던 그 시절의 상태를 벗어 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그의 역량을 여실하게 드러나게 해

준다.    아무리 아일랜드 촌구석의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벗어나 영국의 이름난 금융가에 집을

얻어도, 잔소리에 시끄러운 아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농익은 여체를 가진 젊은 여자와 딴 살림

을 차려도, 자신의 손길과, 키스, 그리고 섹스에 황홀해하는 무수한 여자들의 단물을 아무리 빨

아먹어도 그는 결국 여물지 못한 개새끼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아일랜드에서 그랬던 것

처럼 새로운 아내와 환경에게도 외면받고 무시당하는 존재가되는데, 그 푸대접에 부호 '데인저

필드'는 여느때처럼 자신에 대한 궁색한 변명을 하는데 열심이다. 

 

"나는 단지 내 마음의 평화를 원할 뿐이다" 라고...

 

이렇듯 데인저 필드는 오늘도 술과, 여자, 섹스와 쾌락에 이르는 인간이 갈망하는 모든 죄악을

위해서 살아갈 것이다.  돈이 없으면? 친구를, 친구가 없으면? 전당포를, 저당잡힐 물건이 없으

면? 애인을... 재산도 사회적 지위도, 미래도 필요없는 데인저 필드, 그가 원하는 것은 여느 때처

럼 '바커스'와 '티케'의 자비속에서 오늘하루를 넘기는 것이다.   이쯤되면 그는 단순한 쓰레기의

레벨을 넘어, 일종의 기인(技人)이라고 불러야 할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야말로 진정한 허무

주의의 선봉이자, 무소유?를 실현하는 순수한 '호모 루덴스'(노는 인간)의 표본에 해당하는 내공

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에 진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이러한 데인저 필드의 '놀이 본능'은 제 2차세계대전의 충격에

서 벗어난 서구의 젊은이들에게 뿌리박힌 깊은 상처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과거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서 생겨난 '히피'와 같이, 데인저 필드는 결국, 나아갈 구심점을 잃어

버린 혼란의 시대에 굴복한 여리기 여린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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