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에게 인생을 배우다
전도근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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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나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사람을 찿아가는 '멘토'를 만들기도 하고, 인생의 동반자인

책 (바이블)을 찾기도 한다.    내가 아는 책에선 "정상적인 일반인에게 비정상적인 활동을

한 별종을 본 받으라는 것" 이라는 비아량 을 받은 행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각 나라의

위인전을 보고 그 위인을 본받으려고 노력한다.

 

수많은 위인들을 본 받으려는 움직임 속에서 '다산 정약용' 은 상당히 인정받는 위인에 속한다.    

그렇다 우리들은 다산 정약용 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  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아니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것은 정약용의 생애를 돌아보면 어느정도 눈에 보인다.  

 

"다산 정약용'  그는 정조의 신임을 받은 젊은 인재로서, 그 역활에 충실했고 무엇보다

개방적인 사고와, 진보적인 정치개념을 무기로 나라에 봉사했다.     사대주의와 신분의 한계에

절망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신분제를 무너뜨리려고 했고,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흡수하려는 열정으로 '실학'을 연구해 실제로 수원화성을 건축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무엇보다

나라의 기강을 위한  '가진자들의 도덕심' 을 재조명하고 질책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타고난 기록자였다.  예를 들어 수원화성을 건축보고서

'화성성역의궤'을 보면 사용된 돌의 개수와 동원된 인부들의 이름과 수, 그리고 사용된 기중기의 상태와 하루하루 진행된 '공사진척''에 대한 기록까지  꼼꼼하다 못해 치밀하기까지 하다.      

청렴한 관리이며, 재능있는 기술자요, 지치지 않는 기록자인 정약용. 그가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기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변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현대적인 척도에서 본다면, 정약용은 '인생'면에서는 그야말로 '실패'한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정조의 급사후 40세의 나이에 '대역죄인'이라는 명목으로 귀향을 가는

처치가 된다.    그동안 쌓아온 지식, 명망, 야심 모두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그 피해는

가족들과 아이들 심지어는 형제들에게 까지 미쳤다.    다른 사람들 같은 경우엔 자신을 매도한

국가와 정적들을 원망하며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면서

'이 더러운 세상'을 저주하며 보내는 것이 오히려 정상일 정도인 상태에서 그는 마음을

다 잡았고, 방황하는 자식들을 질책하고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강조했으며,

유배지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무엇보다 과학, 문화, 정치, 의학, 법학, 건축학 등을 넘나드는

방대한 양의 저서를 지었다.

 

대표적인 '흠흠신서' '목민심서' '마과회통' '조선수경' 등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어찌 '유배객의 신분에 불과한 정약용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의 저서는 결국 그의 사상과 지식을 넘어, 그를 조선 최고의 유학자 이자 계몽학자 였다는

'역사의 평가'를 남기는데 한몫했다.   이 책은 '박학다식' 한 인재였고, 진정한 '사' 士(선비) 로서

평생을 살았던 다산 정약용의 인생관을 다시 한번 배우고 느껴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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